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정의의 변화

효율에서 평등으로

by 오로롱도로롱



언젠가부터 내가 정의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는 정의로워 보이려고 노력하나, 실상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배워서 알고, 그것이 옳다고 하기에 행동하는 것이지 무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것들에게 감동하고, 진심을 다해 지지하는 것은 영 아닌듯하다. 이것에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한 가지는 부끄러움이고, 한 가지는 의구심이다. "나는 왜 진심으로 정의롭지 못한가"와 "그들은 진심으로 정의로운가." 이 두 가지 감정 말이다.


정의롭다는 것은 만고불변하지 않다. 언젠가는 적을 죽이고 노예를 늘리는 것이 정의였고, 언젠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의였다. 하지만 그래도 정의라고 불리는 것은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상당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 유지가 된다. 하지만 그만큼 정의가 바뀌는 시기, 두 가지가 중첩되어 변해가는 시기에 사는 사람은 불가역적인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왜 정의롭지 않은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쩌면 내가 방금 말한 중첩의 시대에 빠져버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정의와 내가 자라온 시대의 정의들에 대해 반추해 보았다.


1. 효율의 시대


나의 가치관이 생겨나서 자리 잡는 시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기였다. 무언가 커다란 사건을 겪은 적은 없었고, 평범하게 학교 공부하는 충실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효율이라는 가치가 대부분의 경우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 '다수결의 원리' 등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것들이 체화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 때문이다. 특히나 다수결의 원리 중 '소수의 의견도 존중한다'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끝에 붙지만 딱히 지켜지지 않는 말이었다. 또한 스마트폰의 보급, 컴퓨터 게임의 급격한 발전 등 일상에서 느낀 과학의 수혜는 속도를 추구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학적'인 사람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는 교육학 공부를 하다 알게 된 것인데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배우는 교육과정은 중립적이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내가 배워온 교육과정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 교육과정'으로 분류되어 자유주의적인 학생을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교육이 평등보다는 자유를 추구하는 그러한 정신과 입시의 특성인 무한경쟁 능력주의가 가미되어 '냉혈한'적인 학생을 길러낸 것이다. 나는 교육과정에 거의 심취했다시피 공부를 했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분명 저것을 그대로 습득했을 것이고, 마침 공부깨나 한 학생들이 많이 입학한 지금의 대학 친구들이 묘하게 자유주의 향기가 나는 것도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처럼 별 탈 없이 학교교육만 충실히 이수하고, 21세기의 초반을 지나온 나는 어김없이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어떤 상황이든 어떤 문제든 효율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2. 평등의 시대로


하지만 지금은 시대의 가치가 효율이 아니라 평등이다. 세계적인 흐름일 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더 가시적이고 급격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도처에 있겠지만 내가 굳이 하나 꼽은 것은 '진보진영 대통령의 영웅적인 출현(?)'이다. 이렇게 뭔가 사회 전체에 진보적인 에너지가 흐르면서, 대학이든 인터넷이든 언론이든 진보적인 사회문화가 확산되었고, 그에 따라 '성소수자', '환경', '다문화' 등 진보적인 이슈들이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평등은 이와 더불어 오는데,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평등 먼저 바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새로운 시대 가치가 된 것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복지를 강조하고, 소수자들에게 눈을 돌린 것이 대표적인 평등의 구체화로 보인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단순한 다수결이 꽤나 폭력적인 의사결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수라도 피해를 본다면 다수가 동의한 결정 또한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런데 이것은 무언가 일상에서 생각했을 때, 이런 이상적인 의사결정은 이루어지기 어려웠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는 다수결보다 어려울 뿐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히려 가위바위보나 사다리 타기 같은 모든 가치판단을 배제한 의사결정법을 더 자주 쓴 것 같긴 하다.


이렇게 시대 가치는 급격하게 변하는데, 인간의 사고는 그만큼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무언가 대단한 사건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저 흐르는대로 살아오면서 생긴 가치관은 굳은 나무 수액처럼 단단하게 내 머리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시대 가치가 가장 먼저, 그리고 격렬하게 반영되는 대학에선 평등이 정의롭다는 가르침이 그 위에 그저 덮어져, 마치 원래 내가 그랬던 사람인양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즉 머리로는 평등을 추구하나 가슴은 아직 효율을 추구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3. 부끄러운 사람.


하지만 나와 다른 속도로 시대 가치를 체화한 것인지, 애초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것인지 혹은 지금껏 한 이야기가 모두 틀린 공상이었던 것인지, 나와 달리 너무도 정의로운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눈앞에 효율성보다는 더 상위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만고불변의 정의는 없다고 한탄하며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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