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PLO가 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며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하고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세력과 충돌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기독교 민병대의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 사건은 국제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982년 9월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랑 소속 무장 대원들이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난입하여 난민과 아랍계 민간인 등 수천 명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기독교 민병대원들이 난민촌에 난입한 표면적인 이유는 PLO 잔당을 색출한다는 것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 레바논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여기서 이스라엘과 기독교 민병대의 지지를 받아온 바시를 게마옐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취임을 9일 앞두고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당 청사를 방문 중에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민병대는 이 사건의 배후에 시리아와 PLO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대통령 당선자와 기독교 민병대를 이간질하기 위해 팔랑헤당 본부에 몰래 폭탄을 심은 것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기독교 민병대가 배후 색출에 나섰다.
와중에 베이루트에서는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 철수하지 않은 PLO 대원이 숨어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민병대는 이 PLO 대원들이 팔랑헤당 폭탄 사건의 범인들이라 믿고 이들을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한밤중에 난민촌에 진입하여 닥치는 대로 난민들을 사살했다. 학살은 48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으며, 여성 노인 어린아이까지도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난민촌 외곽을 포위하여 난민들의 탈출을 제지하고, 조명탄을 발사하여 민병대의 수색 작전을 지원했다.
희생된 난민들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으로 추정되었다. 난민들의 대다수가 신분이 등록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주 중이었으며, 일부는 가족 모두가 사라져 생존자와 사망자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스라엘 조사단은 사망자를 700명 수준으로 발표했고, 아랍계 언론은 3,000여 명이라고 주장했다.
1983년 유엔은 총회 의장 숀 맥브라이드를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고 레바논 난민촌 학살 사건의 진상을 조사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이를 지원한 이스라엘군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따라 이스라엘도 카한 위원회(Kahan Commission)를 구성하고 자체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위원회는 이스라엘군이 학살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지 못했으며, 이는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이 직무상 의무를 태만히 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샤론 국방장관은 책임을 인정하고 사임했다.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 사건은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참한 현실을 새삼 인식시키고, PLO와 팔레스타인인의 정치적 지위에 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PLO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무력만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후 아라파트 의장은 UN과 비동맹운동을 통해 보다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반면, 아랍의 급진 세력들은 PLO의 세속적이고 민족주의적 노선에 실망하며 이슬람주의적 대안 세력을 찾기 시작했으며, 이는 종교적 이념과 무장투쟁을 결합한 하마스(Hamas)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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