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313년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함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순례자, 수도사, 학자들의 방문으로 분주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예수의 유산을 찾아냈다.
395년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의 동로마(비잔틴 제국)와 이탈리아 중심의 서로마로 분리된 이후 팔레스타인은 동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동로마제국이 동쪽의 페르시아와의 수백 년에 걸친 패권 전쟁으로 지쳐있던 틈을 타 주변의 이슬람 세력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왔다.
636년 팔레스타인은 선지자 무함마드 사후 메카를 중심으로 일어난 첫 이슬람 왕조인 라시둔 칼리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이슬람 왕조들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755년에는 지금의 이라크를 지배한 아바스 왕조, 960년 이후 북아프리카와 이집트에서 세력을 펼친 파티마 왕조, 11세기에 들어서는 이란 고원 지대에서 성장한 셀주크 왕조의 영향 아래 놓였다.
1099년 1차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이곳에 예루살렘 왕국을 건국했다. 예루살렘 왕국은 ’기독교 성지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기독교 신앙의 최전선 방어자로서 예수가 묻혔다 승천했다는 성묘교회와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했다.
1187년 예루살렘 왕국은 이슬람 아이유브 술탄국의 살라딘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다. 살라딘은 갈릴리 지역의 하틴에서 십자군의 주력군을 궤멸하고 예루살렘 왕국의 기 드 루지냥 왕과 많은 기사를 포로로 붙잡았다. 예루살렘은 다시 이슬람 세력에 접수되었다.
1250년대 키트부카(Kitbuqa) 장군의 몽골 군대가 예루살렘 인근까지 진격해 왔으나, 이 지역을 지배한 이슬람의 맘루크 군대에 의해 아인 잘루트(Ain Jalut) 전투에서 대패하고 퇴각했다. 아인 잘루트 전투는 서방 정복에 나선 몽골 군대가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1300년경 몽골 군대는 다시 가자지구까지 진격해 왔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퇴각했다.
1516년 맘루크 세력이 셀주크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전통을 합친 오스만제국에 점령됨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오스만제국의 일원이 되었다.
오스만제국은 빌라에트(Vilayet)라는 행정 구역 제도를 통해 이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유대인에게도 공동체 개념의 자치권을 부여하여 광활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했다. 팔레스타인은 오스만제국의 시리아 빌라에트에 소속되었으며, 시리아 빌라예트의 중심지 다마스쿠스는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 문화와 예술이 융성한 근대 도시로 발전했다.
오스만제국은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동맹을 맺고 주축군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전후 전쟁에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에 의해 해체되고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오스만제국의 해체는 희망과 좌절로 얼룩진 팔레스타인 근대사의 출발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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