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대관 - 천상의 모후를 그리다

명화는 혁명을 한다

by 다두



Incoronazione della Vergine - Tintoretto


틴토레토의 1580년경 작품이다. 143 cm x 362 cm의 좌우로 긴 캔버스에 그려졌다.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에 전시되어 있다.


틴토레토(Tintoretto)-본명은 야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는 16세기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르네상스의 마지막 불꽃이자 바로크의 서막을 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별명 ‘틴토레토’는 '작은 염색공'이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염색 업자였던 데서 유래했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들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역동적으로 배치하고 강렬한 빛과 그림자를 통해 감정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과장된 단축법으로 공간의 깊이를 강조하여 시각적 충격을 준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듯한 분위기다.


L’Ultima Cena - Tintoretto


그의 화풍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작품은 <최후의 만찬>이라 할 수 있다.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제목은 같지만, 시대적 배경, 미술 사조, 화풍, 감정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마치 같은 대본을 가지고 두 연출가가 각기 다른 무대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1490년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 벽화로 그려진 작품이고, 틴토레토의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에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져 베네치아 산 조르조 마조레 교회에 걸렸다.


레오나르도는 만찬 테이블을 수평으로 하고 조명은 자연 채광으로 다소 밋밋한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반면, 인간의 감정과 공간의 질서를 평면적이고 정적이며 수학적으로 설계했다. 예수는 중앙에 고요히 앉아 있고, 제자들은 배신 예고에 놀라면서도 큰 동요 없이 각자의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틴토레토는 만찬장을 빛과 그림자, 천사와 인간이 뒤섞인 초현실적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테이블은 사선으로 뻗어 있고, 예수는 오른쪽 뒤쪽에 앉아 있다. 앞쪽의 하녀들과 제자들은 원근법으로 그려 예수가 저 안쪽 깊은 곳에서 조명을 받는 듯한 모습이다. 천사들이 공중에 떠 있고, 하인들이 음식을 나르며, 빛은 예수에게 쏟아지지만 주변은 어둡고 혼란스럽다. 이는 신성과 인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혼재되어 있다.


틴토레토의 이러한 화풍을 르네상스에 대비하여 매너리즘(Manner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후기인 16세기 중반부터 바로크 이전까지 유럽에서 유행한 예술 사조로,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던 고전적 미학에서 벗어나 왜곡된 형태, 불안정한 구도, 강한 색채와 명암의 대비 등 극적인 표현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르네상스의 완성 이후 예술가들이 기존의 이상적 조화에서 벗어나 감각적이고 실험적인 표현을 시도한 결과이며, 종교 개혁과 반종교 개혁 신비롭고 극적인 표현이 강조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틴토레토는 평생 베네치아를 떠나지 않고 대부분의 작품을 스쿠올라와 교회, 공공건물에 남겼다. 이는 같은 베네치아 출신이면서도 국제적 궁정 화가였던 티치아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상업이 발달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정서와 신앙, 공간을 화폭에 담아낸 도시의 화가였다.


스쿠올라(Scuola)는 단순히 학교라는 뜻이 아니라, 베네치아 르네상스 시대의 독특한 종교적 사회적 조직이었다. 특히 예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스쿠올라는 가톨릭교회 교구 내에서 평신도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신앙 공동체로 자선과 봉사활동을 하고 성축일의 축제를 준비하기도 했다. 전쟁이 나면 전투 자금 모금, 포로가 된 회원을 위한 배상금 마련, 빈민 구제 등 복지와 연대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귀족들도 참여할 수 있었지만, 임원직은 맡을 수 없었고, 스쿠올라는 오히려 시민 계층의 자율성과 신앙심을 보여주는 조직이었다.


스쿠올라는 예술 후원자로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베네치아의 대표적 스쿠올라들은 유명 화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어요.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로코는 틴토레토가 5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긴 곳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미술관처럼 여겨져요. <십자가에 달린 예수>, <성모 마리아의 생애>, <구약과 신약의 장면>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자 성 마르코를 기리는 곳으로, 틴토레토의 <노예의 기적’>같은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틴토레토의 <성모의 대관>(Coronation of the Virgin), 혹은 <천국>(Paradiso)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자발적으로 충분히 참여한 결과로 하늘의 모후로서의 천상의 영광을 누리는 신비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성육신, 십자가, 부활에 깊이 참여하며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자발적으로 협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녀를 천상의 모후로 모시게 된 근거가 되고 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Munificentissimus Deus」라는 교황령을 통해 성모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는 교의를 공식 선포했다.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고,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기에 죽음의 부패를 겪지 않고 천상으로 승화되었음을 공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성모의 승천은 성모 마리아가 천상으로 올라간 것이고, 성모의 대관은 천상에서의 영광과 지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천상의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 위에 높임을 받는 여왕, 즉 Regina Caeli로서 신자들을 위해 전구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제5단의 ‘성모 마리아께서 천상에서 대관받으심을 묵상합시다’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 이후의 영광을 묵상하는 것이다.


틴토레토의 작품 중심에도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가 자리하며, 예수가 마리아에게 왕관을 씌우는 장면이 펼쳐진다. 구름 위에 펼쳐진 타원형의 천상 공간에는 수많은 인물들 - 열두 사도, 천사들, 교회의 성인들, 교황과 주교들 - 모두는 성모의 대관을 축복하며 천국의 영광을 함께 나누는 존재들로 묘사되고 있다. 성모 마리아에 왕관을 씌우는 이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이론에 의해 하느님, 예수, 또는 성령의 하나로 해석되기도 한다.


인물들은 소용돌이치듯 배치되어 있고, 빛과 그림자의 흐름이 역동적이다. 색채는 깊고 어두우며, 광채는 성모와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어 신성한 중심을 강조한다. 화면을 상하로 구분하여 천국의 질서와 인간의 혼란을 구별하면서도 같은 흐름과 동선으로 탄탄한 인간적 기반을 제외하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 총독 궁(Doge’s Palace)의 회의실을 장식 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당시 베네치아는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독립을 동시에 강조하려 했고, 이 그림은 그 상징적 정점에 있었다. 즉, 틴토레토의 <성모의 대관>은 베네치아의 신앙과 예술, 정치가 하나로 융합된 시각적 찬가라 할 수 있다. 성모는 단순한 성인이 아니라, 천상의 여왕이자 도시의 수호자로 그려졌고, 틴토레토는 이 장면을 통해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나드는 회화적 천국을 창조한 것이다.



<성모의 대관>은 같은 이름의 라파엘로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라파엘로의 <성모의 대관>은 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르네상스의 이상을 정제된 구도와 조화로운 색채로 구현한 걸작이다. 이 작품은 1502~1504년, 라파엘로가 불과 19세의 나이에 제작한 것으로, 그의 스승 페루지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L'Incoronazione della Vergine - Raffaello

라파엘로의 <성모의 대관>은 페루자 성 프란체스코 교회의 오디 가문 예배당에 그린 것인데 현재는 바티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화면의 상단은 천상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모 마리아에게 왕관을 씌우는 장면이 중심이다. 주변에는 천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축복하는 모습이다. 구름 위에 펼쳐진 대칭적 구도로, 르네상스의 질서와 조화를 반영한다.


하단은 지상계를 묘사했다. 사도들이 성모의 빈 무덤을 둘러싸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다. 도마 사도는 성모가 남긴 허리띠(Sacra Cintola)를 들고 있다. 이는 성모의 승천을 믿게 된 상징적 유물로, 중세 이후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오디(Oddi) 가문은 이탈리아 페루자 지역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으로 지역 사회와 종교적 활동에 깊이 관여했다. 라파엘로에게 작품을 의뢰할 정도로 예술 후원에 적극적이었으며, 이는 당시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의 전형적인 문화적 역할이기도 했다. 성 프란체스코 교회 내 오디 예배당은 이 가문의 이름을 딴 공간으로, 그들의 신앙과 사회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죠.



이 작품은 나폴레옹이 1797년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몰수되어 파리로 옮겨졌다가, 1815년 반환되어 바티칸 미술관에 영구 소장되었다.



성모 마리아가 죽어 승천하기 이전까지의 생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Casa della Vergine Maria a Efeso

일부 전승과 외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지금의 튀르키에 셀축 지방)로 이주해 그곳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에페소에는 현재도 “성모 마리아의 집”이라 불리는 순례지가 있다.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서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마리아에게 “이 사람이 네 아들이다”라고 말하고, 요한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 시다”라고 말한다. 이는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평생 모시게 된 계기로 해석되며, 이후 요한은 마리아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모셨다는 전승이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예수 사후 로마제국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고, 마리아와 요한은 보다 안전한 지역을 찾았을 가능성이 크다.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 요한 계시록 등은 요한이 에페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에페소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도 문화와 종교가 융성한 도시였다.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조용히 신앙을 지키며 살기에는 에페소만 한 곳이 없었을 것이라는 추청이 가능한 부분이다.


독일의 수녀이자 신비가인 아나 카타리나 엠메릭은 초자연적 환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모 마리아의 생애, 초기 교회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묘사한 신비를 체험했다. 그녀는 병상에서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 길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성모 마리아의 어린 시절, 예수의 탄생, 성모의 고통과 승천 등을 현실에서 보는 듯이 설명했으며, 초기 교회와 사도들의 활동과 순교 장면을 그대로 보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성탄 교회와 예루살렘 등 그녀가 방문하지 않은 예수의 발자취를 그림을 보고 그리듯이 상세히 지적하고 묘사했으며,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낸 에페소에 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그녀의 환시를 바탕으로 고고학적 탐사를 거듭한 학자들은 19세기말에 에페소 인근에서 성모 마리아의 집터를 발견했으며, 이후 교황청도 이를 인정하여 순례지로 지정했다.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 참조)


성모 마리아가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전승도 있다. 이를 근거로 베네딕토 수도회는 예루살렘 시온산의 ‘성모 영면 교회(Dormition Abbey)’와 올리브산의 ‘겟세마니 성모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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