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노프가 1898년에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다. 86 × 50 cm 크기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 1858년~1921년)는 벨기에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여동생 마르그리트를 모델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벨기에 그렘베르겐(Grembergen)에서 태어나 브뤼헤에서 성장했다. 법학을 공부했으나 상징주의 화가 자비에르 멜러리(Xavier Mellery)를 만나 화가로 전향했다.
1878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구스타브 모로, 들라크루아, 앵그르, 라파엘 전파(前派)의 작품을 접하며 큰 영향을 받았다.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848년 영국에서 젊은 화가들이 결성한 예술 운동 단체다.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Raphael) 이후의 미술이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규범적이라고 우려한 그들은, 라파엘 이전(Pre-Raphael)의 중세 초기 르네상스 미술의 순수성과 사실성을 되찾자는 취지로 활동했다.
라파엘 전파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등으로 있으며, 그들은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 문학 신화 종교적 주제, 강렬한 색채와 상징성을 강조했다.
라파엘 전파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대표 작품으로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를 꼽을 수 있다.
오필리아(Ophelia)는 셰익스피어 <햄릿>에서 덴마크 궁정의 귀족 여인이자 햄릿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순수하고 순종적인 성격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궁정의 법도를 지켜야 했으나 햄릿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몸부림친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에만 집착하게 된 햄릿마저 그녀를 멀리함에 따라 그녀는 결국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다 강물에 빠져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밀레이는 오필리아가 강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을 극도의 사실적인 방식으로 묘사했다. 그는 실제로 강가에서 수개월간 배경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셰익스피어가 의도한 오필리아의 운명을 손에 쥐고 보는 듯이 표현하려 했다.
1883년 크노프는 브뤼셀에서 결성된 ‘20인 회’(Les XX)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20인 회는 1883년 10월 변호사이자 출판가인 옥타브 마우스(Octave Maus)가 주도해 결성했다. ‘Les XX’는 프랑스어로 ‘20명’을 뜻하는 말로, 창립 당시 20명의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 등이 참여했다.
20인 회는 아카데미와 살롱 등 기존의 보수적 예술 풍조를 거부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작품 세계를 지향하며, 매년 브뤼셀에서 독립적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전시회에서 회원 20명은 각자 최대 6점의 작품을 출품하고, 해외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 1점을 선정하여 전시했다. 이에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조르주 쇠라, 폴 세잔,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 당시 유럽의 거장들이 20인 회의 전시회에 초대되었다.
이에, 20인 회의 전시회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점묘주의, 상징주의와 영국의 라파엘 전파 등의 회화를 벨기에에 소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이들은 전시회를 시 낭송이나 음악 공연이 함께하는 풍성한 예술의 축제로 만들고자 했으며, 드뷔시, 포레, 쇼송 등의 작품이 연주되기도 했다.
20인 회는 1893년 해산하고, 후신으로 ‘라 리브르 에스테티크’(La Libre Esthétique)라는 아방가르드 예술 단체가 설립되며 벨기에의 현대 미술계를 주도해 갔다.
크노프의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미술 세계는 그가 보들레르나 플로베르와 같은 당시 프랑스의 상징주의 문학에 심취한 것과 크게 연관되어 있다.
보들레르는 인간 내면의 어둠과 욕망을 탐구한 상징주의적 시 세계를 구현하고, 플로베르는 현실을 냉정하게 해부한 사실주의적 소설 세계를 완성하였다.
<악의 꽃>으로 대변되는 보들레르의 문학은 인간의 욕망, 죄, 타락, 아름다움을 동시에 노래하고, 고통 속에서도 미를 발견하려는 시적 태도는 크노프가 추구한 몽환적이고 내면적인 세계와 직접 연결되고 있다.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의 플로베르는 인간과 사회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묘사한 사실주의의 거장으로, 인간의 위선과 욕망의 허망함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크노프가 그림 속에서 꿈, 기억, 고독, 허무 등의 내면의 진실을 반영하는 데 큰 자극이 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크노프의 상징주의는 그가 말한 ‘오직 자기 자신뿐’(One has only oneself)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자기 자신’이란 눈으로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있는 내면의 세계, 정신적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크노프의 상징은 자기 자신만의 유일한 진실을 찾아 표현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외부로의 돌출이 아니라 내면으로의 침잠의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의 이 같은 예술적 태도는 그가 작품 속에서 인물들을 고독하게 배치하거나 현실과 차단된 듯한 분위기로 연출하여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크노프는 1898년 빈에서 개최된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의 첫 전시회에도 참여하며 아방가르드(전위)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확장해 갔다.
‘빈 분리파’는 18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주도로 결성된 아방가르드 예술가 그룹으로, 보수적인 아카데미 미술에 반발해 새로운 예술을 추구한 단체다.
빈 분리파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공예 등을 융합한 종합 예술(Gesamtkunstwerk)을 지향하며, 아르누보(Art Nouveau)와 상징주의적 경향을 바탕으로 화려한 장식성과 관능적 표현을 강조하고,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이라는 아방가르드 사상을 주창했다.
특히 빈 분리파는 건축을 종합예술로 보고 기능성과 예술성을 통합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양식을 창조했다. 그들은 기존 건물의 대칭적 구도를 거부하고 비대칭적 형태, 유기적 곡선, 기하학적 패턴을 강조했다.
그들이 자체적으로 설계하여 건축하고 자신들의 전시관으로 사용한 Secession Building은 아직까지도 빈 분리파의 상징적 건축물로 남아있다.
크노프도 빈 분리파와 다름없이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의 모더니즘을 지향하며, 디자인과 공예에서 아르누보를 시도한 영국의 잡지 The Studio와 협업하고, 그의 브뤼셀 자택 겸 작업실을 직접 설계하며 건축의 상징성과 장식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자택의 담장을 마치 감옥처럼 단단이 둘러쳐 외부와의 차단을 강조하고, 거실 바닥에는 금빛의 원을 그리고 ‘On a que soi’(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자신의 철학인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성소’(Temple of the self)로 작품화한 것이다.
그의 작품 <인센스>도 다른 작품들과 다름없이 여동생 마르그리트를 모델로 삼아 그려진 것이다. 화면의 중심에 그녀가 있다. 화면에 드러난 그녀의 몸은 얼굴과 장갑 낀 손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화려한 브로케이드 직물로 덮여 있다.
정작 그녀를 싸고 있는 직물의 무게감과 문양이 인물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직물에는 엉겅퀴(Thistle)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고통과 방어의 상징으로, 그녀를 세속적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듯한 의미를 가진다. 즉, 직물은 그녀 자신만을 위한 보호와 은폐를 상징하는 것이다. 외부 세계와의 차단을 의미한다.
화면 상단에는 ‘DEO DEI’(신에게서 신에게)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어 종교적 의미를 강화한다. 인물 뒤에도 후광이 만들어져 성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직물의 색채는 갈색과 금빛이 만연하여 마치 성직자의 제의 마냥 신비롭고 엄숙한 인상을 주고 있다.
작품의 제목 인센스 - 향은 종교적으로 기도와 영혼의 상승을 상징하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사용되는 것이다.
크노프의 상징에 숨어있는 ‘자신뿐’의 철학은 그의 작품 <스핑크스의 애무>(Des Caresses)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은 그가 빈 분리파 전시에 출품한 것으로, 당시 화단에 강렬한 충격을 주었으며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작품 속에는 인간과 스핑크스가 등장한다. 스핑크스는 여성의 얼굴과 치타의 몸을 가진 기괴한 존재로 표현되었다. 스핑크스는 위험과 매혹, 파괴적 욕망을 상징한다. 인간과 괴물의 교감은 금기사항이다. 금기는 더 큰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크노프로서는 스핑크스는 사악한 외부 세계의 존재다. 그는 인간이 이로부터 철저히 차단되고 분리되어 오직 자신만의 고독한 세계로 복귀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상징은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는 유일한 도구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자신만의 세계는 상징으로만 표현할 수 있다. 고독하고 쉽지 않은 작업이다.
현대 예술이 어려운 이유다.
<이 글의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나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