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1978년 9월 17일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전송된 한 장의 사진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진에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감격에 찬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앙숙으로 지내온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중동에서는 처음으로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협정은 이스라엘에 대한 사다트 대통령의 전격적인 평화 공존 제안으로 성사되었다.
1977년 11월 사다트 대통령은 이집트 인민의회에서 "예루살렘에 가서 평화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선언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를 통해 사다트 대통령에게 공식 초청장을 전달하고 사다트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이스라엘의 초청을 받은 사다트 대통령은 바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의회(크네세트)에서 연설했다. 그는 이스라엘 의원들에게 ‘당신들은 이 지역에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 우리도 안전이 보장된 평화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살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치권은 사다트 대통령의 대담한 제안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양국은 대화를 이어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협정문에 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양국은 협정에서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고,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정했다. 미국은 협정의 증표로서 양국에 경제 지원과 군사 원조를 제공할 것이라고 부서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상대방 국가에 대사관을 개설하고 상주 대사를 파견했다.
서방 세계는 이 협정이 중동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축소한 것이라며 크게 환영했다. 미국은 중동 평화를 위한 중재자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과시했다.
같은 해 노벨 위원회는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 베긴 총리에게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여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동 아랍의 리더 국가를 자처해 온 이집트가 팔레스타인인의 독립 국가 수립 문제는 외면한 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점령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시나이반도에서의 이스라엘 철군만 협의했다는 사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존재감을 뭉개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사다트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협상 초기만 하더라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중동 평화 협상을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과 자치권 부여 방안을 적극 제안했다. 그러나 베긴 총리는 서안지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를 포기할 수 없다며 협정의 내용을 이집트-이스라엘 양자 관계에만 집중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협정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배제되었다.
아랍 세계도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독단적으로 뒤집었다며 격렬히 반발하고 배신자로 규정했다. 아랍연맹은 회원국에서 이집트를 퇴출했다.
사다트 대통령은 1981년 카이로에서 열린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기념 군사 퍼레이드 행사 중 극단 아랍 민족주의 청년 장교들에 의해 피살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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