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역사는 토라(Torah), 느비임(Nevi'im), 케투빔 (Ketuvim) 등의 히브리 성서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히브리 성서는 기원전 천년 경 다윗 왕이 팔레스타인 전역에 걸친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왕국은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할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 왕의 이스라엘 왕국은 유일신 신앙과 엄격한 윤리 규범을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힘을 과시하며 주변 여러 민족을 정복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르고 요르단강 동쪽의 유대 지파와, 시리아에서 북쪽 하맛 지역까지를 지배하고 있던 아람(수리아) 사람들을 정복하여 팔레스타인 전부를 아우르는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다.
블레셋(Pelishtim, Philistines)은 지중해 지역에서 온 해양 민족으로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와 함께 이집트를 침공하고 남부 가나안 해안 지역(현재 팔레스타인 해안)에 정착해 온 사람들이었다.
아람 왕국 사람들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으로, 창세기 10장에 등장하는 아람(Aram)의 자손들이었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가나안 북부 지역에 정착하며, 유목과 농업, 상업을 병행했으며, 왕국의 수도 다마스쿠스(Damascus)는 당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번창했다.
다윗 왕의 위업은 솔로몬 왕으로 이어지며 이스라엘 왕국은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번영과 영화를 구가했다. 이는 현대 유대인의 역사적 유산으로서 민족정체성의 근간이 되고 있다.
솔로몬 왕은 외교적으로도 탁월한 수완을 가진 인물로, 해상무역을 주도한 페니키아인은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세력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왕국의 부강을 도모했다. 주변 세력들은 솔로몬 왕을 경외하며 조공을 바쳤다.
페니키아인은 티레(지금의 레바논 남부)를 중심으로 도시 국가를 형성하여 해상무역을 주도하며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렸으며,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특히, 그들이 만든 알파벳은 후대에 그리스 문자, 로마 문자에 영향을 주었으며 히브리 문자와는 뿌리를 같이한다.
페니키아의 희람 왕은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오피르에서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를 가져와 솔로몬 왕에게 선사했다. 희람 왕은 솔로몬 왕이 유대 성전을 지을 때 백향목 등의 건축자재와 기술자를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희람이라는 이름은 구약성서의 다른 부분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서의 희람은 희람 왕이 아니라 세공인 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공인 희람은 솔로몬 성전의 청동 기물을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희람 왕이 지배한 티레에서 살았으나 어머니가 이스라엘 왕국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후대의 유대인들이 솔로몬 왕의 성전을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개방된 야훼의 성소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솔로몬 왕의 뛰어난 외교력은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왕을 찾아 예루살렘을 방문했다는 구약성서 열왕기상 10장과 역대하 9장의 이야기가 증명하고 있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명성을 전해 듣고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낙타에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와 향료를 가득 싣고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여왕은 솔로몬 왕에게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을 던졌으며 솔로몬 왕은 이에 명쾌하게 답변했다. 여왕은 크게 감명하여 “내가 들은 소문은 절반도 아니었소. 당신의 지혜와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오”라며 기뻐했다. 솔로몬 왕도 여왕과 시바 왕실을 깍듯이 예우하고 여왕이 원하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다.
시바는 남아라비아(지금의 예멘) 또는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을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에티오피아 전통 문헌인 케브라 나가스트(Kebra Nagast)는 시바의 여왕이 마케다(Makeda)라는 이름의 실존 인물이며, 솔로몬왕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메넬리크 1세라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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