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고 싶어서 퇴사했습니다

무성한 초록의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by 나몽


5년간 이어온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HR업무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내게는 명확한 비전이 있었다.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 라는 다짐.


신입시절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하고 야근을 자처하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열정적인 러너였다. 하지만, 영리 조직의 현실은 나의 비전과는 사뭇 달랐다. 회사는 사람을 사람보다는 ‘인력’이라는 자원으로 바라보았고, 조직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서 직원들의 한탄과 원망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버거웠다.


사실 퇴사를 결심한 건 커리어적인 고민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른 살의 나는 지금쯤 어디에 와 있는 걸까 라는 자문을 할수록, 내가 붙들고 있는 이 ‘안정적인 직장’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관념을 만족시키기에 걸맞은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장을 가졌으니, 이제는 결혼을 통해 내가 짜놓은 완벽한 생애주기를 완성시켜야만 했다. 맞지 않는 곳임을 깨달으며 매일 불편했고, 너무 꼬이고 꼬여서 도저히 소통이라고는 안 되는 상사가 아침마다 부정적인 언어를 쏟아내도 묵묵히 견뎠다. 누구나 힘든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사이 나의 일상 곳곳이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잠이었다. 깊은 잠에 들지 못했고, 밤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쿵쾅대면서 깨곤 했다. 관계 또한 목적중심적으로 변해갔다. 내 인생의 다음 스텝인 결혼을 위한 관계만 찾게 되었고, 관계에 초점을 두지 않고 소위 좋은 조건인 사람들을 만났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사회적 관념과 탄탄대로를 걸어야 한다는 나의 집념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내 인생을 온전히 리셋하기 위해서.


물론, 당시에는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좀 더 좋은 상사를 만났더라면, 안정적일 때 좋은 인연을 만났더라면이라는 미련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변수의 향연이다. 간절히 원했던 것이 비극이 되기도 하고, 절망했던 순간이 기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나는 그런 시원섭섭한 마음들을 담은 인생의 한 챕터를 닫았다. 이끌려 가는 인생이 아니라, 명료한 목표를 가지고 주체적인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내 인생의 타임아웃을 외치고 난 뒤, 태국으로,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새로운 커뮤니티에 나가보기도 하고, 책을 다시 손에 쥐었으며, 얼떨결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깊이 아껴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지쳤던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이제는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전문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뛰다가 잠시 멈춰 서서 내 인생의 나침반을 찬찬히 바라보는 중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이따금씩 사회에서 멀어진 내 모습이 작아 보이기도 하고, 조급함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요즘 나는 매일 꿀잠을 잔다.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줬다.

무성한 초록의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벚꽃이 지는 것처럼, 그동안 버거웠던 마음의 조각들을 훌훌 털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