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알게 된 것들
결핍의 사전적 의미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원래 있어야 할 것의 부재는 슬픈 일이지만, 때로는 없어지거나 모자라 봐야 비로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한국인 최초로 프롬퀸이 되었다. 사립 기독교학교였던 터라 인기상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이 가장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는 여학생을 뽑는 행사에 가까웠다. 지금보다도 훨씬 여리고 소심했던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했고, 솔직히 부끄럽기까지 했다. 학업에 열중했고 늘 웃고 다녔으니, 겉으로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모범적인 학생처럼 보였나 보다. 하지만 사실 그 당시 내 내면은 결핍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외에서 학교를 다녔고 힘들었다고 하면 흔히들 배부른 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 역시 나 나름의 치열한 시간들을 보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춘기를 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흔한 엄마의 아침 기상 알림 한 번이 없었다. 대입이 걸린 중요한 시험날 아침에도 새벽에 눈을 떠 혼자 밥을 짓고 계란과 김치에 아침을 해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체력관리도, 공부계획도, 멘탈관리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자존감 문제였다.
그 시절 나의 자존감은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배처럼 불안정했다. 안정감을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외로운 유학생활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할수록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었다.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고, 대신 나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모범적인 이미지와 학업성취를 쌓아 올렸다. 시험점수가 낮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점수를 높게 받으면 나는 내가 대단하다고 믿었다. 좋은 성적은 나에게 가장 강력한 자기증명 도구였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되고 싶었다. 깊게 자리 잡은 불안과 외로움은 나에게 숨기고 싶은 약점이자 결핍이었고, 혹여 그것을 들킬까 봐 늘 경계했다. 학창 시절, 나의 결핍은 그렇게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잠식했던 결핍들은 나를 결코 더 낮은 곳으로 이끌지 않았다. 낮은 자존감은 학업에 있어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고, 대학입시에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한계를 스스로 도전해보게 한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외로웠던 숱한 시간들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과 주체성을 쌓는 토대가 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정서적 지지와 안정감은, 오히려 더 가치 있는 관계를 알아보는 눈을 길러주었다.
물론, 결핍 그 자체를 미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핍으로부터 파생된 동기의 방향 또한 올곧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나됨은 좋은 일과 나쁜 일, 기쁨과 슬픔, 그리고 만족과 결핍이 모두 맞물리며 완성된 것이다. 하나의 그림에 명암이 있듯, 이 모든 조각들이 모여 세상에 하나뿐이 내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결핍들을 당당히 마주해 보자. 그리고 그 결핍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들, 깨달은 것들을 천천히 떠올려보자.
연약함 가운데서 완전케 된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차마 꺼내기 힘든 기억일지라도 괜찮다. 어둡고 추운 밤일수록, 밤하늘의 별은 더 선명하고, 밝게 빛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