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푸어 선언 - 팔레스타인 유대 국가의 씨앗이 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맥마흔 서한,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이어 전후 중동의 지형을 뒤흔들어 놓게 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영국의 발푸어 선언이었다.


1917년 영국의 아서 제임스 발푸어 외교장관은 영국의 유대인 지도자 로스차일드 경에게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인 서한이 아니라 내각의 승인을 받은 공식 외교 문서로서 영국의 대유대인 정책을 선언한 것이었다.


국제사회는 영국이 전후 중동의 아랍인을 해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무시하고 직접 지배할 계획을 한 것과는 달리, 중동에 아랍인도 아닌 유대인을 불러들여 독립 국가를 세우도록 약속한 것으로 이율배반적인 행위로 간주했다.


로스차일드 경은 라이오넬 월터 로스차일드(Lionel Walter Rothschild) 남작으로 영국의 금융계를 지배한 유대인 가문의 후손이다. 그는 가업을 이어 금융계를 관장하며 엄청난 자산을 관리하는 한편, 하원 의원으로 진출하여 영국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영국 유대인 이사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영국 정부에 유대인의 권익 보호와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협조하기를 요구했다. 이는 당시 유럽의 유대인 사회에서 불같이 번지고 있던 시오니즘 운동과 맞물리며 영국 정부에 강력한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시오니즘은 19세기말 유럽의 유대인들에 의해 주창된 유대 민족주의 이념으로, 유럽 각국에서 계속되는 반유대주의와 박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모두가 시온으로 돌아가 민족 국가를 만들어 안전한 미래를 개척하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염원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히브리어 시온(Zion)은 원래 예루살렘 남동쪽의 작은 산성(시온 산성)의 이름이었으나, 다윗 왕이 이곳을 정복하고 다윗성(City of David)으로 부르며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은 이후, 예루살렘, 이스라엘 왕국, 조상의 땅을 뜻하는 유대민족 정체성의 핵심어가 되었다.


헝가리 페슈트 출신 유대인 테오도르 헤르츨은 1896년 <유대 국가>를 저술하고 기자 겸 정치운동가로서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 스위스 바젤 등에서 활동하며 시오니즘을 국제사회의 외교적 이슈(시오니즘 운동)로 부각하고 정치 운동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1897년 바젤에서 유럽 각지의 유대인 지도자 200여 명을 소집하여 제1회 시오니스트 대회를 개최하고, 세계 시오니스트 연합(WZO)을 창립하여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국가를 건설한다는 ‘바젤 강령’을 공표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기도문을 제시하고 전 세계 유대인의 귀환 희망을 결집했다.


테오도르 헤르츨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젤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스만제국의 압뒬하미트 2세,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영국 정부 등과 접촉하며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을 위한 국제적 승인과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은 당시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유대 국가 건설을 지지할 입장이 되지 않았고, 독일도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후 이 두 나라 모두는 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되면서 유대인의 요구에 협조할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다.


1903년 영국의 식민지 장관 조지프 체임벌린은 지속되는 유대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동아프리카의 영국령 우간다(실제로는 케냐의 마우고원 지역)를 유대 국가의 임시 후보지로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제6차 시오니스트 대회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고, 일부는 찬성했지만 다수는 팔레스타인 귀환을 고집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체임벌린 장관의 제안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로스차일드 경은 강력한 정치력과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 정부를 움직여 결국은 헤르츨이 목표한 바를 성사시킨 것이다.


발푸어 선언은 중동의 아랍인들을 망연자실하게 했다. 중동에 아랍인의 국가 건설 약속은 무시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영국의 행태에 배신감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민을 금지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또한 승자의 뜻을 거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발푸어 선언에 열광한 유대인들은 앞다투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왔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인구가 급증했다. 로스차일드 경과 유대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 비용을 부담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정착을 위한 토지 매입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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