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안식

by 오로롱도로롱


아내의 손에 죽는 남편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주방에서 집기들이 달그락대는 소리가 난다. 차가운 스테인리스가 자기들끼리 부딪히는 금속의 마찰음. 거기에 더해 광기에 찬 목소리로 흐느끼는 아내의 소리가 들린다. 나의 작고 여린 아내가 내는 소리라고는 믿지 않는, 거친 소리이다. 칼에 찔린 배는 귓속을 어지럽게 하는 심장 소리에 맞춰 연신 피를 뿜어대고, 나는 헛구역질과 함께 타들어 가는 통증을 느끼고 있다. 상처 부위는 뜨겁고, 상처와 먼 곳들은 점점 차갑게, 저린 것처럼 무감각하게 변해가는 기분이다. 주방을 뒤지던 그녀는 신발장 선반으로 가는 듯하다. 신발장 안에 있는 망치를 찾으려는 것일까? 나는 몇 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짐승 같은 소리를 내는 그녀가 나의 고통을 끝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생 신입생 시절이었다. 싸구려 주점에서 벌어진 신입생 환영회에는 북한군의 지하 아지트 같은 벽지와는 상반되는 원색의 원피스를 입은 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아마 그때의 유행이었을 것이다. 배움의 상아탑이라는 명성에는 맞지 않게 추잡한 복학생 선배들과 술에 취한 남자들은 술기운에 무력해진 여자들을 더듬었고, 그런 욕정의 구덩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화사한 원색의 치마가 어울리는,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해 자신의 피부색과는 썩 맞지 않는 색조 화장에 나는 금세 매료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 주변을 배회하는 수컷들에게 참지 못한 분노를 느꼈고, 거의 말도 해보지 않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술집을 나온 것은 어쩌면 취기에 의한 것일지도, 젊은 날의 치기에 의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도 여간 그 자리가 불편했던지 나를 따라 나왔고, 그날 우리는 사랑이란 덫에 붙잡혀 버렸다.



대학 내내 우린 붙어 다녔다. 창원에서 온 그녀는 학교 근처에 원룸에 살았고, 나는 기숙사에서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기숙사에 있는 시간보다 그녀의 원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연인이 아니라 부부라도 된 양 그녀의 집에 살림을 차렸다. 그 6평짜리 방에서 우리의 사랑은 자랐고, 사랑이 이성을 완전히 잠식할 때쯤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나의 아이를 가졌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초음파 속에 두 개의 심장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작고 어린 그녀가 아기를 가져버렸고, 우리는 숱한 밤을 눈물로 보내며 그 작은 심장 소리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것을 죽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처음에 그 감정은 두려움이었고, 점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변해서, 어떻게든 저들과 내 인생을 떼어 놓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훨씬 혼란스러워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나를 놓지 않으려 애를 썼고, 배가 불러오면서 감정적으로 변했다. 좁은 방에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가득 찼다. 나는 그 두려움과 절망 섞인 절규를 들으며 나와 그녀를 위해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나쁜 결심이 들었다.



그날은 일부러 독한 술을 준비했다. 40도가 넘는 양주였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와 나는 빌라 옥상에서 그 술을 한 병 다 비웠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뛰어내릴 생각이었던 것 같다. ‘죽음으로 안식을 얻자.’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말이다. 하지만 난 죽고 싶지도 그녀를 죽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죽을 이유도 없을뿐더러 아직 삶은 내게 소중하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미쳐있었고 미친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아이를 죽이자, 그걸로 안식을 얻자.”


일순간 그녀의 눈이 경멸의 빛으로 바뀌었다. 술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연신 구토를 해댔다. 난 그녀를 부축해 계단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구토는 멈췄지만, 몸에서 무엇이라도 꺼내야 하는 사람인 양 꺽꺽대는 소리를 냈다. 그럴 때마다 침과 눈물을 쏟아 내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들기며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계단 아래는 옥상에서 내려다본 거리의 풍경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너머로 차가운 회색빛 시멘트 바닥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안식은 이곳에 있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는 썩 생기지 않던 용기 비슷한 것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들기는 손에 힘을 실었다. 앞으로 잔뜩 몸을 숙이고 있던 그녀의 등에 몇 번 북소리 같은 소리 뒤로 그녀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퉁퉁, 살덩이가 굴러가듯 그녀는 계단 저 아래에 있다. 그녀의 하얀 치마 아래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은 안식을 얻은 표정이었다. 아이처럼 잔뜩 웅크린 채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나는 무언가 내 머리와 목, 척추로 이어지는 신경다발 중 도덕성을 만드는 다발이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 끊어진 틈새로, 서서히 끈적하고 더러운 안도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이제 끝이다...’ 잠에 든 그녀 옆에 앉아 나는 구급대를 불렀다.



그녀는 살았고, 아이는 죽었다. 의사는 그녀가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녀는 그것을 듣고 울지도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러온 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홀쭉해졌고 몇 주가 지나고는 처음 술집에서 보았을 때의 그녀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이 일의 경위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의사와 그녀는 모두 사고라고 생각했고, 그녀의 부모에게 이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아이가 사라지니 그녀가 다시금 편해졌다. 그녀의 몸에 살이 점점 붙어 갈수록 정신에 간 상처도 치유되는 듯했고, 몇 년 뒤 그녀와 나는 직장이 생기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지 않겠냐는 양가 부모님들의 부탁과도 같은 물음에는 늘 ‘다음에’라고 겸연쩍게 웃어넘기면 그만이었다.



오늘은 첫 결혼기념일이었다. 나는 꽃다발과 목걸이를 준비했고 그녀는 넥타이핀을 준비했다. 그야말로 평범한 결혼기념일이었다. 우리는 결혼 후 거의 갖지 않던 잠자리를 보내고, 술을 마시자는 그녀의 권유에 식탁에 앉았다. 어쩐 일인지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엄청나게 독한 양주를 미리 사 두었고, 나는 연거푸 술을 마셔댔다. 금세 나는 취했고, 이제 그만 자러 가자고 할 참이었다.


“오빠 그날 기억해…?”


털이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그날’이라고 하면 내가 그녀를 계단에서 민 날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고,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다.


“애를 죽였는데 오빠는 마음이 편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고 싶었다. 수많은 변명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러한 변명은 나의 죄를 정당화시켜주기보단 내가 죄인임을 더 확실하게 해주는 것들 뿐이었다. 적어도 날이라도 밝고 정신이라도 온전하면 대화를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리에서 일어나고자 했지만 어쩐지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술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부끄러움이 죄책감과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이렇게 위로하곤 했다. 그때는 나도 너도 어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역시 그때 죽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죽을 걸 그래서 오빠도 나도....”


그녀가 차가운 시선으로 벌벌 떠는 나를 바라보았다.‘아니야 아이 같은 건 필요 없어.’ 내 목은 이제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울음이 차올라서가 아니라, 마치 무언가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목의 근육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주방으로 걸어가 싱크대 밑에 있는 선반을 열고, 긴 칼을 꺼냈다. 탁자에 앉아 굳어있는 나는 눈동자만 힘겹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칼이 무엇 위한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리 두렵지도 않았다. 차가운 이물감이 들더니 순간 타들어 가는 통증으로 바뀌었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오빠를 죽이면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녀의 눈은 연민과 후회로 가득 차 보였다. 어쩐지 칼에 찔린 건 나지만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피를 쏟아 내는 나를 안고 그녀는 소리를 내 울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를 죽이면서 안식을 얻을 순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도 아마 알고 있으리라. 나 따위 죽여봐야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을.



다시 돌아와 나는 죽어가고 있다. 아마 몇 분 안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편안하다. 죽을 때 무슨 호르몬이 나와서 그런 것 같다던데, 이제 와 중요하진 않다. 역시 안식은 죽음에 있었던 것이었나. 그녀가 신발장에서 밧줄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이미 계산된 움직임처럼 성큼성큼 난간 쪽으로 걸어가 난간에 밧줄을 걸었다. 그녀를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목에 줄을 감는 그녀를 보니 왜 그녀를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니 나는 언제부터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고, 언제부터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 대학가 술집에서 술을 마신 그날부터 이렇게 되기까지 이미 결정되었던 것일까. 마치 긴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목에 줄을 다 감은 그녀는 난간을 붙잡고 난간 밖에 섰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죽음으로 안식을 얻자’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떨군 고개를 들어 자꾸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보았다.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 난간에 팽팽해진 줄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제 나도 안식을 얻으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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