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혁명을 한다
드니가 1893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171.5 × 137.5cm 크기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는 1870년 11월 25일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그랑빌(Granville)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와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13세 때부터 일기를 쓰며 “나는 기독교 화가가 되어야 한다”라고 다짐했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을 자주 방문하고 프라 안젤리코, 라파엘로, 보티첼리 같은 르네상스 화가들의 종교화에 크게 감명했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방식의 종교화를 그리지는 않았다. 그는 1880년대 말 파리에서 결성된 나비파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며 상징주의적이고 장식적인 회화를 추구했다.
그는 “그림은 전쟁터의 말이나 누드 여인을 말하기 전에 색채로 덮인 평평한 표면이다”라고 말하며, 회화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색채의 질서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후에 입체파, 야수파, 추상미술에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드니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성화 화단(Ateliers d’Art Sacré)을 설립하고, 교회의 장식과 종교 예술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성화 화단에는 드니 이외에도 조르주 데스발리에르 등이 참여했다. 그들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사회에 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한 예술을 전파하고자 했다. 파괴된 교회 내부를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고 제단화를 새롭게 그려 걸었다. 젊은 화가들에게 종교 예술을 가르치며, 공동체적 작업장을 운영하며 교회 예술을 창작했다.
드니는 예술이 ‘신앙과 사랑을 표현하는 본질적 행위’라고 설파하고, 미술을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인 영적 체험의 대상으로 확장하기를 의도한 것이다.
그의 작품 <뮤즈들>(Les Muses)은 고대 신화의 여신들을 그린 것이기는 하나, 이면에는 그의 종교적 예술관이 잔잔히 녹아들어 있다.
작품의 배경은 생제르맹 앙레의 숲으로 현실의 세계다. 생제르맹 앙레는 파리 근교의 일드프랑스(Île-de-France) 지역으로 드니가 평생을 생활한 곳이며,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의 출생지로도 유명하다.
이 일대에는 35㎢에 달하는 거대한 숲이 우거져 있으며, 프랑스 왕들의 별궁인 생제르맹 앙레 성(Château de Saint-Germain-en-Laye)을 에워싼 형태로, 당시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었다.
뮤즈(Muse)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예술과 학문을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으로, 당시 시인과 음악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뮤즈는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인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아홉 명은 각자 특정 분야를 맡아 인간 세계에 창조적 힘을 불어넣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뮤즈들은 파르나소스 산과 헬리콘 산에서 살며 예술과 학문을 창조하고,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에서 노래와 춤을 담당하기도 했다. 학예의 신 아폴론이 그들을 지도했다.
고대인들의 문학과 예술 작품은 뮤즈의 등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여신이여, 노래하소서 ---’라고 뮤즈를 소환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예술을 창작한다는 것은 뮤즈의 속삭임을 담아내는 작업으로 여겨졌다.
고대 신화 속의 뮤즈들은 일반적으로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등 예술적 행위를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드니의 뮤즈들은 현세에 출현하여 그저 담소를 하는 정도 이외에는 정적인 자세로 묘사되어 있다.
드니는 자신의 <뮤즈들>의 배경으로 고대 신화를 차용하였으나. 그 진의는 신화의 얘기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화보다 더 완결된 예술과 우주의 질서를 지향하는 자신의 종교관과 예술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드니는 <뮤즈들>의 표현에 있어서도 입체적인 구도나 빛의 순간을 포착하기보다는, 화면을 평면으로 펼치고 마치 구획을 나누는 듯 색칠을 했다. 나무줄기의 수직선, 잎과 드레스의 곡선, 땅에 흩뿌려진 잎사귀 등은 마치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는 장식의 리듬감을 보여주고 있다.
숲 속의 초록 대신 칙칙한 가을을 연상시키는 비현실적인 색조를 사용하여 현실을 초월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뮤즈들은 개성이나 표정도 없이 기계적으로 단순화되어 그저 개념상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전형적인 나비파의 화풍이다.
일부 학자들은 드니의 <뮤즈들>에는 9명이 아니라 10명의 뮤즈가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그림 속 중앙 뒤쪽 나무 뒤의 희미한 형태도 뮤즈라고 보는 데서 기인한 것이며, 숫자적으로는 그가 아내 마르트를 뮤즈로 가정하여 그림에 그려 넣었는데, 그림 앞쪽 의자에 앉아 있는 2명의 뮤즈는 같은 마르트라는 것이다.
드니가 굳이 아내를 두 번씩 그려 10명의 뮤즈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그의 기독교(가톨릭)적 신앙과 예술적 신념에 대한 근거를 다소 확대하여 해석한 결과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 학자들은 드니가 10명의 뮤즈를 만든 이유는, 그에게 있어 10이라는 숫자는 10 계명과 같이 기독교적 신앙의 개념에서는 완전한 신성과 규범을 의미하고, 예술적 관념에서도 ‘테트락티스(Tetractys – 피타고라스 학파의 안정과 완결을 상징하는 삼각형의 10개의 점)’ 즉, 완전한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드니의 종교적 신앙과 예술적 실험의 결과를 확연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녹색의 그리스도>(Le Christ vert, The Green Christ)를 꼽는다. 이는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21 × 15cm의 작은 크기의 판지에 유화로 그렸다.
그림은 노란 십자가, 붉은색 배경, 녹색의 그리스도로 색채의 대비가 강렬하다. 정작 그리스도의 형상은 녹색 이외에 선명치 않다. 화면 아래쪽에는 노란색으로 희미하게 스케치된 천사와 신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발아래 피어있는 흰색의 꽃은 기독교적 전통에서 부활과 구원을 상징한다.
미술사는 <녹색의 그리스도>를 청년 드니가 시도한 종교적 상징의 독창적인 작품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드니도 다른 나비파 화가들과 다름없이 폴 세잔을 깊이 존경했다. 그는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인식했고, 나비파 화가들과 함께 세잔을 기리는 그림을 그렸다.
1900년 드니는 <세잔에게 헌사>(Hommage à Cézanne)라는 제목의 대작을 제작했다. 세잔을 향한 존경과 나비파의 결속을 의도한 작품이다.
그림에는 나비파 화가들과 비평가, 화상 등 15명이 모여 세잔의 정물화를 감상하고 있다. 드니 자신과 아내 마르트도 함께하고 있다.
세잔의 정물화는 사과 그림이다. 그러나 사과는 결코 과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도 아니고 기하학적인 구(球)의 형태일 뿐이다. 빨강이나 초록이 층층이 덧칠해진 사과는 돌처럼 단단한 물체의 하나다. 색은 질감을 표현하기보다는 무게를 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과는 테이블 위에 무심히 흩어져 있다. 그러나 위치는 다분히 의도된 수학적 예각 안에 있다.
드니는 세잔의 사과를 마치 제단 위에 모셔진 성물처럼 그렸다. 그 앞에 모인 예술가들은 이를 경배하고 있다.
이브의 사과가 인류의 운명을 바꾸고, 뉴턴의 사과가 과학의 혁명을 가져왔으며, 세잔의 사과는 근대 예술사에 위대한 혁명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나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