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탄생 –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서다

명화는 혁명을 한다

by 다두


Lanaissance de Vénus - William-Adolphe Bouguereau


부그로가 1879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300 x 215 cm의 대작으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는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로, 고전적 기법과 이상화된 인체 묘사로 유명하다. 그는 살롱의 총아이자, 인상주의자들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그의 그림은 정교한 테크닉, 매끄러운 붓 터치, 완벽한 해부학적 묘사로 찬사를 받았다.


부그로는 파리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교육을 철저히 따랐고, 고전주의, 신화, 종교, 역사적 주제를 이상화된 형태로 표현했다.


그는 살롱에 수십 차례 입선하고 수상하며, 프랑스 미술계의 공식적 권위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누렸습니다. 특히 부르주아 계층과 국제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최고 훈장)을 여러 차례 받았으며, 이는 국가 권력과 예술의 권위가 결합된 제도권 예술의 최고봉을 인정받은 것이다.


부그로는 ‘예술은 고귀해야 하며,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믿고, 인상주의자들의 ‘거칠고 즉흥적인 화풍’을 비판했으며, 인상주의자들은 그를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미술의 적폐로 간주했다.


20세기 초반, 인상주의와 현대미술이 급부상하면서 부그로는 명성은 고전주의의 마지막 화가로서 급격히 쇠퇴했지만, 21세기 들어 그의 테크닉과 미학이 재조명되며 고전주의에 대한 향수를 부추겼다.


부그로의〈비너스의 탄생>(La Naissance de Vénus, 1879)은 고대 로마 신화의 비너스(Venus)가 바다에서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고전적 아름다움과 화법적 완성도가 극대화된 누드화로 평가받았다.


그림의 중심에는 가리비 껍데기 위에 알몸의 비너스가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며, 이상적인 몸매를 과시하고 있다. 긴 갈색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며, 차분하고 평온한 표정을 취하고 있다.


주변에는 푸티(큐피드), 님프, 켄타우로스 등 신화적 존재들이 비너스를 둘러싸고 환영한다. 켄타우로스는 나팔고둥을 불며 그녀의 도착을 알리고, 비너스를 상징하는 돌고래가 껍질을 끌고 있다.


그림 왼쪽 상단의 구름 속에 붓을 든 듯한 팔과 머리의 실루엣이 보이는데, 부그로 자신을 형상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 그림이 당시 아카데미즘을 기반으로 한 살롱전에서 엄청난 극찬을 받았음에 불구하고, 진보적인 화가들은 이 작품이 “기계적이고 진부한 아카데미즘의 상징”으로, 예술의 생명력을 잃은 ‘교과서적 그림’이라고 조롱했다. 이들은 부그로의 극사실적 묘사와 고전적 구도가 기법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감정과 개성이 지극히 결여된, 혼이 없는 그림으로 평가한 것이다.


당시 인상주의를 표방한 화가의 한 사람인 드가는 누군가 정갈하고 개성 없는 그림을 그리면 ‘꼭 부그로 같네’라고 비꼬았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이에 더하여, 부그로는 신의 존재인 비너스의 신비감을 완전히 제거하여 관음적 대상으로 전락시켜, 오직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그림’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Nymphs and Satyr - William-Adolphe Bouguereau


부그로의 누드화로 <비너스의 탄생> 못지않게 명성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또 다른 작품으로는 <님프와 사티로스>(Nymphs and Satyr)가 있다. 이 작품은 1873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되어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너무 외설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수십 년간 창고 속에 방치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님프와 사티로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극사실주의적 누드 회화다. 사티로스는 반인반수로 숲 속에서 존재하며 본능과 욕망을 상징한다. 반면, 님프는 자연의 정령으로,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성으로 존재한다.


그림은 네 명의 님프가 장난스럽게 사티로스를 물가로 끌어당기며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님프들의 피부는 우윳빛으로 빛나며, 근육과 곡선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티로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저항하지만, 힘보다는 유희와 유혹의 분위기에 이끌리는 모양새다. 이는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모습으로 전통적 성역할을 뒤엎는 발상이다.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 존 울프는 살롱전에 출품된 이 작품을 35,000프랑이라는 고가로 구매하여 자신의 저택에 전시했다.


이후 1888년, 작품은 경매를 통해 뉴욕의 최고급 호텔 ‘호프만 하우스’로 옮겨져 20년간 바에 전시되며 유명 인사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품은 ‘너무 선정적이고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작품을 매각했다.


1901년 신원 미상의 새로운 매입자는 작품의 내용이 너무 외설적이라 공공장소에 전시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창고에 보관했다.


1942년 미술품 수집가 로버트 스털링 클라크가 우연히 창고에 방치된 이 작품을 발견해 소장하다,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타운의 클라크 미술관에 인계했다.


지극히 보수적인 고전주의의 최고봉이라는 부그로의 그림이 외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부그로 스스로는 야한 누드를 그린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그렸다고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그는 고전주의의 전통에 충실한 최고의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상적인 아름다움도 지나치게 극한의 수준으로 표현될 경우 외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는지도 모른다.


일각은, 부그로가 그린 극한의 아름다움은, 당대 프랑스 사회를 지배한 이중적 미의식을 충분히 계산한 부그로 자신의 의도된 작법이라고도 평가한다.


당시 프랑스의 상류층과 살롱전의 관객들은 ‘고전주의로 포장된 에로티시즘’을 즐긴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외설적 수준의 관능적 묘사라도 고전주의라는 형식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도덕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너무 완벽하면 외설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논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부그로의 작품은 예술의 가치와 의식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시선에 따라 지속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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