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 욤 키푸르(속죄의 날)에 맞춰 이집트와 시리아가 각각 남과 북에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였다. 4차 중동전쟁의 시작이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굴욕을 당한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대한 반격의 기회를 노려왔다.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긴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를 탈환할 결의를 다졌으며,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빼앗긴 골란고원 회복을 목표로 전력을 강화해 왔다. 양국은 소련으로부터 미사일과 전차, 전투기 등을 지원받아 군사력을 한층 보강한 상황이었다.
욤 키푸르, 즉 속죄의 날은 유대교에서 가장 거룩하고 엄숙한 날로 여겨지는 절기이다. 이날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해하는 날로, 유대력으로는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지켜진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32장의 모세가 시내산에서 야훼로부터 십계명이 새긴 돌판을 받아 내려왔는데 그때 유대인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었고 모세는 분노하여 돌판을 깨뜨렸다 기록에서 유래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는 동안, 유대 백성은 그가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하며 대제사장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라고 요구했다. 아론은 유대 백성의 금 장신구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다”라고 선언했다. 유대 백성들은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축제를 벌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들고 내려오다가,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극도로 분노했다. 그는 돌판을 산 아래에서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불태워 가루로 만든 뒤 물에 타서 백성에게 마시게 했다.
모세는 아론을 질책하고, 레위 지파를 소집해 우상 숭배자들을 처단하도록 했다. 그날 약 3천 명의 유대 백성이 죽임을 당했다.
이후 야훼는 모세에게 다시 돌판을 주고, 모세는 이 두 번째 십계명을 들고 내려온다.
레위기 16장에는 유대 백성이 금송아지를 숭배한 죄를 회개하기 위해 대제사장 아론이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는 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의식은 해가 지기 전부터 다음 날 해질 때까지 하루 동안 음식과 물을 금하고 회당에서 하루 종일 ‘콜 니드레이(Kol Nidrei)’라는 서약 철회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는 앞으로 1년 동안 자신이 하게 될 수도 있는 모든 서약, 맹세, 결심을 미리 철회한다는 것이다. 즉, 야훼 앞에서 했거나 할 수도 있는 약속들이 혹시라도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거나 율법적으로 속박되지 않도록 미리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야훼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Max Bruch)는 이 기도를 바탕으로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Kol Nidrei, Op.47을 작곡하기도 했다,
고대에는 기도와 함께 염소 두 마리를 잡아 한 마리는 제물로 바치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이라는 광야로 보내 죄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이 염소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케이프고트(scape goat)의 어원이 되었다.
속죄의 날은 속죄의 기도 이외에는 먹고 마시는 것은 포함하여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다. 오직 속죄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1973년 속죄의 날에도 군인을 포함한 이스라엘 국민 모두는 금식한 상황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기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의 예상치 못한 기습에 이스라엘군은 무방비 상태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그러나 바로 전열을 가다듬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반격을 가하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스라엘은 다마스쿠스 인근까지를 포격하여 골란고원을 다시 점령했다. 남쪽으로는 시나이반도를 넘어 수에즈 운하까지 진군했다.
이스라엘군이 이집트군을 완전 포위하는 국면에 이르자, 소련은 이집트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겠다고 경고하며 핵무기 사용을 암시했다. 이에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닉슨 대통령과 함께 핵무기 경계 태세인 'DEFCON III'를 발령하며 소련을 견제하고, 이스라엘에 휴전을 종용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이를 거부하고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군을 완강히 압박해 갔다.
키신저 국무장관은 소련의 안드레이 그로미코 외교장관과 긴급히 회동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 338호를 공동 제안하는 데 합의했다. 이 결의안은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군의 즉각적인 휴전과, 결의안 242호(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평화원칙)의 이행, 그리고 평화 협상 개시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휴전은 바로 성립되지 않고 전투가 계속되었다.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휴전 명령이 전선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또 뒤늦게 도달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을 완전히 포위할 수 있는 상황에서 휴전 명령을 즉각 수용하기가 아깝다는 생각에서 휴전을 일부러 지연하기도 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연합군은 서로가 먼저 휴전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휴전의 정당성을 놓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현장의 전투는 10월 24일까지 계속되었고, 미국과 소련은 더 이상의 긴장 고조를 우려해 10월 25일 두 번째 휴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두 달 이상 계속된 전쟁은 일단 종결되었다.
휴전 이후, 유엔은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골란고원과 시나이 반도에 평화유지군(UNDOF, UNEF)을 배치했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 ‘위기’(Crisis)에서 4차 중동전쟁에서 소련의 개입과 핵전쟁으로의 확전의 위기를 현명하게 넘길 수 있었던 외교적 활동상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스라엘은 유엔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에서의 철군 의무를 바로 이행하지 않았다. 시나이 반도는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서야 이집트에 반환되었다. 그러나 골란고원은 현재까지도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다.
1981년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을 이스라엘로 합병한다고 선언하고 정착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합병은 국제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선언하고, 골란고원은 시리아의 영토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2019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했다.
현재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실효적 지배하에 있다.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정착촌에는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차 중동전쟁은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든 ‘1차 석유파동(Oil Shock)’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 전쟁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 산유국 협력체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전쟁 중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이들 국가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하거나 감산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조치는 국제 경제를 에너지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며 큰 혼란을 초래했다. 유가가 4배 이상 폭등하여 각국의 저성장 고물가 현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1975년 대부분의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냉전의 대리전이기도 한 4차 중동전쟁은 석유에 의존해 온 세계 경제의 구조적 흠결을 각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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