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 크로스 다리 – 야수로 색채와 형태에서 해방되다

명화는 혁명을 한다

by 다두



Derain_CharingCrossBridge.png?type=w773 Charing Cross Bridge - Derain


드랭의 1906년 작품이다. 81 x 100 cm 크기의 캔버스에 유채화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20세기 초 야수파(Fauvism) 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미술에 있어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채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길을 연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야수파(Fauvism)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등장한 혁신적이고 대담한 색채 중심의 미술 운동이다. 야수(Fauve)는 말 그대로 ‘야생 동물’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평론가들이 이들의 그림을 보고 야수들 사이에 고전 조각 하나가 놓여 있다고 비꼰 데서 유래했다.


야수파는 자연의 색을 무시하고, 화가의 감정과 직관에 따라 색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칠했다. 즉, 사람의 얼굴에 푸른색을 칠하거나, 하늘을 노랗게 표현하는 등의 방식이다.


또한, 대상의 세부적인 부분을 묘사하기보다는 형태 자체를 완전히 단순화하여 평면적으로 펼쳐 놓은 방식으로 구성했다. 그래서 그림 속의 형태는 사실적이지 않고 흡사 만화나 장식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기법은 고갱으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주의의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을 보다 발전시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야수파는 이렇게 자연과 대상을 눈으로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만큼 그렸다. 색채와 형태는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작가의 내면의 감정과 직관에 따라 자유롭게 재생산된 것이다.


드랭의 작품 <채링 크로스 다리>(Charing Cross Bridge)는 야수파의 화풍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채링 크로스 다리(Charing Cross Bridge)는 영국 런던의 중심부인 채링 크로스역에서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철교다. 당시 런던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 스모그가 만연했으며, 이는 템스강의 안개와 합쳐져 채링 크로스 다리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이에 많은 예술가의 작품의 대상이 되었다.


드랭은 1905년 런던을 방문하고 30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하나가 채링 크로스의 다리(Pont de Charing Cross)다.


그는 그림에서 스모그에 묻혀있는 회색빛 런던을 회색이 아닌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했다. 뿌연 하늘은 보라색으로, 강은 초록빛으로, 건물은 붉은색을 칠했다.


또한, 다리와 차량과 건물은 상세한 표현을 과감히 생략하고 굵은 윤곽선을 사용하여 평면적으로 처리했다. 차량과 사람의 실루엣은 터무니없이 왜곡되고 흐릿하게 표현되어 사뭇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야수파 그림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Charing_Cross_Bridge,_reflets_sur_la_Tamise_(1899-1901)_Claude_Monet_-_Balti.jpg?type=w773 Charing Cross Bridge, reflets sur la Tamise - Claude Monet


채링 크로스 다리는 예술가들에게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모네도 이곳을 방문하고 37점의 연작을 남겼다. 그는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였던 만큼 드랭과는 다르게 채링 크로스 다리를 배경으로 한 런던의 안개와 빛의 조화를 눈에 보이는 데로, 즉 인상을 받는 대로 그려냈다.


그는 채링 크로스 다리를 다양한 시간대와 날씨 조건에서 빛과 안개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는 다리 자체보다는 빛, 안개, 대기의 변화에 따른 시각적 효과에 집중하고, 다리는 화면 속 얇은 선으로만 표현했다.


연작 중 일부 작품에서는 기차, 빅벤, 의회 건물, 선박 등이 희미하게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보는 시간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인상을 그대로 표현한 결과였다.


즉, 야수파의 드랭은 채링 크로스의 다리에서 감정의 변화를 색으로 표현한 반면, 인상주의의 모네는 빛의 변화를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드랭과 함께 야수파의 선구자로 평가받은 또 다른 화가로는 마티스가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도 드랭과 함께 ‘야수파의 리더’로 불리며,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표현을 통해 전통적 회화의 틀을 깨뜨렸다.


Matisse-Woman-with-a-Hat.jpg?type=w773 Woman with a Hat - Matisse


마티스의 야수파적 회화로는 아내 아멜리를 모델로 한 초상화인 <모자의 여인>(Woman with a Hat, 1905)이 있다. 드랭이 런던이라는 도시의 풍경에 야수파의 기법을 적용했다면, 마티스는 아내를 그린 초상화에 야수파의 철학을 담아낸 것이다.


마티스는 그림에서 아내의 얼굴에 녹색 선을 긋고,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을 자유롭게 배치했다. 실제로 아멜리가 입고 있던 드레스는 검은색이었지만, 마티스는 이를 다양한 색으로 표현해 색채 자체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삼았다. 느슨하고 거친 붓질로 작품이 미처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또 다른 완성의 의미를 보여준다.


작품의 모든 것은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그리는 것을 거부하고 그린 것이다. 그림 속의 아멜리도 이미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가 아니라 마티스의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그려진 모종의 형태이고 색의 덩어리일 뿐이다.


이 작품은 1905년 살롱 도톤(Salon d’Automne) 전시에 출품되어 프랑스 화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드랭과 마티스는 1905년 여름 프랑스 남부의 콜리우르(Collioure)라는 해안 마을에서 함께 작업하며 야수파의 색채 실험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드랭은 마티스의 초대로 콜리우르에 함께 머무르며 강렬한 원색과 단순화된 형태로 지중해 풍경을 그려냈다.


이때 드랭이 그린 <돛을 말리는 풍경>(Le Séchage des voiles)도 같은 해 살롱 도톤에 출품되어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Le_S%C3%A9chage_des_voiles,_par_Andr%C3%A9_Derain.jpg?type=w773 Le Séchage des voiles - André_Derain



드랭과 마티스를 중심으로 한 야수파의 색채와 형태의 실험은 후에 전통적 재현 방식을 거부한 입체파(Cubism), 표현주의(Expressionism) 등 다양한 형태의 아방가르드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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