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d Oct 23. 2021

"태산이 높다 하되..."

어린이집

 “태산이 높다 하되...”


 이 씨 가문에 천재가 태어났다. 구영민 씨와 이수일 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이주현, 이 씨 가문을 드높일 것이다.


 아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바보에 가깝다. 우리 아빠는 바보가 된 딸을 보고 항상 ‘그 시절’을 회상한다. 때는 5살, 나는 온 가족 앞에서 조선시대 양반집 딸처럼 시조를 읊조리는 유치원생이었다. 정확히는 어린이집생이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집생이냐 유치원생이냐가 중요하다) 태산이 높다 하되 블라블라는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어린이집에서 주입식으로 외웠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시조를 외웠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먼저 어린이집 선생님의 노고가 그려진다. 아무튼 우리 아빠는 그렇게 똑똑하고 명랑했던 그때를 언급하며 말 그대로 무섭게 변해버린 딸을 안타까워한다.


 어린이집에 다녔을 때를 회상해 본다. 주공 어린이집을 다녔을 시절, 우리 엄마 아빠는 지금의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나이였다. 지금 눈이 아플 정도의 형광색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우리 아빠는 무채색 정장을 입고 다녔다. 보험회사에 다니던 시기였을 것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눈매가 쳐져서 인자해 보이는데 당시에는 팽팽한 매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머리를 잘라버린 엄마는 장발을 유지하고 있었고 무서운 색깔의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다. 엄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을 좋아했다. 우리 집 옛날 사진에 찍힌 TV 속에는 늘 현빈이 있다.


 그 당시 우리 엄마 아빠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두 남녀가  만나 부평역 지하상가에서 데이트를 하고 결국 결혼을 했고, 이제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부모님이 나와 동생을 위해서 아등바등 살던 때였다. 그래서 주공 어린이집을 다녔을 때 나는 종일반이었다. 말 그대로 종일 어린이집에 있는다. 그때 내가 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던 감정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