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 인간의 고통을 별빛에 그리다

명화는 혁명을 한다

by 다두



Vincent_van_Gogh_-_Starry_Night_-_Google_Art_Project_2.jpg?type=w773 Starry Night Over the Rhône - Vincent van Gogh


고흐의 작품으로 1888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72 x 92 cm 크기로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미술사에서 가장 강렬하면서도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삶은 고독과 불안정의 연속이었고, 이는 그의 그림에 강렬한 색채로 그대로 표현되었다.


그는 1853년 네덜란드의 브라반트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16세에는 헤이그의 미술상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노동자나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렸다. 당시 네덜란드는 도시화가 되지 않은 봉건적인 농촌 사회에 머물러 있었고, 기후상으로도 춥고 어두운 분위기였다.


이미 프랑스 파리로 진출하여 그림 판매업을 운영하고 있는 동생 테오는 형 고흐에게 보다 넓고 밝은 세상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주고 싶어 했다. 1886년 고흐는 동생의 지원으로 파리로 이주하여 테오와 함께 생활하며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역시 동생의 주선으로 모네, 피사로, 세잔, 쇠라 등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나 교류하며, 밝고 강렬한 색채와 빛의 의미를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보다 강렬한 빛을 찾아 파리에서 남부 론(Rhon) 강 인근의 아를로 이주했다. 아를은 프로방스 지방의 농촌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화창한 기후로 마을 전체가 마치 고흐의 아틀리에 나 다름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1년 반 정도 머무르며 <해바라기>, <노란 집>,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걸출한 작품을 그려냈다.


Vincent_van_Gogh_-_The_yellow_house_(%27The_street%27).jpg?type=w773 The yellow house (The street) - Vincent van Gogh


고흐는 아름다운 아를의 자연을 자신만이 향유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판단하고, 아를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 생각을 했다. 이를 맥락에서 그는 파리에서 알게 된 고갱을 초청하여 자신의 ‘노란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림을 그리고 예술을 논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 세계를 존중하고 동경하며 아를의 자연을 공유하는 듯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의 화풍과 성향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고흐는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그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강한 색조로 거침없이 그려갔다. 그러나 고갱은 관찰되는 자연의 대상보다는 내적 세계를 강조하며,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대상을 보다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1888년 12월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진정한 예술의 세계와 표현의 방식에 관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결론을 내지 못했고, 고갱은 고흐에게 아를을 떠나겠다고 소리쳤다. 이에 분노하고 실망한 고흐는 자괴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왼쪽 귀의 일부를 자르는 기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고흐는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 자신이 자른 귀를 신문지에 싸 평소 자주 찾았던 매춘부의 침대 위에 올려두고 노란 집으로 돌아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음날 아침 매춘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발견된 고흐는 아를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그의 정신 상태는 더욱 불안정해져 결국은 아를에서 북동쪽으로 25km 떨어진 생레미의 정신병원으로 후송되었다.


1년여간의 생레미 병원에서의 생활은 고흐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치료와 요양을 하면서도 15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대표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 <아이리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생레미 정신병원의 정원> 등은 이때 이곳에서 작업한 것들이다.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고흐는 파리 북쪽의 작은 마을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거처를 마련했다. 이는 동생 테오의 추천과 지원에 따른 결정으로, 그곳은 당시 많은 화가들이 살고 있어 예술적 분위기가 충만했고, 테오가 살고 있는 파리와도 멀지 않다는 장점이 있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도 고흐는 폴 가셰 박사(Paul Gachet)의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이곳에서의 그의 작품으로는 <가셰 박사의 초상>, <오베르의 교회>,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는 <밀밭과 까마귀> 등 150여 점이 있다. 겨우 70일 남짓한 오베르에서의 생활이었다.


Korenveld_met_kraaien_-_s0149V1962_-_Van_Gogh_Museum.jpg?type=w773 Korenveld met kraaien - Van Gogh


1890년 7월 고흐는 오베르 숙소에서 권총으로 스스로를 쏘아 세상을 마감했다. 역시 동생 테오가 달려와 그의 임종을 함께했다.


고흐는 자신의 고독한 예술의 여정을 일기를 쓰듯 자화상으로 남겼다. 그는 1886년 파리 생활을 시작하여 1889년 생레미 정신병원을 퇴원하기까지 35점 이상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의 자화상에는 삶의 고비마다 급속히 변화해 간 그의 외모와 내면의 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Self-Portrait with Grey Felt Hat)은 1887년 파리에서 생활할 때 그린 것이다. 당시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던 시기로, 마치 쇠라의 그림처럼 점묘법 기법으로 그렸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은 1889년 귀를 자른 사건 이후의 자화상이다. 사건 이후 그가 나름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과 자신의 행동 간의 괴리에 당황하는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냥 <자화상>(Self-Portrait)이라 이름 붙인 작품은 1889년 생레미 병원에서 요양하던 시절에 그린 것으로, 휘몰아치는 푸른 배경이 그의 정신적 혼란 상태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


그의 자화상은 미술적으로도 그의 색채와 기법이 어떻게 진보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Vincent_van_Gogh_-_Self-Portrait_-_Google_Art_Project_(719161).jpg?type=w773 Self-Portrait - Vincent van Gogh


고흐는 다작으로도 유명하지만 작품들 중에서 정식으로 판매한 작품은 단 한 점에 불과했다는 점에서도 가히 남다르다 할 수 있다. 그는 생전에 900여 점의 유화와 1,100점 이상의 드로잉을 남겼다. 이 중 유일하게 판매된 것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The Red Vineyard at Arles)이다.


고흐는 이 작품을 단돈 400 프랑을 받고 벨기에 출신 화가 친구인 외젠 보슈의 누나 안나 보슈에게 팔았다. 400프랑은 당시 기준으로 한 달 정도의 생활비에 불과했다. 안나 보슈 역시 화가이면서 미술품을 수집하며 가난한 화가들을 지원했다. 그녀는 고흐의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한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은 1888년 아를에서 그린 작품이다. 고갱과 함께 ‘노란 집’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바로 그 시기였다. 붉게 물든 포도밭과 수확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석양의 빛과 함께 강렬한 색채로 표현되어 있다.


석양은 고흐 자신의 불안정한 내면세계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도를 수확하는 농부의 겸손한 모습에서는, 그간 가꾸어온 예술의 열정을 완결시키려 한 인간 고흐의 연민을 엿볼 수 있다.


Vincent_van_Gogh_-_Red_Vineyard_at_Arles_(1888).jpg?type=w773 Red Vineyard at Arles - Vincent van Gogh


아를은 스위스에서부터 시작하여 프랑스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흐르는 론강 유역으로, 풍부한 햇빛과 건조한 암석질 토양으로 예전부터 포도밭이 즐비하고 와인 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14세기 아비뇽 교황청 시절 교황 요한 22세는 이 지역의 샤토뇌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 – 교황의 새로운 성)에서 직접 와인을 재배하기도 했다.


현재도 론강 일대의 계곡(Cote du Rhon)은 보르도, 부르고뉴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3대 와인 산지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론강 계곡의 와인은 강렬하면서도 균형된 풍미가 특징이다. 남부 론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코트 뒤 론(Côtes du Rhône)이라는 이름의 와인은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명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ône)은 그의 대표적인 야경 그림 중의 하나로, 밤의 고요함과 우주적 환상, 인간적 정서가 아름다우면서도 낭만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고흐는 실제로 론강의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 그림을 완성했다. 푸른색 하늘 속에서 노란 별빛이 강렬하게 번진다. 푸른색과 노란색의 대비는 왠지 불안하긴 하나 각자의 의미에 의지하는 존재로 생경하지는 않다.


론강에 비친 가로등 불빛과 별빛의 흔들리는 반사는 강물의 흐름처럼 생생하게 움직인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방황하는 듯한 두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우주의 한구석에 걸쳐있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노부부로 보이기도 하나 고흐에게 있어서는 서로를 의지하는 동반자를 의미한 것일 것이다. 한 사람은 고흐 자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갱이거나 동생 테오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론강의 밤은 낮보다 더 풍부한 색채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론강의 밤은 고독한 고흐의 마음에 반짝이는 활기를 주었음이 분명하다.


VanGogh-starry_night_ballance1.jpg?type=w773 Starry Night - Van Gogh


밤의 풍부한 색채에 매료된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 시절인 1889년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그는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의 고요한 풍경과 기억 속에 남아있는 론강의 별빛을 연결해 밤하늘의 소용돌이와 별빛을 그려냈다.


고흐는 그림 속에 11개의 별을 그려 넣었다. 이는 실제로 우주에 존재하는 11개의 별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나, 일부 학자들은 고흐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신학을 배웠다는 점에 비추어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열한 별’을 상징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림 속의 하늘은 강렬한 색채로 폭풍과도 같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화면 왼쪽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하늘로 치솟아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죽음과 애도를 상징한다. 마을은 죽음과도 같이 고요하다. 하늘의 격렬한 움직임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교회의 첨탑은 그의 고향 네덜란드를 연상시킨다.


고흐는 나름 희망과 낭만을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는 달리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별과 하늘의 거대한 우주의 숭고함 속에서 인간의 미미한 존재감을 자각하면서, 격동하는 자신의 불안을 고향의 영적 뿌리를 좇아 억누르는 인간적 몸부림을 담아내고 있다.


미국의 음유시인으로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Don McLean)의 <Vincent>는 <별이 빛나는 밤>을 배경으로 고흐의 고통과 고독한 삶을 노래했다.


<Vincent>는 고독한 천재 미술가의 정신적 고통을 음악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미술과 음악을 융합한 대중문화의 명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생전에 단 점의 작품만 팔렸다는 고흐의 작품들은 현재 세계적인 경매 시장에서 피카소나 모딜리아니 수준의 최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1888년 그가 그린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Orchard with Cypresses)는 202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1,720만 달러(약 1,500억 원)에 낙찰되었다.


고흐가 사후에야 평가를 받은 것은 그의 생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인간의 지성은 영원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Vincent_van_Gogh_-_Orchard_Bordered_by_Cypresse_-_ILE2017.12.1_-_Yale_Univer.jpg?type=w773 Orchard Bordered by Cypresse - Vincent van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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