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마흔-후세인 서한 : 아라비아의 로렌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을 주도한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의 아랍인을 지배하며 독일과 동맹을 맺고 주축국에 참가하고 있는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려야 했다.


특히, 식민지 정책에 주력해 온 영국은 오스만제국이 지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확보하여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지역의 식민지와 연계 확대하는 제국주의 정책을 완수하겠다는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북쪽의 독일군과의 전선과 함께 남쪽의 오스만제국 군대를 상대하는 또 다른 전선을 만드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지역에서 유럽 군대가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지역은 광활한 사막 지역으로 영국이나 프랑스 군대의 전술에 맞지 않고 종교 언어 문화가 달라,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현지의 지리와 언어에 익숙한 아랍인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영국은 오스만제국 지배하에 있는 아랍 민족들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반(反)오스만제국 정서를 부추기고 영국에 협조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영국은 자신들에게 협조하는 아랍 민족은 전후에 해방시켜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1915년 10월 24일 이집트 주재 영국 외교관 맥마흔은 오스만제국이 임명한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 빈 알리에게 서한을 보내 연합국을 지원해 주기를 요청하고 달콤한 조건을 제시했다. 맥마흔은 후세인에게 아랍인들이 영국을 지원하면 전후에 레반트(지중해 동쪽의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와 헤자즈 지역(메카, 메디나, 제다를 포함한 사우디아라비아 서쪽 지역) 모두에서 아랍인들의 독립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샤리프 후세인은 맥마흔의 서한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이후 10여 차례의 서한을 교환하며 맥마흔의 진정성을 확인했다. 그는 멕마흔이 제시한 ‘아랍인들의 독립’을 ‘자신을 왕으로 하는 아랍 제국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소 확대해석했다. 그는 자신이 하심가 출신으로 선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혈통을 잇고 있는 점에 자만하여, 전후 영국과 국제사회가 자신을 ‘아랍의 왕’ 혹은 ‘칼리프’로 인정하고 중동 아랍인에 대한 통치권을 맡기겠다는 계획일 것으로 생각했다. 멕마흔의 모호한 외교적 표현의 속뜻을 충분히 간파하지 못한 것이었다.


1916년 칼리프 후세인은 오스만제국에서 이탈한다고 선포하고 아들 파이살과 압둘라를 중심으로 반란군을 조직하여 제국군대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에 돌입했다.


영국은 오스만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굳이 군대를 보낼 필요 없이 뒷전에서 후세인의 반란군을 지원만 하면 되었다. 영국은 정보장교 T. E. 로렌스를 후세인에게 보내 그의 게릴라전을 지원했다.


1917년 로렌스와 후세인의 반란군은 사막을 가로질러 아카바(지금의 요르단 남부 해안)를 기습 공격했다.


아카바는 오스만제국이 홍해를 출입하는 관문이고, 아라비아반도, 시나이반도, 이집트를 연결하는 육상 교통의 중심지(이집트 카이로에서 메카로 향하는 순례길의 중간지점)로 오스만제국 해군의 전략적 거점이자 병참 기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로렌스와 반란군은 오스만제국이 아카바의 해안 방어에만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점에 착안하고 내륙 사막에서 침투하는 방식으로 제국군의 허를 찔러 아카바 점령에 성공했다. 반란군은 아카바를 거점으로 시리아 북쪽을 공격하며 제국군대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로렌스는 아랍 반란군들과 함께 헤자즈 철도를 반복적으로 공격하며 오스만 제국군의 보급로를 마비시켰다.


하지즈 철도는 오스만제국이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내륙 횡단 철도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기점으로 요르단의 암만을 경유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까지 갈 수 있는 1,300km의 대규모 교통로였다. 이는 메카 순례자에게는 낙타를 대신한 이동 수단으로써 종교적 의미가 컸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제국을 통합하고 군사적으로는 군수물자와 보급품을 수송하는 전략적 기반 시설이었다.


1918년 로렌스는 아랍군과 함께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며 오스만제국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1918년 10월 30일 오스만제국은 무드로스 휴전 협정(Armistice of Mudros)을 체결하고 연합국에 공식 항복했다.


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제국은 파리 근교 세브르에서 오스만제국의 해체를 확인하는 세브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제국의 영광은 영원히 역사 속에만 남게 되었다.


로렌스는 아랍 민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영국인으로 아랍인들의 큰 명성을 얻었으며, 전후에는 영국과 아랍의 중재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을 원작으로, 로렌스가 이끈 게릴라전 당시를 박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석권한 대기록을 남겼다.


멕마흔-후세인 서한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탁을 의미한다. 영국의 제국주의와 아랍의 민족주의는 서로를 이용할 궁리에 몰두했다. 그러나 아랍 민족주의는 ‘분할하여 지배한다’(Divide and Rule)는 영국의 제국주의 전략을 간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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