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1972년 5월 3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로드 공항(현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총격 테러 사건이 발생하여 터미널에 있던 승객 26명이 사망하고 79명 이상이 부상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성지 순례단으로 사건 직전에 공항에 도착했으며, 대부분이 미국 국적자이고 이스라엘인 8명, 캐나다인 1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테러범들이 PLO 무장세력이 아니라 오쿠다이라 쓰요시, 야스다 야스유키, 오카모토 코조 등 3명의 일본 적군파 소속 무장 대원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에어프랑스 항공편으로 입국하자마자 공항 터미널에서 가방 속의 소총과 수류탄을 꺼내 근처의 민간인과 공항 경비대원 등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이스라엘 수사당국의 조사 결과 사건의 배후가 PLO 무장세력 PFLP(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로 밝혀졌다. PFLP는 당시 아랍인들이 이스라엘 공항 경비를 통과하기가 어려운 상황임에 따라 일본 적군파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테러 계획을 실행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 적군파는 국제 혁명 조직의 연대를 표방하며, 팔레스타인의 무장 해방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테러 행위에 분개했다. 특히 일본의 적군파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테러 행위에 직접 가담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정부는 이스라엘에 공식으로 사과하고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이 사건은 국적을 불문하고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이 좌파 급진 세력의 무차별적인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최초의 사건이 되었으며, 급진 무장 세력의 국제적 연대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었다.
적군파 테러범 3명 중 2명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부상을 당한 오카모토 코조는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되었다. 조사 결과 그는 요도호 납치 사건으로 유명한 적군파 요원 오카모토 다케시의 동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요도호 납치 사건은 이렇다.
1970년 3월 31일 일본 적군파 소속 청년 9명은 도쿄 하네다 공항을 이륙하여 후쿠오카로 향하던 JAL 351편의 조종실을 점거하고 기장에게 북한의 평양 공항으로 기수를 돌릴 것을 강압했다. 납치범들은 일본에서 공산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북한에 가서 혁명 교육을 받겠다는 심사였다. 기내에는 납치범 이외에 승객 122명과 승무원 7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요도호는 이 JAL 351편의 별칭이다. JAL은 기종이나 기체의 특성을 반영하여 여객기별로 일본의 지명 등을 딴 별명을 붙였는데 요도호는 요도강에서 따온 이름이다.
요도호 기장은 비행기가 국내선이라 연료가 부족하니 연료를 보충한 후에야 평양으로 갈 수 있다고 납치범들을 설득하여 일단 후쿠오카 공항에 착륙했다. 납치를 인지한 일본 정부는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후쿠오카 공항 기내의 납치범들과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질범들은 협상을 거부하고 평양행 이륙을 허가하지 않으면 승객들과 함께 자폭하겠다고 협박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과 대치하며 반공 이념에 투철한 한국 정부와 긴급히 소통하고, 요도호의 후쿠오카 이륙을 허가하되 요도호를 평양이 아니라 김포공항으로 유도 착륙시켜 납치범들을 체포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신속히 김포공항을 평양 공항으로 위장했다. 공항 청사 지붕에 인공기와 함께 ‘평양 도착 환영’ 현수막을 설치하고 벽면에는 김일성 초상화를 내걸었다. 활주로 주변에는 인민복을 입은 한국의 요원들을 북한의 환영단처럼 도열시켜 납치범 체포 작전을 준비했다.
요도호가 후쿠오카 공항을 이륙하여 북쪽으로 비행했다. 김포공항은 한반도로 접근하는 요도호를 평양 공항 관제탑인 것처럼 무선 주파수를 부여하고 유도하여 김포공항에 착륙시켰다.
인민군 복장을 한 한국군 특수부대 요원이 탑승해 “공화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인사하며 인질범들을 포옹했다. 납치범들은 드디어 평양에 도착한 것이라고 안도하며 감격해했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트랩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순간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낀 한 납치범이 기내에 있는 요원 중 한 사람에게 영어로 “이곳이 서울이 아니냐”라고 물었다. 당황한 요원은 자기도 모르게 ‘Yes’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납치범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격분했다.
납치범들은 승객 전원을 다시 인질로 붙잡고 즉각 비행기를 평양으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야마무라 운수 차관을 김포공항으로 급파하여 인질범들과 협상을 개시했다. 야마무라 차관은 “승객들을 풀어주면 내가 인질이 되어 평양까지 함께 가겠다”라고 제안했다. 납치범들은 야마무라 차관의 제안이 믿을만하다고 판단하고 승객들을 전원 석방한 뒤 야마무라 차관을 인질로 잡았다.
4월 3일 야마무라 차관과 납치범 9명을 태운 요도호는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북한의 미림비행장에 착륙했다. 북한은 이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야마무라 차관과 요도호의 기장, 부기장, 승무원 3명은 4월 5일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왔다.
적군파 소속 납치범들은 북한을 떠나지 않고 정착하였으며, 북한의 선전 선동 활동과 공작원 교육에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드 공항에서 체포돼 이스라엘에 수감된 오카모토 코조는 후에 엔테베 공항 인질 사건에서 이스라엘과 PFLP 간의 인질 교환 협상으로 석방된다. 그는 이후 레바논으로 망명하였으며, 일본 정부는 그를 적색 수배자로 지정하고 송환을 요구했지만 레바논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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