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수레바퀴 – 불확실해서 더 잔혹하다

명화는 혁명을 한다

by 다두


Edward_Burne-Jones_-_The_Wheel_of_Fortune.jpg?type=w773 The Wheel of Fortune - Edward Burne-Jones


<운명의 수레바퀴>(The Wheel of Fortune)는 에드워드 번-존스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다. 200 × 100 cm 크기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화면의 대부분은 거대한 나무 바퀴가 있다. 바퀴를 돌리는 운명의 여신(Fortuna)은 눈을 감고 무표정하고 무심하게 바퀴를 움직인다. 여신의 모습은 고전적 조각을 연상시킨다.


바퀴에는 세 사람이 매달려있다. 왕관과 홀을 쥔 권력자로서의 왕, 왕의 머리 위에 서 있는 노예, 그리고 월계관을 쓴 채 바퀴 아래로 떨어지는 시인이 있다. 인물들의 근육과 자세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미켈란젤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바퀴의 회전에 따라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며, 인간의 권력과 명예가 운명 앞에서는 한없이 덧없음을 상징한다. 화면은 회색, 갈색, 청록색 등 비교적 차분한 색조로 구성되어, 운명에 치인 인물들의 무력감을 강조하고 있다.


작품은 1883년 런던의 그로스베너 갤러리에서 전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여러 국제 전시회에 출품되었으며, 1980년 프랑스 국립미술관이 구입하여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미술사적으로 <운명의 수레바퀴>는 라파엘 전파(前派)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의 화법과 중세 운명론을 재해석한 것으로 19세기 영국 상징주의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번-존스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진실한 삶의 이미지다. 그것은 우리를 차례로 데려가고, 결국 우리를 짓밟는다”라고 말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은 로마신화의 포르투나(Fortuna) 여신으로 간주된다.


로마신화에서 포르투나 여신은 ‘행운과 운명’을 관장하며 무자비한 힘으로 인간의 삶을 좌우한다. 그녀는 바퀴를 돌려 왕을 몰락시키고 평민을 높이는 등, 인간의 지위와 운명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음을 과시했다.


포르투나는 법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처럼 눈을 감고 있다. 두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자칫 유사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포르투나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운명을 냉정하고 무심하게,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결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차별에는 별다른 기준이 없다. 오히려 불확실성과 무근거를 상징한다. 반면 유스티티아가 눈을 가린 것은 이미 정의라는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을 어긴 경우에는 차별 없이 응징한다는 것이다. 매우 확정적이고 뚜렷한 기준이 전제된다.


로마 시대 정치가이자 웅변가이며 철학자였던 키케로(Cicero)는 그의 저서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Deorum)에서 포르투나를 인용하여 인간의 삶이 우연과 행운에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타키투스(Tacitus)나 수에토니우스(Suetonius) 같은 역사가들은 황제의 흥망성쇠를 ‘포르투나의 변덕’으로 해석했다. 젊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손자들이 요절한 사건을 ‘잔혹한 포르투나(Atrox Fortuna)’가 작동한 것으로 묘사했다.


포르투나는 때때로 코르누코피아(풍요의 뿔)를 들고 나타나, 곡물과 풍요를 보장하는 여신으로도 숭배되었다. 로마 시민들은 여신을 ‘Fortuna Annonaria’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포르투나의 신전에서 축제를 열렸다.


로마 인근 프라에네스테(Praeneste)와 안티움(Antium)에는 유명한 포르투나의 신전이 있다. 로마인들은 국가와 개인의 흥망성쇠가 포르투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고,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거나 전쟁에 앞서서는 신전의 재단에서 신탁을 기원했다.


640px-Edward_Burne-Jones_-_The_Doom_Fulfilled.jpg?type=w773 The Doom Fulfilled - Edward Burne-Jones


The_Arming_of_Perseus_-_Edward_Burne-Jones,_1885.jpg?type=w773 The Arming of Perseus - Edward Burne-Jones


에드워드 번-존스(Edward Burne-Jones)는 1833년 8월 28일 영국 버밍엄에서 출생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예술에 매료되어 학위를 마치지 않고 화가의 길로 전향했다.


1856년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를 만나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아 중세적이고 낭만적인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이후 신화, 전설, 중세의 기사도의 세계를 몽환적이고 신비롭게 표현하며 독자적인 상징주의 화풍을 발전시켰다.



Edward_Burne-Jones_Madness_of_Tristram.jpg?type=w773 Madness of Tristram - Edward Burne-Jones


번-존스는 윌리엄 모리스와 함께 ‘예술과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주도하며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분야의 장식예술을 제작하기도 했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영국의 시인이며 사회주의 사상가로서, 당시 산업화와 기계화로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되는 물품 대신, 장인 정신과 아름다움을 담은 수공예적 디자인을 강조한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번-존스를 만나 평생의 동지가 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존 러스킨의 저서들을 읽고 예술과 건축에 심취하고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도 교류했다. 이로 인해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뮤즈로서 많은 작품의 모델로 유명했던 제인 버든(Jane Burden)과 결혼했다.


그는 번-존스와 함께 Morris, Marshall, Faulkner & Co.라는 이름의 장식예술 회사를 설립하고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가구, 직물, 벽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그는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소설인 <The Earthly Paradise>, <News from Nowhere> 등을 집필하고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노동자와 예술을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Burne-Jones,_William_Morris,_Stained-glass,_Flight_to_Egypt,_Trinity_Church,.png?type=w773 Stained-glass, Flight to Egypt, Trinity Church, Boston - Burne-Jones, William Morris


번-존스는 모리스와 함께 수많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했다. 아직도 버밍엄 대성당, 옥스퍼드 대학 교회 등에는 그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남아있고, 여러 작품은 미국과 호주에도 전해져 있다.


모리스 & Co. 에서 제작된 태피스트리의 상당수는 번-존스의 도안에 기반하여 제작되었다. 그때 제작된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라는 제목의 태피스트리는 번-존스가 인물을 도안하고 모리스가 제작을 총괄한 것으로, 당대 태피스트리 작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번-존스는 모리스와 함께 세라믹 타일, 모자이크, 보석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그들의 공예 운동의 핵심 정신인 ‘예술과 생활의 통합’을 실천한 것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Burne-jones_cophetua.jpg?type=w773 King Cophetua and the Beggar Maid - Edward Burne-Jones


번-존스의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왕 코페투아와 거지 소녀>(King Cophetua and the Beggar Maid, 1884년)이 있다.


이 작품은 1884년 런던 전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번-존스의 상징주의적 회화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번-존스는 이 작품에서 중세 전설 속의 왕 코페투아가 거지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를 왕비로 맞이한다는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다. 왕은 만족감과 평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마치 전리품을 바라보듯 거지 소녀를 올려다보고 있다. 거지 소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당혹감과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왕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림은 장엄한 구도와 인물의 대비가 사랑의 초월적 힘을 상징적으로 과시한다. 사회적 신분의 경계를 초월하는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위대하고 존엄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의 표정과 거리감은 그리 감격스럽지만은 않다. 어린 화동들의 눈빛도 뭔가 의혹스러운 느낌이다.


현재로서는 왕과 거지 소녀에게 ‘잔혹한 포르투나’가 아니라 ‘아름다운 포르투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들을 매달고 있는 수레바퀴가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포르투나는 두려운 존재다.


번-존스의 상징은 아름답게 표현된 두려움이다. 운명이 잔혹한 것은 정의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E.Burne-Jones_Miriam_St.Giles.jpg?type=w773 Miriam, St.Giles - Burne-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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