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1976년 6월 27일 텔아비브를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139편이 경유지인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과 독일의 혁명세포(RZ), 일본의 적군파(JRA) 소속 무장대원 4명에 의해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항공기를 리비아의 벵가지 공항에 착륙시켜 원료와 식량을 보충하고 일부 인질을 석방한 뒤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으로 납치했다. 납치범들은 엔테베 공항에서 승객 중 유대인과 이스라엘인만을 따로 분리해 인질로 삼고 나머지는 석방했다. 항공기의 기장과 승무원들은 이스라엘 국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석방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유대인 인질들과 함께 남았다.
납치범들은 인질 석방의 조건으로 이스라엘, 프랑스, 미국 등에 수감 중인 53명의 동료 무장대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석방을 요구한 53명 중에는 1972년 이스라엘 로드 공항 테러범으로 체포된 일본 적군파 요원 오카모토 코조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인질 구출 작전을 준비하며 우간다에 협조해 주기를 요청했다. 이디 아민 우간다 대통령은 영토 주권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직접 개입을 거부하고 자신이 납치범과의 협상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진정한 중재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납치범의 협력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납치범들에게 공항 시설을 개방하고 무기와 병력을 제공했다. 납치범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에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500만 달러와 팔레스타인 수감자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아민 대통령은 과거 이스라엘에서 군사 훈련을 받기도 한 친이스라엘 성향의 인물이었다. 아민은 1971년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에도 이스라엘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우간다에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고 무기를 제공하는 등 아민 대통령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아민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호의를 악용하여 과도한 수준의 군사 지원 요청을 계속했다. 아민 대통령의 진의를 파악한 이스라엘은 더 이상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1972년 아민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친아랍 성향으로 기울었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지지한다고도 선언했다.
1976년 7월 4일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이렛 매트칼(Sayeret Matkal)과 35 공수여단으로 구성된 100명의 특공대는 엔테베 공항에 납치된 유대인 인질 103명을 구출하기 위해 비밀리에 우간다로 침투했다. 대원들을 태운 4대의 C-130 허큘리스 수송기는 3,800km에 달하는 우간다까지의 항로를 중간 급유 없이 비행했다. 저고도 비행으로 리비아와 케냐 등 아랍 국가의 공역을 은밀히 통과하고 우간다의 레이더망을 피해 엔테베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대원들은 수송기에 싣고 온 아민 대통령의 검은색 벤츠와 유사한 차량과 우간다 군용 차량처럼 도색 한 전투차량에 나눠 타고 납치범을 방문하는 아민 대통령 일행인 것처럼 위장하여 우간다 경비병의 검문소를 통과하여 공항 청사를 장악했다.
대원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뒤늦게 확인한 우간다 군의 저항을 제압하고, 납치범 7명을 모두 사살하여 인질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대원들은 우간다 공군의 추격을 우려하여 공항 내 계류 중인 우간다 전투기를 모두 폭파한 뒤 구출한 인질을 수송기에 태워 이스라엘로 귀환했다. 인질 구출 작전은 대원들이 공항에 도착한 후 90분 만에 신속히 완료되었다.
특공대원과 우간다 군의 교전으로 인질 3명과 우간다군 병사 30여 명이 사망했다. 특공대장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도 사망했다. 네타냐후 중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현 이스라엘 총리의 형이었다.
엔테베 공항 인질 구출 작전(선더볼트 작전)은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정밀한 인질 구출 작전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전에서 이스라엘 특공대의 전술 기동은 속도와 정확도를 모두 갖춘 기습작전의 완결판이었다.
이스라엘 국민은 ’ 국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다 ‘라는 국민적 자부심에 고취되었다.
아민 대통령의 행보는 국제사회에 우려와 논란을 야기했다. 사건 과정에서 그가 취한 행동은 단순한 외교적 실책이라기보다는 국제 테러의 가담자로 평가되어, 우간다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되었다.
엔테베 사건은 팔레스타인 급진 무장 세력의 명분과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일부 아랍 국가들도 무장세력의 투쟁 방식에 피로감을 표출했다. 이와는 반대로 국제사회는 아라파트 의장의 외교적 협상 노선을 주목하고 이를 기대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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