이 이야기는 필자와 필자의 군대 선임의 대담으로부터 시작된다. 늘 그렇듯 쓸데없는 소리와 말꼬리 잡기로 시간을 잔뜩 보내고 있던 군부대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당시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밖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밖에서 산책하는 사람들과 몇번 마주친 필자는 생활관에 들어와 선임에게 밖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시니컬하고,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
"없던데?"
나는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걷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귀찮았기 때문에 간결하게 대답했다.
"있던데요?"
몇번의 실랑이 끝에 선임은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남겼다.
"있지만 없던데?"
심하게 피곤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대답이었지만 필자는 선임이 대전소재의 국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전해지는 과학전문대학에 다닌다는 점을 고려하여 성실한 대답을 준비했다.
"그런건 양자세계에나 통하는 이야기고 지금 밖에는 있거나 없거나 둘중에 하나에요. 세상에 있지만 없는게 어딨습니까?"
그러자 선임은 또다시 범인(凡人)이라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이어갔다.
"정규앨범"
대화의 맥락을 벗어나는 것은 숨쉬듯 일어나는 일이지만, 산책과 양자역학 가운데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정규앨범이라는 말은 어쩐지 간담이 서늘해지고, 수많은 특이한 맥락들을 고려해도 도통 발화자의 의도를 찾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에요."
퉁명스러운 대답에 선임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자신의 천재성이 없이는 발견하지 못할, 숨겨진 맥락을 찬찬히 풀었다.
"블랙핑크도, 트와이스도 정규앨범이 있지만, ITZY(이하 '있지')는 아직 정규앨범이 없네, 있지만 없지 않은가."
머리에 망치를 맞은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맥락에 대화의 의지를 잃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침대에 누운 저 사람과의 '맥락싸움'에서 지기 싫었고 나는 찰나의 순간 떠오른 반격을 가했다.
"정규는 있지만 없는게 아니라, 저도 없는데요."
"자네도 없나? 그렇군...흠..."
그렇다면 있지만 없는 것은 무엇일까. 류진, 예지, 유나, 채령, 리아를 필두로한 JYP최고의 걸그룹 있지에겐 없는것도 별로 없겠거니와 나같은 미물을 포함한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중에 '있지'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궁금증은 아주 찰나의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온세상 사람들이 다 있지만 있지만 없는것' 사실 이것은 비단 있지가 아니라 누구를 치환해도 생길 수 있는 궁금증이었다. 나만 없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마침 샤워를 하러 가는 길이어서 8인용 샤워장에서 쏟아지는 체온과 비슷한 물을 맞으며 필자는 골똘이 생각에 잠긴다.
먼저 물건일리는 없다. 세상 사람들이 공통으로 소유한 물건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체기관을 말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있지도 모두 가지고 있을게 뻔했다. 그렇다면 '능력'일 것이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거짓말'이 생각났다.
타인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은 스스로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거짓말이란 것 자체가 거짓말을 한 사람은 참이 아닌 것을 알고 상대방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참에 대한 인지에서 모순적이다. 따라서 '있지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를 제외한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으나, 있지만 없는 것이다.
필자는 목욕탕에서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듯 샤워실을 충만한 만족감과 함께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선임을 찾아 방금의 발견을 전했다.
"있지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없습니다.(이하 설명 생략)"
있지뿐 아니라 모두에게 있지만 자신에게만 없는 능력에 대한 나의 발견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하지만 누운 사람은 대답도 없었다. 사실 신경도 안쓴것 같다. 하지만 옆에 있던 사람이 나의 설명에 다시 퉁명스럽게 첨언을 했다.
"허언증 있는 사람은 자기한테도 거짓말 할 수 있잖아."
반례의 등장이다. 물론 있지 멤버는 허언증이 없겠지만(아마) 전인류로 확대한다면, 분명 허언증환자가 나타나게 된다. 즉 누군가는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든지 반례가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더이상 생각할 정신적 여유가 되지 않았고 잠에 들면서 한 생각중에, 내가 없는 세상에 살아갈 능력과 같은 실존적인 물음만이 '있지만 없는것'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어렴풋이 감각할 뿐이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재미가 있다기보단, 당시 촌각을 다투며 변하던 맥락과 갑자기 맥락이 골을 만나, 끊임없이 고민의 나선을 만들던 순간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쓰여졌다. 또한 "있지만 없는것"에 대한 물음의 답을 내가 아닌 누군가라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손톱만한 기대를 더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론 아주 비생산적이지만, 재밌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