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길 위에서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참 멀고도 낯설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다른 시간 속을 걷는 느낌이다. 내 30년의 인생을 함께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사실 깊고 진솔한 대화 한 번을 나눠보지 못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는 관계지만, 사실은 나도 아빠를 모르고, 아빠도 나를 모르는 느낌이다.
어린 시절엔, 그리고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어른이라면, 아빠라면, 딸과 좀 더 깊은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나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을 때, 견고한 자존감이 세워지지 않았던 그 시절 - 왜 그 어린아이에게 과한 상처를 주었을까. 왜 나의 부족함을 크게 느끼게 했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의 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 새겨졌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빠와 나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은 내가 자라는 만큼 함께 깊어졌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안전한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인데, 정작 내가 사회에서 모진 풍파를 견딜 때 그 그늘을 찾아갈 수 없었다. 그런 존재의 부재는 어린 시절 나에게 큰 허기짐이었다.
물질적으로는 언제나 풍족했다. 부족함을 모르고 자랄 수 있었던 건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 마음의 여유 덕분이었을까, 항상 어딜 가나 귀하게 자란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이 세상에서, 유학까지 보내주고 내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 세상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나게 되었다. 정작 본인은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귀한 경험을 나에게는 넘칠 만큼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아빠를 어려워하는 내 마음에는 늘 죄책감이 뒤섞여있다. 그 죄책감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분명, 모든 것을 받았는데, 마음 한 켠은 비어있다.
이제는 나도 아빠와 같은 어른이 되어가며,
어른으로서의 무게감을 조금씩 느껴가며,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빠도 자신의 삶의 맥락과 경험 속에서 최선을 다했으리라. 아빠 역시, 이 삶이, 아빠가, 처음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본인이 받은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자식에게 주려 했던 그 깊고 따뜻한 마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빠를 ’아빠‘가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대견한 사람이다. 아빠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렵고 힘들고 고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서른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아빠에게 상처를 받는다.
상처받았던 기억 속의 나는 크지 못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진솔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아빠는 나의 진심과 생각을 거의 모른다. 인생에서 내가 산을 만날 때마다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때로는 더 뾰족한 말과 행동으로 그 이상의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떠한 경험도 쉽게 공유하지 못한다.
아빠와의 관계는 마치 손가락에 아주 작은 가시가 하나 박혀 있는 느낌이랑 비슷하다. 평소엔 괜찮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욱신거린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아빠에게 감동이 되고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의 진심과 생각이 아빠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빠의 진심도 나에게 닿기를 바란다.
아빠와 딸,
이 인연을 온전히 누리고, 존재만으로 서로를 귀하게 여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