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고 싶은 마음

독일 한인사회

by 저먼해

독일 많은 도시에 한인회가 있다. 따뜻한 봄날 모여서 고기도 구워 먹고, 광복절에는 독일 전국에서 한인들이 중부로 모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재회를 하기도 한다. 단연 가장 큰 행사는 연말 송년회.. 각 지역별로 송년회를 하면 다른 지역에 살아도 서로 방문하며 정을 나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모여 장사를 하기도 했다. 이문화 거리축제를 도시에서 개최해서 한국 음식을 지역 시민에게 널리 알리고 한인회 수익원이 되기도 했다. 내가 독일에 처음 왔을 때부터 있던 시 주최 행사가 몇 년 전 없어졌다. 한인회 유일한 수익원이라 좋기도 했지만, 주말 이틀 행사를 하려면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팔아야 하고 일이 엄청 많았다. 그 수익원이라는 게 참여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원천이라 그 행사가 없어지고 한편으로는 좋았다.


7년을 재무로 일하고 지난 2월 말 다음 임기에게 넘겨주었다. 독일 한인 사회는 70년대 간호사와 광부로 일하러 오신 분들이 주측이라 이젠 80세를 넘긴 분들이 많다. 그곳에서 나는 완전 꼬꼬맹이다. 요즈음은 2세가 결혼을 해서 3세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는 사람이 있어서 보기 좋다. 그래도 한인 2세가 한인회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도 여기 와서 가족이 된 형님이 회장이라 재무를 맡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할 일이 있었을까 싶다.


코로나로 마스크 대란 때는 한국으로부터 마스크를 공수해 나눠주기도 하고,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쌀과 한국 식재료를 나누기도 했다. 한인회 재무를 하면서 한인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고, 사람들도 알게 되고 그나마 젊은 사람이라 함께 도울 수 있게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했다.



재작년 늦가을 시아버지 상을 치르고 송년회 준비를 위해 만났다. 행사 전날 행사장을 세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다음날 송년회 행사. 그래도 상을 치르고 갔는데... 딱 두 명만이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남편은 그 해 행사에 참석을 안 했었다. 49재도 안 지냈는데 웃고 떠드는 장소에 갈 수 없었다. 나도 재무만 아니었다면 안 갔을 거다.

어떤 이는 한국 다녀오더니 얼굴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애도는커녕 이제야 부모님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부럽다는 말을 했다. 다들 모르고 있나 싶었는데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다 알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뭐지? 6년을 나름 봉사하고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시부상 애도의 말도 못 듣는다는 게 뭔가 이상했다. 나만 일을 한게 아니라 그동안 남편도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은 한다고 했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 전하는 관계. 반가운 소식만 전하고 웃고 떠드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힘든 일이 있을 때는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날 이후 사람들에게 정이 뚝 떨어졌다. 재무 일이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내가 아는 건강한 관계는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다. 어르신들 사이에 끼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다 흩어져 버리는 느낌. 함께 웃고 있어도 기쁘지 않았다. 애도의 말 한마디도 못 나눈다면 그건 함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다음 회장 임기를 맡은 분이 나에게 사무총장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해왔는데 몇 년 후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싫다고 사양을 했다. 어쩌면 컴퓨터도 다룰 수 있는 젊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오늘 필사를 하다가 문득 이 마음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보내주기는 힘들고, 이렇게 글이라도 써내면 마음이 편해질까 싶어서 불편한 이야기 구구절절 써 본다.


빅터 프랭크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자기를 보며 그저 으쓱하거나 상투적인 인사치레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거의 모든 곳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몰랐어요.", "우리도 똑같이 고통을 받았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생각했다고 했다. "저 사람들은 정말로 나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일까?"

환멸을 경험한 사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의 한계까지 다가갔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겪은 마음을 어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크에게 비할 바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어제 다른 한인회 행사에 운전이 어려운 분들을 모셔다드리고 거기에 앉아 있으려니 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마음도 모르고 밥 먹고 가라고 붙잡는데 짜증이 불쑥 올라왔다. 그 참에 이 글을 만났다. 이젠 이 마음을 떨쳐 버리고 싶다.

어르신들이 벌써 부모님 멀리 보내드려서 공감 안 될 수도 있지 그게 뭐 대수라고.

바라는 마음이 있으니 서운한 마음도 생기는 거다. 이 글로 그 마음 훨훨 날려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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