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골프
이른 아침 체감 온도 4도. 하지만 오랜만에 햇살이 가득하다. 예전엔 비만 안 오면 배추를 소금에 절여두고도 그사이 골프장을 갔다 오기도 했었는데, 허리에 이상을 느끼고부터는 하루 걸러 한 번씩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이렇게 반짝이는 날씨에 골프장을 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딸을 학교에 보내고 나도 출근 준비를 했다.
골프채는 규정상 14개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아마추어인 나는 골프채가 14개도 되지 않지만 아무 문제없다. 작년에 필요에 의해서 로브채를 하나 구입하기는 했지만 연습부족으로 자신감이 아직 없다.
이 장비를 내 거로 만드는 데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피팅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종류의 채 중에 나와 맞는 것을 찾는데 보통 한 시간여 시간을 들인다. 처음 시작할 때나 한꺼번에 사지, 그 이후론 드라이브만 바꾸고, 아이언세트를 바꾸고, 우드를 하나씩 구입하기도 했다.
골프 경력 10년 차, 처음 시작한 채를 아직도 사용하지는 않지만 의외로 채의 교체보다 가방의 교체가 더 잦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종일 받으며 견뎌야 해서 자크가 고장이 나기도 하고 천이 얇아져 찢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카트를 타고 다니니 비 맞을 일도 없고, 자동차와 카트를 옮겨 가며 안전한 자리에만 있겠지만 독일의 골프채는 그렇지 않다.
비가 오면 맞고, 강렬한 햇빛도 그대로 맞아야 하고, 비바람이 불 때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트롤리와 함께 넘어지기도 한다. 트롤리에 얼마나 기능이 많고 비싼지와상관없이 강한 바람에는 대책 없이 넘어간다. 한 번은 익숙하지 않은 골프장의 경사진 곳에 브레이크 없이 백 미터 가까이 굴러 내려가 처박힌 적도 있었다. (동반 플레이어의 잃어버린 공을 같이 찾아 주고 오니 내 골프백이 없어져서 깜짝 놀랐었다.)
골프장에서 항상 나와 함께 하는 이 장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10년 차 나의 골프 인생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구름 낀 하늘이 조금 염려스럽던 어느 날, 5번 홀까지 기분 좋게 골프를 쳤는데 저 멀리 까맣게 뭉쳐 있는 비구름. 안 되겠다 저 비구름은 심상치 않다, 클럽 하우스로 돌아가는데.. 우르르 쾅쾅. 갑자기 밀려오는 천둥 번개. 아이언에 번개를 맞으면 바로 벼락 맞는 건데. 그때의 공포감은 잊을 수 없다.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즐거움의 동반자였던 골프채가 한순간에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골프채가 내 골프 인생 10년을 바라보며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 할 것 같다.
한 번 잘 쳤다고 끝까지 잘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미스샷을 했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줄 것 같다.
골프와 인생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잘했다고 영원히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엉망이 되었다고 그 또한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함으로 인생을 살아봐야지,
이른 아침 찬바람과 함께 맑은 하늘 구경하고 지금은 어두운 라커 안에 머물고 있을 나의 골프 동반자. 한 번도 보지 못한 옆집 윗집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가 또 만나자. 나와 인연이 되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