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독립 선언 - 폭력을 포기하고 대화에 나서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1988년 11월 15일 PLO는 알제리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Palestinian National Council, PNC)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선언(Palestini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했다.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는 7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PLO의 입법기구로서 1964년 예루살렘에서 개원했다.


아라파트 의장은 팔레스타인의 대표적 시인이자 지식인인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가 기초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PLO의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은 정치적 독립을 넘어, 팔레스타인 민족의 존엄과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정의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유일신을 믿는 세 종교의 발생지로,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은 이 땅에서 태어나 문명을 일궈왔다.

국제연맹 규약 22조와 로잔 조약(1923년)은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독립의 권한을 부여했다. 유엔 결의 181호(1947년)도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주권을 인정했다.

이스라엘이 이 땅을 점령하고 민간인을 추방하여, 민족의 삶을 파괴하는 행위는 테러이며 침략이다.

난민, 망명자, 점령지 주민 모두가 귀환과 독립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독립을 선언한다.

독립한 팔레스타인은 정의, 평화, 인권, 국제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세계인과 공존할 것이다.


다르위시의 독립선언문은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저항과 투쟁의 의지를 세계인에게 천명한 것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민족의 결기를 아름다운 언어로 절절히 표현만 최고의 저항 문학으로 자부하고 있다.


요르단은 PLO의 독립 선언을 존중하고 서안지구 합병 선언에 따라 취해진 모든 조치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PLO가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유일한 대표 기관임을 인정하고, 궁극적으로는 PLO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선언으로 해석되었다.


요르단을 선두로 여러 아랍 국가와 비동맹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하고 나섰다.


1988년 12월 13일 아라파트 의장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총회 특별 회의에 참석하여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문을 재차 낭독하고, 민족의 독립과 국제사회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겠다는 의지를 아래와 같이 표명했다.


PLO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두 국가 해법을 수용한다.

PLO는 테러와 폭력을 포기하고 평화적 해법을 추구한다.

유엔 결의 242호(3차 중동전쟁 후속 결의)와 338호(4차 중동전쟁 후속 결의)를 존중하며,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위한 국제 평화회의에 참여한다.


유엔은 당초 아라파트 의장을 12월 15일 예정된 뉴욕의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도록 초청하였으나 미국이 아라파트 의장의 미국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함에 따라 총회의 일부를 제네바에서 특별회의 형식으로 열고 아라파트 의장의 연설을 경청한 것이다.


12월 15일 뉴욕의 유엔 총회는 결의안 43/177를 채택하고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을 인정했다.


결의안은 PLO가 발표한 독립 선언을 환영하며, 그간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의 명칭을 팔레스타인(Palestine)으로 변경하며, 팔레스타인 민족 자결권과 독립권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결의안은 찬성 104개국, 반대 2개국(미국, 이스라엘), 기권 36개국으로 채택되었다.


유엔이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을 승인한 것은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대표로서 PLO와 아라파트 의장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것임을 확인한 것이었다.


미국은 유엔 결의에 반대했지만 이후 PLO와 대화를 재개하고, 오슬로 협정(1993년)이라는 중대한 외교적 전환점을 이끌어 갔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행정수도 라말라에는 마흐무드 다르위시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멀리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언덕에, 그의 묘소와 박물관, 야외극장, 도서관, 공원 등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다르위시는 1941년 갈릴리 지역 알비르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고 갈릴리 지역을 영토로 삼자 난민의 신세가 되어 가족과 함께 레바논으로 피난했다가 이후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돌아왔으나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내부 난민’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1960∼1970년대 그의 시가 정치적 저항의 상징이 되면서 이스라엘 당국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 PLO 활동에 참여했으며 이후 튀니지,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아랍어 이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현실과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을 에덴의 상실, 부활, 추방 등의 단어로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아랍 세계 문학인 중 정치적 시인의 전형으로 명성을 얻었다.


‘기억하라, 나는 아랍인이다’로 시작하는 그의 시 <신분증>은 이스라엘의 억압에 강렬히 저항하는 정치적 결의를 문학으로 승화한 대표적인 저항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된 이후 라말라로 귀환하여 팔레스타인 문학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팔레스타인 민족 문화 활동에 전념하다 2008년 미국 휴스턴에서 심장 수술 중 사망하여 라말라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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