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좋은 감정들을 안좋아하지 않아

슬픔 vs. 기쁨?

by 나몽


불안, 걱정, 분노 등의 감정들이 불쑥 찾아오면 우리의 몸은 즉각적인 방어태세를 갖춘다.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하고, 손바닥엔 식은땀이 배며, 배는 점점 더 꼬여오고,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런 달갑지 않은 감정들을 밀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이 감정들이 마냥 안좋기만 한 것일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 라일리는 정든 동네를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당황스러운 상황들은 라일리의 내면세계를 뒤흔들고, 자아를 지탱하던 소중한 성들은 하나둘씩 무너진다. 그런 상황에서 라일리의 내면 속 기쁨이는 자꾸만 속을 뒤집어놓는 슬픔이를 부정하며 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라일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기억이었다. 마냥 해맑기만 했던 라일리의 성들은 무너졌지만, 그 자리엔 한층 더 단단하고 입체적인 성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매일 직장에서, 가족에서, 혹은 학교에서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이한다.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분노, 낙담, 실망, 좌절의 감정들은 매번 낯설고 참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때로는 그 안좋은 감정들은 훗날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가 작아 보이고 부끄러웠던 기억은 훗날 높은 자리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게 붙들어줄 것이고, 이는 타인에게 더 깊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해 줄 것이다.


가족들과 떨어지거나 연인과 이별하며 철저한 고독을 견뎠던 시간들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되어 건강한 관계의 밑거름이 된다.


나의 노력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졌음에도 결국 무언가를 이뤄냈던 경험은, 미래의 나에게 믿음을 준다. ‘지금의 나의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라는 확신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어준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고통이지만, 동시에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일깨워준다.


결국, 슬픔은 기쁨을 더욱 충만하게 느끼게 해주고, 기쁨은 다시 슬픔을 이겨낼 용기를 준다.


그럼에도, 오늘의 안좋은 감정은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한다. 힘든 날을 보내는 이에게 ”훗날 도움이 될 테니 참아라“ 라고 말하는 건, 마치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테라스에서 유유자적 커피나 마시라는 이야기랑 별반 다를 게 없다. 대신,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저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자. 나와 나의 상황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조하다 보면, 몰아치던 감정도 조금은 덜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쏟아지는 비나,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막을 길은 없으나, 장대비가 지나간 그 자리에서 피어날 견고한 성을 고대한다. 그러니, 안좋은 감정들을 안좋아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