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의 대행진 -팔레스타인 난민이 저격수에 맞서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팔레스타인인들은 매년 3월 30일을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의 의미를 되새기는 ‘땅의 날(Land Day)’로 기념한다. 대재앙(나크바)으로 조상들이 빼앗기고 쫓겨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땅으로의 귀환을 염원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땅은 단순한 생활의 공간 이상으로, 역사와 신앙과 문화가 숨 쉬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1976년 3월 30일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지구 북부의 갈릴리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의 땅 2,000헥타르를 몰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땅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여 ‘유대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었다.

갈릴리 지역은 북쪽으로는 리타니 강(현재 레바논과의 경계), 동쪽으로는 요르단 강과 갈리리 호수, 서쪽으로는 지중해 해안의 농지를 끼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심장부다. 이 지역의 나사렛, 디베랴, 가버나움, 세포리스, 벳세다 등의 도시는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고대부터 이곳에서는 학문과 문화가 융성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고대 도로가 지나고 있어, 바벨론,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 등 다양한 문화가 교류했다.

로마 시대 헤롯왕 통치기에는 이곳에 목욕탕, 극장, 체육관 등 헬레니즘 양식의 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성서는 이 시대 예수가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요르단 강 인근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예수가 12 제자들을 만나고 기적을 행한 곳이 갈릴리 지역이다.

이후 갈릴리 지역은 여타 팔레스타인 비잔틴 제국, 이슬람 왕조, 십자군 세력의 지배로 이어지며 유대인들의 시야에서는 다소 멀어져 있었다.

십자군의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한 후 그간 이방인의 억압 속에 살아온 유대 지성인들은 학문과 문화의 자유를 찾아 갈릴리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들은 이 지역의 디베랴(티베리아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유대 율법집(슐찬 아루크)을 편찬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지역 토지 몰수 계획 발표에 이 지역 팔레스타인인들은 대규모 시위로 저항했다. 시위는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으로 확대되고 해외의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뜻을 같이했다. 이스라엘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팔레스타인인 6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군은 수백 명의 시위 참가자를 체포해 갔다. ‘땅의 날’의 기원이 되었다.

2018년 ‘땅의 날’에 맞춰 가자 주민 3만여 명이 이스라엘 국경의 분리 장벽에 모여 ‘귀환의 대행진’(Great March of Return)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분리 장벽 넘어 이스라엘이 빼앗은 조상들의 땅을 찾아 중단 없이 행진을 계속하자고 결의했다.

이스라엘군은 분리 장벽 사수를 결의하고 가자 주민들이 장벽까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접근 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병력과 화기로 장벽을 둘러싸고 곳곳에는 저격수를 배치했다.

양측의 충돌은 격렬했다. 시위대는 이스라엘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장벽을 향해 행진을 계속했다. 장벽 넘어 이스라엘군을 향해 불 붙인 연을 날렸다. 이스라엘군이 장벽을 넘어 진입할 것에 대비해 장벽을 향해 불타는 타이어를 굴렸다. 이스라엘군은 장벽으로 접근하는 주민들의 머리 위로 드론을 날려 체류 가스를 발사했다. 장벽 앞 금지 구역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3월 30일 하루 동안 가자 장벽으로 접근한 가자 주민 15명이 이스라엘군의 사격으로 사망하고 1,400여 명이 부상했다.

귀환의 대행진 시위는 5월 14일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식에 맞춰 최고조에 달했다. 이스라엘군은 병력을 증강하여 무차별적으로 대응했고 장벽 주변은 화염으로 뒤덮였다.

현장을 촬영한 영상은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스라엘 저격병이 시위대를 향해 사격하고 환호하는 모습의 영상은 세계인의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의 과잉 대응을 비난하고,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었다.

유엔은 이스라엘의 실탄 사용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휴먼라이츠워치,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 단체도 비판 성명을 쏟아냈다.

이스라엘은 귀환의 대행진 시위가 하마스에 의해 기획된 테러 행위라고 주장하고, 국경 방어를 위한 정당한 조치였음을 강조했다.

2019년 3월 30일 땅의 날에도 ‘귀환의 대행진’은 재개되었다. 4만 명의 가자 주민들은 장벽 인근에 고향 마을 이름이 적힌 깃발과 고향 집 열쇠를 내건 천막을 치고, 그때 그곳에서의 일상을 재현했다. 어린이들은 공부를 하고, 청년들은 전통춤을 추며 축제를 하고, 어머니들은 음식을 준비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고향 집의 열쇠를 가문의 유산으로 대를 이어 보존한다. 그들은 고향에서 쫓겨날 때 문을 잠그고 열쇠를 챙겨 나왔다. 그들에게 열쇠는 자신들의 족보에 버금가는 뿌리이자 권리다. 귀환의 권리를 상징한다. 자식에게 열쇠를 물려주며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가르친다. 시위에 참석한 팔레스타인 소녀는 아버지가 물려준 열쇠를 들어 올리고 아버지의 땅을 돌려달라고 외친다.

이스라엘군은 이번에도 실탄을 발사하고 최루가스 드론을 띄었다. 시위대의 평화로운 일상은 돌을 던지고 타이어에 불을 붙이는 폭력적인 일상으로 변했다.


이스라엘군의 저격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분리장벽을 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피 속 깊이 흐르고 있는 귀향의 열망까지는 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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