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혁명을 한다
푸생의 작품으로 1664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155 x 200 cm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독일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Alte Pinakothek)에 있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은 프랑스 회화사에서 고전주의의 정수를 보여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지성과 균형, 서사적 깊이가 있어, 시각적 아름다움에 철학적 사유와 역사적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푸생은 1594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레 장들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노르망디에서 활동하는 지방 화가들로부터 그림을 배우다 18세가 되던 해에 파리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미술 공부에 몰두했다.
1624년에는 로마로 건너가 라파엘로와 카라치파의 영향을 받으며 고전주의적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 1639년 루이 13세의 요청으로 프랑스 궁정화가로 임명되어 활동하기도 했지만, 궁정 생활이 지겨워 다시 로마로 돌아가 활동하다 로마에서 생을 마감했다.
푸생의 고전주의는 감정보다는 이성을, 혼란보다는 질서를, 불안정보다는 균형을 중시하고, 신화와 성서의 역사적 주제를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양식을 말한다. 풍경화에 있어서도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인간의 운명과 자연의 질서를 연결하는 상징의 알고리즘을 활용했다. 인물의 배치, 색채의 조화, 구도의 안정감은 사전에 철저히 계산되어 정확하고 정교하다.
푸생은 고전주의는 프랑스 근대 회화의 대표적 양식으로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아카데미즘의 기준이 되는 화풍으로 자리 잡았다.
아카데미즘(Academicism)이란 유럽의 미술 아카데미, 특히 프랑스 국립미술학교(Académie des Beaux-Arts)에서 정립한 예술의 규범과 이상적인 양식을 따르는 미술 경향을 말한다. 이는 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전통적 규칙과 기술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원칙이었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로는, 고전적 인체 묘사와 균형미의 대가로 평가받는 앵그르(Ingres), 이상화된 여성 누드와 감성적 서사로 유명한 부그로(Bouguereau), <비너스의 탄생> 등 신화를 그린 카바넬 (Cabanel),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일상을 그린 알마 타데마 (Alma-Tadema) 등을 꼽는다.
그러나 아카데미즘도 시대의 변화와 지성의 발전에 따라 비판을 받으며 쇠퇴해 갔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는 인상주의(Impressionism)와 아방가르드(Avant-garde) 운동이 부상하면서, 아카데미즘은 창의성을 억압한 보수적인 화풍으로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되었다.
특히 1863년 ‘살롱 데 르퓌제(Salon des Refusés)’는 아카데미가 거부한 작품들을 따로 전시하며, 예술의 자유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술사의 혁명적 계기를 마련했다.
푸생의〈아폴로와 다프네>는 고전주의적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아폴로와 다프네의 이야기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Ovid)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서 아폴로는 태양의 신으로 사랑을 갈망한다. 예술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다프네는 강의 신 페네우스의 딸로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님프다.
아폴로는 에로스의 황금 화살을 맞고 다프네에게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는 끊임없이 다프네를 쫓으며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사랑보다는 자유를 갈망하는 다프네는 에로스의 납 화살을 맞고 아폴로의 사랑을 거부한다. 사랑보다는 영원한 자유를 원한 것이다. 결국 다프네는 어머니에게 간청해 월계수 나무로 변신함으로써 아폴로의 육체적 사랑의 대상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었다. 아폴로는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월계수 잎으로 관을 만들어 영원한 사랑의 표상으로 간직한다.
에로스는 왜 이들에게 두 종류의 화살을 쏘았을까?
에로스(Eros)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비너스)와 아레스(전쟁과 파괴의 신)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사랑과 성애의 신이다. 로마 신화에서 큐피드(Cupid)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두 종류의 화살을 가지고 사랑과 욕망을 창조하거나 조절한다. 그가 쏜 황금 화살을 맞는 자는 처음 본 사람에게도 강렬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납 화살을 맞는 자는 처음 본 이를 혐오하거나 거부하게 된다. 이 화살은 신과 인간 모두에게 효능을 발휘하며, 에로스 자신도 이 화살의 능력을 피할 수 없다.
아폴로는 궁술의 신이기도 했다. 그는 활과 화살을 능숙하게 다루는 신기를 가졌다. 신화에서 아폴로의 화살은 죽음과 질병을 가져오는 무기로 묘사되기도 하고, 때로는 정의와 예언의 상징으로도 사용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폴로는 그리스 군에게 역병을 퍼뜨리는 화살을 쏘기도 했다.
아폴로는 에로스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화살의 능력을 무시했다. 그는 “사랑의 신이 무슨 활을 쏠 수 있겠어”라며 에로스를 무시하고 활의 능력을 조롱했다. 이에 에로스는 자존심이 상해 복수심에서 두 개의 화살을 꺼내 아폴로와 다프네에게 쏘아 버린 것이다.
에로스는 두 화살의 능력을 가졌지만 아폴로처럼 활을 쏘는 기술 자체는 뛰어나지 않아 간혹 실수를 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작가 아풀레이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에로스의 실수가 만든 프쉬케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프쉬케라는 이름의 여성은 신보다 더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은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프쉬케를 더 숭배했다. 이에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에게 프쉬케가 가장 천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하라고 명령했다.
에로스는 프쉬케에게 납 화살을 쏘려다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실수로 에로스 자신에게 금 화살을 쏘아 프쉬케를 극도로 사랑하게 된다. 그는 프쉬케를 비밀의 아내로 삼고 비밀스러운 궁전으로 데려가 밤마다 함께했다. 그러나 에로스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프쉬케에게 절대로 자신의 얼굴을 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프쉬케는 언니들의 질투와 부추김으로 얼굴을 보지 못한 남편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고, 몰래 촛불을 켜서 그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 순간 에로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프쉬케에게 실망하고 궁전을 떠나고 만다. 에로스가 사라진 비밀의 궁전도 사라지고, 프쉬케는 에로스를 되찾기 위한 시련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프쉬케는 에로스의 어머니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에로스를 되돌려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아프로디테는 프쉬케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혹독한 과제를 부여한다.
첫 번째 과제로 프쉬케는 수많은 종류의 곡물이 섞여 있는 곡식 더미에서 이를 종류별로 분류해야 했다. 이때 개미들이 몰려와 프쉬케를 도와 곡물을 모두 구분해 주었다.
두 번째는 사나운 황금 양 떼들을 좇아 황금 양털을 모아 와야 했다. 푸쉬케는 양들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데 갈대들이 ‘황금 양들이 가시덤불에 몸을 비빌 때 떨어지는 양털을 주어라’고 조언하여 손쉽게 황금 양털을 모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저승과 연결된 스틱스 강의 절벽 폭포에서 검은 물을 담아와야 했는데 독수리가 나타나 푸쉬케의 병을 낚아채고 대신 물을 담아 주었다.
네 번째는 저승의 여신 페르세포네에게서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이 담긴 상자’를 받아와야 했다. 아프로디테는 상자를 받아 오더라도 절대로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이때 근처의 높은 탑이 프쉬케에게 저승으로 안전하게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저승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부탁하는 모든 것을 거절해야 해야 이승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도 알려주었다.
프쉬케는 탑이 가르쳐 준 대로 무사히 저승으로 들어가 상자를 받아 들고 여러 유혹을 뿌리치고 이승으로 돌아왔다. 프쉬케는 아프로디테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받아온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상자 속의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도 더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상자 속에는 아름다움이 아닌 ‘죽음의 잠’이 가득 들어 있었다. 프쉬케는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에로스는 푸쉬케의 마음에 감동하고 잠든 그녀를 찾아와 입맞춤한다. 순간 죽음의 잠에 빠진 프쉬케가 되살아 난다. 에로스는 제우스에게 청원하여 프쉬케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고 올림푸스에 데려가 결혼했다.
푸생은 <아폴로와 다프네>에서 신화의 장면을 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심오한 철학적 사색의 장으로 묘사했다.
아폴로는 다프네의 손을 붙잡은 채 절망에 빠져 있고, 다프네는 이미 나무로 변해가는 중이다. 에로스는 배경에서 활을 다시 겨누고 있고, 강의 신 페네이오스는 좌절한 채 앉아 있다.
푸생은 고전주의적 미학이 충만한 이 작품을 통해 아폴로로 대변되는 육체적 사랑과 다프네로 대신하는 정신적 자유의 의미를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다프네를 대신해 아폴로의 머리 위에 놓인 월계수는 아폴로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 월계수는 아폴로의 분신으로서 아폴로 신전을 장식하고 명예, 승리, 영광, 고귀를 상징하며 위대한 시인이나 영웅에게 바쳐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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