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티오 빌라도 총독 시대 - 예수를 처형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헤롯 왕이 죽은 후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헤롯 왕의 유언을 받아들여 헤롯 왕의 세 아들을 왕으로 임명하고 팔레스타인을 세 지역으로 분할하여 이들이 각각 한 지역씩을 통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헤롯 왕의 아들들이 폭정을 일삼고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로마제국은 이들을 폐위하고 팔레스타인을 로마의 속주로 편입하여 로마에서 직접 총독을 파견하여 통치하였다.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으로 신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인물이 본티오 빌라도(Pontius Pilate) 총독이다. 그는 로마인이었기에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대인들과 다른 점이 많아 종종 긴장과 갈등 관계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갈등은 당시 유대 사회를 발칵 뒤집고 있던 예수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예수는 유대 율법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비판하고, 진정한 믿음은 인간 내면의 사랑, 자비, 용서에 있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과 다름없이 죄를 사하는 권한이 있어, 유대인도 할례나 율법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의 가르침은 사회적 하층민과 소외된 자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으며, 많은 유대인은 예수를 메시아(구세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환호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가 유대인의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을 흔들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자신들의 지위와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예수를 처단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그들은 예수가 민중을 선동하고 신성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자치적 사법기구인 산헤드린에 기소했다. 산헤드린은 예수의 죄가 사형의 벌에 해당한다고 결론짓고, 로마제국 법에 따라 빌라도 총독에게 최종 판결을 내려주기를 요구했다.


유대 지도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빌라도 총독은 예수가 로마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예수가 민중을 선동하고 신성을 모독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로마법을 어긴 것이 아니고 로마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총독은 아내의 경고에도 신경이 쓰였다. 그의 아내는 예수와 관련된 불길한 꿈을 꾸었다며, “그 무죄한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라고 경고했다. (마태복음 27장 19절)


빌라도 총독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예수를 석방하면 유대 지도자들과 민중의 반발을 살 것이고, 그렇다고 처형 판결을 내리는 것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불의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가 무죄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선언은 유대인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석방하는 것은 황제의 충신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당장이라도 총독에게 반란을 일으킬 기세로 항의했다.


결국 빌라도 총독은 판결을 번복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도록 허락했다. 그는 마음에 없는 처형 판결을 내리고 법정을 나서서 “나는 이 일과 무관하다”라고 중얼거리며 손을 씻었다.


빌라도 이후에도 로마는 총독을 계속 파견하여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을 통치했으나 종교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총독들은 헤롯 왕이 건설한 항구도시 가이사랴(현재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에 머무르며 유대인들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는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에만 방문했다. 유대인들은 로마 총독들의 유대교에 대한 냉대한 태도에 불만을 토로하며 반로마 정서를 키워갔다.


로마 총독들도 유대 지도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유대 지도자들이 선임해 온 대제사장을 직접 임명하는 등 의도적으로 유대인의 자치권을 축소했다.


로마제국은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에 황제의 동상을 세우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는 다신교적 문화에 기반을 둔 로마가 신전에 여러 신상을 세우고 그중에 황제의 동상도 세우는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일신 야훼를 숭상하는 유대인들의 눈에는 이러한 시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 행위일 수밖에 없었다.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두고, 세리들은 중간에서 이를 갈취했다. 총독은 로마로의 송금액을 메꾸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금고를 털기도 했다.


유대인의 반로마 감정은 민족주의로 발전하고, 급진 성향의 청년들은 열심당(Zealots)을 조직하여 봉기를 계획했다. 그들은 총독과 로마제국이 유대 신앙을 파괴하는 이단자라고 주장하며, 총독과 로마 군대의 철수를 요구했다.


66년 로마 총독 플로루스는 로마 군대를 동원하여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유대인들의 저항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 유대-로마 전쟁이 시작되었다.


로마군은 헤롯 성전을 불태우고 유대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짓밟았다. 유대인의 저항도 거세었으나 로마 제국 군대에 대항하기에는 턱 없이 역부족이었다. 로마 군대의 공세는 하늘을 찔렀고 유대인의 저항은 마사다 전투의 비극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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