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구약성서 열왕기상 6장~8장은 솔로몬 왕이 건축했다는 성전에 관해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성전이 지어진 장소는 모리아산으로 후에 사람들은 모리아산이 예루살렘의 성전산이라 믿고 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으로, 솔로몬 왕은 바로 그 자리에 성전을 세운 것이다.
성전은 18만 명 이상의 인원이 7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되었다. 성전의 외벽은 잘 깎인 흰색 대리석으로 세워졌고, 내벽은 백향목, 올리브 나무, 황양목으로 꾸며졌다.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와 기물은 페니키아 장인들의 손에 의해 금, 은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솔로몬 왕의 성전은 이스라엘 왕국의 위엄을 과시할 뿐만 아니라 야훼 신앙의 영광을 축복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유대인의 최고 성지가 되었다. 솔로몬 왕은 성전에 야훼의 계명을 담은 성궤를 보관했다. 성궤는 모세가 출애굽 도중 시내산에서 40일간 야훼와 대화하고 받은 십계명이 새긴 돌판을 보관하는 궤(상자)를 말한다.
모세는 야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을 들고 자신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야훼의 말씀을 전하려 시내산을 내려왔다. 그는 이들이 야훼의 말씀을 기다리며 기도에 열중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힘겨운 탈출의 여정을 달래느라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며 난잡한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크게 실망한 모세는 십계명 돌판을 내던지고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야훼는 모세의 신심을 가엽게 여기고, 같은 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하나 더 선사했다.
모세는 야훼의 계명 돌판 두 개 모두를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궤에 보관했다. 궤는 계명과 함께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들에게로 전해져 내려왔으며, 솔로몬왕은 아카시아 가지에 순금을 박아 성궤를 다시 만들고 자신이 세운 성전 내부에 지성소를 만들어 보관했다.
솔로몬 성전은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 제국 네부카드네자르 2세 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파괴했다. 이후 성궤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호사가들은 성궤의 현존 가능성을 제기하며 여러 가설을 만들어 냈지만 그중 어느 것도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바티칸 보관설
성궤가 바티칸 지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설이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약탈된 성궤가 오스만제국 등을 거쳐 아랍 무슬림 세계로 전해졌으며, 이를 확인한 바티칸이 무슬림과의 비밀 협상을 통해 성궤를 인수하여 박물관에 보관 중이라는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이 종교적 유물을 다수 보관하고 있고, 박물관에는 교황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은밀하고 신비한 곳이라는 점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설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인 증거나 근거가 확인되지 않고 있고, 교황청도 이에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에티오피아 아크숨 보관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성궤가 아크숨의 성 메리 교회에 보관되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이 교류했던 사실과 연계하면 그럴듯한 주장으로 들린다. 정교회의 주장은,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메넬리크 1세가 성장한 후에 아버지의 나라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솔로몬왕을 만났고, 아버지로부터 성궤를 선물 받아 에티오피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성궤 보관설의 확인을 요청받은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성궤가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히 금지된 교회 내부 은밀한 장소의 비밀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고, 정확한 장소와 금고 열쇠는 종신 비밀 서약을 한 수도사 한 사람만이 알고 있어 현실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하고 있다.
예레미야 은닉설
유대의 외경 마키비서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침입해 올 것을 미리 알고 성전이 파괴되기 직전에 성궤를 빼돌려 어딘가에 감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는 초자연적 힘을 가진 성궤가 이집트의 고대 도시 타니스(Tanis) 지하의 ‘영혼의 우물’에 묻혀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는 나치보다 먼저 성궤를 찾아내고 성궤의 신비로운 힘으로 나치를 파멸시킨 후 미국의 어딘가에 보관했다. 영화는 그간 성궤의 현존설에서 멀리 있었던 미국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시켜 보겠다는 의도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위임을 받아 유대 지역을 통치했던 헤롯 왕은 자신의 왕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유대인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솔로몬 성전 터에 헤롯 성전을 건축했다.
헤롯 성전은 시기적으로 예수가 활동하던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 모두에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쫓아냈다고 기록된 바로 그 성전이다. 헤롯 성전은 70년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을 정복한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파괴되었다.
솔로몬 성전과 헤롯 성전이 있었던 그 자리에 지금은 ‘황금 돔 사원’이 있다. 사원의 커다란 돔형 지붕이 황금으로 입혀져서 멀리서도 황금빛이 선명하게 보임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솔로몬 성전과 헤롯 성전은 유대 성전이었지만, 황금 돔 사원은 이슬람 사원(모스크)이다.
황금 돔 사원은 이슬람 왕조로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우마이야 왕조(현재 시리아 일대를 지배)의 5대 칼리프 압드 알-말리크가 685년에 세웠다. 사원의 원래 이름은 아랍어로 꾸바 앗-사크라(Qubbat aṣ-Ṣakhrah), 영어로 바꾸면 바위 돔(Dome of the Rock) 사원이다.
이름에서와 같이, 바위 돔 사원 안에는 아직도 커다란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 칼리프 말리크는 꾸란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을 알라에게 제물로 바치려 한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산의 바로 이 바위였다고 믿었고, 선지자 무함마드가 승천(Miraj)한 곳도 바로 이 바위였다고 믿었다. 그는 성스러운 이 바위를 후대까지 보존하고, 순례자의 기도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바위 위에 천상을 향해 위용을 갖춘 돔을 씌워 사원을 건축했다.
이슬람의 하디스(전승 기록)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날개 없는 천상의 말(Buraq)을 타고 대천사 지브릴(Jibril, 가브리엘)의 안내로 메카의 카바 성소를 출발하여 가장 먼(al-Aqsa) 예배소(사원)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산으로 날아와(밤의 여정, Isra) 이곳에서 하룻밤 기도한 후 다음 날 이 바위 위에서 승천했다고 전하고 있다.
무슬림들 사이에는 바위에 얽힌 또 다른 구전 설화가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가 바위에 서서 승천하려는 순간 이 바위도 선지자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 보려고 무함마드의 발을 붙잡고 놔두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너는 지상에 남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발로 돌을 힘차게 밀치고 올라갔는데 그때 찍힌 무함마드의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원의 돔이 처음부터 황금으로 덮인 것은 아니었다. 건축 당시 황금 돔 사원의 돔은 나무 구조물에 납 판을 씌운 형태였다.
1993년 요르단의 후세인 1세 국왕은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혈족(하심 가문) 임에 따라 바위 돔 사원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왕실 자금에 자신의 개인 재산을 보태 돔의 납 판을 24캐럿 금박 알루미늄판으로 교체했다.
칼리프 말리크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부터 찾아 날아와 하룻밤 기도했다는 가장 먼 곳의 예배소 자리에 알-아크사 사원을 건축했다. 이후 사원은 십자군, 파티마 왕조를 거치며 훼손과 복원을 거듭하여 1066년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알-아크사 사원의 돔은 은색으로 밖에서 보기에는 황금 돔 사원에 비해 낮고 작아 보이나, 실제로는 황금 돔 사원보다 네 배 이상 크고 내부 장식은 더 정교하며 화려하다. 황금 돔 사원이 이슬람의 종교적 위엄을 대변한다면 알-아크사 사원은 무슬림의 기도를 상징한다.
이슬람은 알-아크사 사원을 메카, 메디나와 함께 3대 성지 중의 하나로 지정하고 있다. 초기 이슬람은 기도 방향(키블라)을 알-아크사 사원으로 정했다가 624년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정착한 이후 메카의 카바(Kaaba) 신전으로 변경했다.
황금 돔 사원 안 바위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발자국처럼, 알-아크사 사원에도 무슬림들이 존중하는 설화가 있다. 선지자 무함마드가 밤의 여정에 타고 온 천마 부라크의 말 줄을 묶었던 고리가 아직도 사원 경내 한 곳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이 고리를 ’부라크 고리‘, 또는 ’부라크 자리‘(Maqam al-Buraq)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유대인의 성지인 ’통곡의 벽‘ 위쪽에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
모세의 성궤를 모신 솔로몬 왕의 유대 사원, 그 자리에 예수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설파한 헤롯 왕의 유대 사원, 다시 그 자리에 승천한 선지자 무함마드를 기리는 바위 돔 사원과 알-아크사 사원...
예루살렘은 같은 하느님의 같은 뜻을 기리는 다른 방식들을 한자리에 모와 품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산의 단순치 않은 운명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