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을 알면서도 시작된 이야기

피곤해서 선선하게 좋아 ⑤

by 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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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을 하다 보면,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시작되는 인연들이 많다. 독일에서의 박사과정 동안, 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인연들이 있었다.


중국에서 온 그대들

독일 박사 유학 첫 해, 기숙사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길에 어느 중국 여학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했고, 우리는 둘 다 독일에 막 정착했다는 공통점 덕분에 금세 가까워졌다.


사실 그녀는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연구하던 포닥이었고, 1년간 독일 연구 교환 프로그램으로 이곳에 와 있었다. 짧은 소개를 나눈 뒤, 우리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같은 기숙사에 살면서, 그녀는 가끔 내게 중국 요리를 만들어주었고, 나는 한국 음식을 사 가며 보답했다. 함께 큰 도시에 쇼핑도 가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더불어 그녀는 독일 내 중국 커뮤니티에서 열리는 이벤트가 있으면 늘 나도 초대해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고향에서는 “함께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1년 후, 그녀가 연구 교환 프로그램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내게 중국인 친구들을 소개하며 말했다.

“내가 떠나도, 이 친구들과 잘 지내.”


독일에서 만난 중국인 동료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아니라, 같은 아시아에서 온 옆 집 친구들 같았다. 그녀 덕분에 나의 독일 첫 1년은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또 다른 중국인 친구를 통해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인도에서 온 그대들

유학 시절, 독일에서 만난 인도 출신 인연들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한국과는 또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그들과의 만남은 늘 새롭고 흥미로웠다. 때로는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였으며, 또 다른 때는 시끄럽지만 정겨운 이웃이기도 했다. 그 인연들은 내 유학생활을 훨씬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첫 번째 인연은 같은 연구실에서 만난 포닥이었다.
그녀는 같은 아시아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내 한국식 겸손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고, 그 순간 나는 낯선 땅에서 ‘내 편’을 만난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 서툰 발음을 언제나 막힘없이 알아들어 주었다.


비록 같은 프로젝트를 하진 않았지만, 포닥이었던 그녀는 내 박사 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늘 든든한 동반자였다. 내가 실험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할 때면 늘 나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조언을 건넸고, 논문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에도 언제나 현실적이고 따뜻한 답을 내주었다. 연구실을 떠난 후에도 그녀는 변함없었다. 갈등 속에서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내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녀는 늘 합리적인 길을 짚어주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그녀의 고향 풍경이 그려지곤 했다. 그녀의 고향은 인도 안에서도 꽤 보수적인 곳이라, 여자가 모르는 남자와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했고, 인도에서 학사를 마치고, 독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쳐 지금은 독일에서 영주권을 취득해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인연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포닥 시절, 잠시 인도인 리더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무척 친절했지만, 1년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금요일 오후 다섯 시, 사람들이 퇴근을 준비하던 순간 그는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까지 그의 학회 발표 자료 중 일부를 준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점점 보람도 없고 시간만 낭비되는 일이라 정말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과거 미국의 한 대형 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연구원이었지만, 여러 이유로 독일에 와 교수라는 꿈을 좇고 있었다. 두 자녀와 부인까지 데리고, 안정적인 삶을 내려놓은 채였다. 그렇게 독일에서 계약직 연구교수로 시작한 그의 커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운 압박에 짓눌렸던 것 같다. 정규직 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을까. 그는 점점 더 포악해졌고, 자신이 맡지 않은 학생들의 연구에까지 간섭했다. 결국 여러 제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나 역시 그 연구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인연은 옆집에 살던 인도 출신 박사과정 커플이다.
그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인도식 파티 문화’를 접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인도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그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는 신발이 빼곡히 놓였고, 음악과 웃음소리는 새벽까지 흘러나왔다.


내가 살던 건물은 번화가 한가운데라 주말이면 늘 거리가 환하고 시끌벅적했다. 다행히 건물 방음이 좋아 큰 불편은 없었지만, 독일의 Ruhezeit(밤 10시 이후는 조용히 지내야 하는 시간) 규정을 떠올리면 믿기 힘든 풍경이었다. 1년쯤 지나자 그 빈도는 점점 줄었고, 결국 아랫집의 불만이 누적되어 파티는 완전히 멈추게 되었다.


나중에 다른 인도 출신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인도에 살던 시절, 그는 새벽 1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주중에도 파티가 흔했고, 늦은 밤 귀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옆집 커플의 풍경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들에겐 일상 같은 문화였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작은 쿠키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은 늘 새로운 만남을 꿈꾸게 했다. ‘독일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도 저절로 생겼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이곳에서 내가 친구라 부를 수 있었던 이들은, 기숙사나 연구실에서 만난 외국인 동료들이거나, 같은 국적의 작은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나와 같은 연구실에서 일했던 독일인 동료들을 떠올리면, 그들의 곁에는 언제나 그들의 애인과 친구,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 보면, 많은 독일인 동료들이 이미 결혼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이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나 같은 이방인과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 나는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유학생 아닌가. (물론 공통의 취미가 있거나, 같은 프로젝트를 함께할 경우, 가까워질 기회는 충분히 생긴다.)


어느 날, 영국에서 5년간 유학한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그녀는 뜻밖의 말을 건넸다.

“영국에서는 영국 친구 만드는 거 어려워.”


... 세상 참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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