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유네스코 회원국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선언은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데 대한 항의성 조치였다.
2011년 유네스코 총회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정식 회원국으로 승인했다. 이는 유엔기구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여타 회원국과 동일한 자격을 부여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회원국으로 가입시킨 국제기구에 대해서는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하고, 유네스코에 대한 분담금 납부를 중단했다.
미국은 유네스코가 회원국 자격 탈퇴를 승인할 때까지 회원국 자격을 유지했지만,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음에 따라 투표권을 상실하고 유네스코에서의 영향력이 급감했다. 유네스코는 유네스코대로 예산의 20% 이상을 차지하던 미국의 분담금이 들어오지 않아 운영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미국이 부재한 유네스코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음)
유네스코가 미국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은 자치정부의 지위 문제 이외에도 팔레스타인 유적지에 대한 세계유산 지정 논란과도 무관하지 않다.
2017년 유네스코는 헤브론 구시가를 팔레스타인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동시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포함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헤브론 구시가에는 막벨라 동굴(Machpelah Cave) 위에 세워진 아브라함 사원이 있는데, 이곳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모두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이 묻힌 곳으로, 이슬람만이 아니라 3대 종교 모두에게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 사원은 히브리어로는 마아라트 하마크펠라, 아랍어로는 알-하람 알-이브라히미(Al-Haram Al-Ibrahimi) 불린다. 이곳에는 아브라함 자신과 그의 부인 사라, 이들 사이에서 출생한 이삭, 이삭의 부인 리브가, 이삭과 라브가의 아들 야곱, 야곱의 첫 번째 부인 레아가 묻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세기 23장에는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죽은 부인 사라를 위해 막벨라 동굴을 매장지로 구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슬람 유대 공동의 조상 아브라함의 죽음 위에 세워진 아브라함 사원은 예루살렘의 황금 돔 사원과 유사한 배경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아브라함 사원은 이슬람식 석조 건물로 7세기 이 지역을 점령한 칼리프 우마르가 아브라함 무덤 위의 유대 성소를 이슬람 사원으로 재건한 것이다. 이후 사원은 십자군 점령기에는 기독교의 교회로 사용되고 살라딘이 탈환한 이후에는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복원되었다.
이스라엘로서는 조상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는 헤브론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오슬로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많은 병력을 철수했지만 헤브론에서만은 철수를 미뤄왔다. 이미 많은 극우 성향의 유대인들이 헤브론에 정착촌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다. 아브라함 사원은 여전히 이슬람 사원으로서 무슬림의 기도 장소로 개방되었다.
1994년 미국계 극우 유대인 골드스타인이 이슬람 사원에 난입하여 기도 중인 무슬림 29명을 총격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원을 둘러싼 유대인-무슬림의 잠재된 갈등에 불을 붙인 것이다. 사건 후 이스라엘은 사원 내부를 유대 구역과 이슬람 구역으로 분리하고 사원 외곽을 통제했다. 무슬림들은 이스라엘군의 허가를 받아야만 사원 경내로 들어갈 수 있고, 사원 내부에서는 이슬람 구역으로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헤브론은 유대인-아랍인의 갈등의 중심지로 변해갔다.
1997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헤브론 협정(헤브론 재배치에 관한 의정서)을 체결했다.
협정으로 헤브론 주둔 이스라엘군의 약 80%가 철수하고 나머지는 정착민 보호를 이유로 계속 주둔했다. 헤브론 지역을 H1과 H2 두 지역으로 양분하고 H1 지역에서는 자치정부의 자치권을, H2 지역은 이스라엘의 통제권을 인정했다. 아브라함 사원은 H2 지역에 포함되었다. 유엔은 협정 이행을 감시하기 위해 헤브론임시국제주둔단(TIPH; Temporary International Presence in Hebron)을 파견했다.
헤브론과 함께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정이 정치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된 것은 동예루살렘에 대한 지정이다. 유네스코는 1981년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성벽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1982년에는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등재했다.
동예루살렘의 세계유산 지정은 이곳의 이슬람 유산에 대한 보호자를 자임했던 요르단의 신청에 따라 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정은 세계유산 협약에 따라 해당 유산이 위치한 국가가 관리 및 보존 계획을 포함한 유산 지정 신청서를 제출하고,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으로 지정할 경우 유산의 명칭과 함께 관리 책임이 있는 국가를 명시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이 지역의 종교적 정치적 민감성을 감안하여 유산 지정서에는 관리 국가를 명시하지 않고 그냥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성벽‘이라고 유산의 명칭만을 표기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실효적 지배 아래 있음에도 유네스코가 요르단의 신청을 접수하여 세계유산 지정 절차를 이행한 것은 세계유산 협약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며, 유네스코의 팔레스타인 편향성을 자인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이스라엘의 주장을 지지하며, 유네스코가 요르단의 동예루살렘 지정 신청을 인정한 것은 이스라엘의 주권을 침해한 정치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밀집한 지역으로 종교적 · 역사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약 0.9㎢ 면적으로 종교적으로는 유대 구역, 무슬림 구역, 기독교 구역, 아르메니아 구역 등 4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요 유적으로는 유대 성전의 흔적으로 유대교의 성지인 통곡의 벽(Western Wall),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 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 이슬람 성지이자 예루살렘의 상징적 건축물인 바위 돔 사원(Dome of the Rock),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간 길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묻혔다가 사흘 만에 승천했다는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있다.
성묘 교회는 326년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명에 의해 건축되었다. 기독교에 심취한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성서의 기록을 따라 골고다 언덕을 찾아 예수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하고 그 자리에 교회를 건축해 달라고 황제에게 건의했다.
교회 안 예수의 무덤으로 추정된 동굴은 '에디큘(Aedicule)'이라는 작은 지붕으로 덮여있다. 순례자들은 허리를 숙여 에디큘의 작은 입구로 들어가 좁은 동굴 속에 남아있는 예수의 묘석을 만질 수 있다.
성묘 교회는 로마 가톨릭, 그리스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교,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여섯 개의 각기 다른 기독교 종파가 공동으로 관리한다. 종파들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복잡한 협약을 통해 교회 안을 구분하여 관리하며 각자의 전통과 의례를 각자의 방식대로 행한다. 종파들은 공존과 상호 존중이라는 기독교의 가치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성묘 교회의 대문 열쇠를 기독교가 아닌 무슬림의 특정 가문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의 주데(Joudeh) 가문은 12세기 이래 현재까지 자손 대대로 성묘 교회의 열쇠를 맡아 관리하고 있다. 또 다른 무슬림의 누세이베(Nuseibeh) 가문은 열쇠를 교회 대문의 열쇠 구멍에 꽂아 실제로 문을 여닫는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즉 주데 가문은 열쇠의 원본을 관리하고, 누세이베 가문은 사본으로 매일 같이 교회 문을 열고 잠그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87년,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Salah al-Din)이 십자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그는 자비와 관용의 이슬람 정신에 따라 기독교의 상징인 성묘 교회를 파괴하지 않고 보존했다. 그는 성묘 교회의 관할권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는 기독교 종파들을 중재하여 교회의 열쇠를 어느 종파도 아닌 무슬림 가문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주데 가문과 누세이베 가문이 열쇠를 관리하게 된 것이다. 현재도 성묘 교회 열쇠 담당으로 지정된 누세이베 가문의 후손 중 한 사람은 매일 새벽 4시에 성묘 교회 문을 여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성묘 교회는 종교와 종파를 구분하지 않고 평화와 공존을 희구하는 인간의 지혜를 대변하고 있다.
그 땅에서 진행되고 있는 결코 지혜롭지 못한 국제정치의 현실과 대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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