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랭 드 라 갈레트- 빛은 춤을 만들고 낭만으로 흐른다

명화는 혁명을 한다

by 다두


Pierre-Auguste_Renoir,_Le_Moulin_de_la_Galette.jpg?type=w773 Le Moulin de la Galette - Pierre-Auguste Renoir


르누아르가 1876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131 x 175 cm 크기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는 인상주의의 따뜻한 심장이라 불릴 만큼, 인간의 삶과 감정을 빛과 색으로 노래한 화가다. 모네가 자연 속의 빛을 쫓았다면, 르누아르는 그 빛 아래 숨 쉬는 사람들의 일상을 온기로 그렸냈다.


르누아르는 모네, 드가, 시슬레 등과 함께 1870년대 인상주의 운동을 이끈 주역 중의 한 사람이다. 그도 모네와 다름없이 야외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플레네르 회화를 실천하고, 빛과 색의 변화에 따라 인물과 풍경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르누아르는 인물화에 탁월한 감각을 가진 화가로, 자연보다는 인물 중심의 인상주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특히 여성의 피부, 옷의 질감, 웃음과 표정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묘사하여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전달했다.


그는 고통 많은 세상에서 예술은 삶을 위로하고 보는 이의 감각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모네의 빛이 연못 속 수련으로 반짝이며 흘러내린다면, 르누아르의 빛은 그림 속 인물의 살결에 포근하게 스며들고 있다.


르누아르도 초기에는 보수적 기준의 살롱전에서 외면받았으나 인상주의 화풍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결국은 프랑스의 국민적 화가로 추앙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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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살롱전에 출품한 <양산을 쓴 리즈>는 당시 보수적인 미술계로부터 생경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대중의 반응도 싸늘한 수준이었다.


1874년 살롱에 반기를 든 모네, 드가 등이 사진작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시도한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특별관람석>이라는 작품을 출품했으나, 이는 오히려 화단과 대중들이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까지도 싸잡아 조롱하게 만든 대표작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누아르는 자신의 화풍을 포기하거나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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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제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공개하면서, 르누아르는 비로소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1880년대 후반부터 르누아르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고전주의적 양식을 추구하며, 보다 정교한 형태와 구도를 탐색했다. 그때 그가 발표한 <큰 목욕하는 사람들>(1887)은 르누아르를 프랑스 근대 회화를 주도한 핵심 인물 중의 하나로 주목받게 했다.


640px-Renoir_-_Les_grandes_baigneuses,_1901-1902.jpg?type=w773 Les grandes baigneuses - Renoir


<큰 목욕하는 사람들>은 르누아르를 누드화의 대가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누드는 단순한 신체 묘사를 넘어서 관능성과 생명력, 고전적 아름다움이라는 핵심적인 주제 아래 등장했다.


르누아르는 인체를 딱딱한 해부학적 구조로 그리기보다, 살결의 부드러움과 빛의 흐름을 강조했다. 그의 누드화는 에로틱함보다는 생명력과 자연미를 강조하며, 여성의 몸을 자연의 일부처럼 묘사했다. 즉, 르누아르의 누드화는 라파엘로나 엥그르 같은 고전주의 대가들의 전통적 기법을 존중하면서도 대상 인물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구도와 형태를 중심으로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와 미술관들은 르누아르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전시했다. 그는 생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이 걸린 몇 안 되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말년에 관절염으로 손이 굳었지만, 붓을 손에 묶고 끝까지 그림을 그리며 국민적 예술가로 존경을 받다 191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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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랭 드 라 갈레트의 춤>은 르누아르의 1876년 작품으로, 일요일 오후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 카페 정원에서 펼쳐지는 야외 무도회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갈레트는 얇고 둥근 형태의 ‘파이’나 ‘팬케이크’ 같은 프랑스 전통 음식의 이름이고, 믈랭은 풍차를 말함에 따라 ‘물랭 드 라 갈레트’는 갈레트를 만드는 풍차 집이라는 의미로, 실제로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었던 레스토랑 이름이다.


파리의 예술가와 중산층 시민들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몽마르트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에 모여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휴일을 즐겼던 곳으로, 르누아르도 이곳을 삶의 기쁨이 흘러넘치는 공간으로서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것이다.


당시 몽마르트르 언덕은 풍차로 유명했다. 몽마르트르는 파리 북쪽의 가장 높은 언덕(약 130m)으로 바람이 잘 불어 풍차를 돌리기에 최적의 위치였다. 그래서 농민들은 파리 외곽에서 생산된 곡물들을 빻기 위해 이곳에 풍차들을 세워 운영했으며, 몽마르트르 언덕과 함께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파리가 도시화되면서 풍차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대신 예술과 낭만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풍차 주변에는 카페, 무도장, 술집, 예술가들의 아틀리에 등이 생기며 르누아르뿐만 아니라 툴루즈 로트렉, 피카소 등도 이곳을 창작 활동의 무대로 삼았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춤> 속에 등장한 인물들도 단순히 익명의 군중이 아니라 르누아르의 친구, 연인, 예술가 동료들이다.


그림 왼쪽 아래 짙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남성은 프랑수아 트랑탱이라는 이름의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모델이다. 검은색 복장을 한 여성은 믈랭 드 라 갈레트의 단골손님으로 르누아르의 모델이기도 한 마르그리트 르그랑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 오른쪽의 여성은 르누아르가 자주 그린 배우 제닌 사라리이다. 그림 중앙에서 춤을 추는 남성 중의 한 사람은 피에르 프랑클이라는 이름의 르누아르의 동료 예술가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등장인물들의 옷과 얼굴에 반사되어, 춤이 빛을 흔들고, 빛이 춤을 따라 흐르는 듯한 느낌이다.


르누아르는 춤추는 사람들을 특정하여 그들의 개성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발하는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시각적 리듬에 담아 빛 속에 흐르게 했다.


그들의 평화와 낭만이 화창한 일요일 오후의 햇살 속에 녹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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