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O 레바논 철수 - 미 해병대가 테러당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1982년 6월 3일 영국 런던의 도체스터 호텔 인근에서 슐로모 아르고브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3명의 아부 니달 무장 조직원들에 의해 피격되었다. 아르고브 대사는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로 수년을 버텼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2003년 사망했다.


아부 니달 조직은 PLO에서 분리된 급진 무장세력으로, 아라파트 의장의 온건한 노선을 비판하며 PLO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르고브 대사 피격 사건은 사실상 PLO와 직접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건의 배후를 PLO로 지목하고 대규모 보복 작전을 수행했다.


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군은 ‘평화의 갈릴리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PLO 본부가 있는 레바논을 침공하고 베이루트로 진격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기회에 PLO를 완전히 제거하고, 아울러 당시 PLO를 지원하는 레바논 정부에 반대하는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하여 레바논에 친이스라엘 정부를 수립할 목적이었다.


이스라엘군은 PLO 본부를 포위하고 무장을 해제와 투항을 압박했다. PLO는 이를 거부하고 격렬히 저항했다. 이스라엘은 퇴각로를 차단하고 포위망을 좁혀가며 PLO가 항복하지 않으면 고사를 시킨다는 목표로 장기 작전에 돌입했다.


벙커에 갇힌 아라파트 의장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외부 세계에 강경한 저항의 메시지를 내보냈다.

“베이루트를 이스라엘 침략자들의 무덤으로 만들겠다.”

“베이루트는 아랍의 스탈린그라드가 될 것이다. “

”PLO는 굴복하지 않는다. 승리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단지 PLO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당시 레바논에 파견된 시리아군은 물론이고 친아랍 무장 세력들과도 전면적으로 충돌하며 사실상 레바논 전역을 전쟁 상황으로 몰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레바논 정부는 전쟁의 원인이 된 PLO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PLO가 레바논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레바논 내 친이스라엘 세력은 레바논 정부의 결정을 환영해다. 그러나 레바논 내 친팔레스타인 세력들은 PLO가 레바논에서 계속 활동하기를 주장하며 레바논 정부와 친이스라엘 세력에 저항했다. PLO도 레바논을 떠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양측의 충돌은 계속되며 민간인 피해가 폭증했다.


결국 미국이 중재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필립 하비브 특사를 파견하고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등 관련 국가들과 PLO 철수 방안을 협의했다. 협의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도 참여했다.


관련 국가들은 PLO가 레바논에서 철수하여 아프리카 북단의 튀니지로 이전하고,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PLO의 안전 보장과 필요 사항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튀니지 대통령은 아랍 세계에서 자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하고 협상 참여국들의 요청에 따라 PLO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은 PLO가 완전히 철수한 후에 레바논에서 철군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PLO의 철수를 지원하고 레바논의 평화 유지를 위해 다국적군(레바논평화유지군 ; Multinational Force in Lebanon)이 파견되었다.


1982년 8월 21일 아라파트 의장과 PLO 대원 1진은 프랑스와 그리스가 제공한 민간 선박에 유엔기를 달고 미국과 프랑스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트리폴리 항구를 출발해 튀니지로 향했다. 남은 대원 8,000여 명의 철수는 8월 24일까지 계속되었고, 베이루트–다마스쿠스 고속도로가 PLO 대원들의 이동로로 활용됐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지 77일 만의 일이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PLO가 중동의 중심에서 쫓겨나 유배의 길을 떠나는 것이라며 침통해했다. 아라파트 의장은 튀니지로의 철수를 PLO의 망명이라고 규정했다.

”나는 간다. 그러나 내 마음은 영원히 베이루트에 남으리라. “


한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군으로 조직된 레바논평화유지군은 PLO의 철수를 지원하고, 분파 간의 충돌을 억제하여 레바논 정부의 통제력을 회복하고 민간인 피해를 줄이는 노력을 이어갔다. 미국은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제32 해병대를 베이루트에 주둔시켰다.


그러나 레바논 현지에서는 다국적군이 친이스라엘, 반팔레스타인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확산되었다. 이는 다국적군이 PLO 철수를 감시한다는 이유로 PLO를 무력화시키고,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에서의 작전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서 불거졌다. 특히 미국은 1980년부터 이스라엘을 중동 내 핵심 비NATO 동맹국으로 지정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본격화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0월 23일 베이루트 국제공항 인근 미 해병대 막사에서 트럭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해병 대원 241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프랑스군 막사도 정체불명의 괴한들의 공격을 받고 주둔군 58명이 사망했다. 미국 해병대로서는 역사상 최악의 테러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이슬람 지하디스트가 배후로 지목됐고, 헤즈볼라와 이란의 연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미국 국민들의 여론이 불같이 끓어올랐다. ‘왜 우리가 거기에 가 있느냐’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1984년 2월 7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레바논에서의 평화 유지 임무를 종료한다고 선언하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후 미 국방부는 중동에서의 지상군 개입에 보다 신중한 입장을 보이게 되었으며, 해외 주둔군의 방어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국제사회는 국제 정치의 복잡성과 민감성을 실감하는 한편, 평화 유지군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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