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구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초기 자금도 점점 떨어져 가니 이젠 일을 구할 차례였다. 한국에서는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된 브랜드 ‘이솝’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품 설명서를 빼곡하게 채운 화학성분 용어를 보니 1년이 지나도 일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이력서를 뽑아서 발로 뛰었다. 거리의 카페들에 들어가서 “Are you hiring now?”를 하루 수십 번 외쳤다. 호주판 알바천국 ‘Seek.com’에서도 지원을 많이 했다.
여느 때와 같이 골목길에 위치한 사람이 넘치는 카페 거리에서 이력서를 돌렸다. 그러다가 한 카페에서 트라이얼 기회를 잡았다. 정말 좁은 카페였는데 손님이 많았다. 다음날 검은색 옷을 입고 오라고 했다. (호주에서는 트라이얼을 할 때 올블랙으로 입고 가야 한다) 트라이얼 당일 나는 거의 울었다. 손님이 바글바글해서 정신도 없고 주방은 사람 2명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위생 상태도 너무 안 좋아서 내가 손님이었다면 경악을 했을 것 같다. 넘칠 것 같은 커피를 두 잔씩 양손에 들고 서빙을 하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주문을 받는 것도 고역이었다. 커피 종류와 옵션이 너무 다양해서 암기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사장이 우유거품 스팀을 시켰다. 한국에서 카페에서 알바를 해본 적이 있어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스팀기가 이상했다. 한국에서 사용했던 버튼식이 아닌 돌려서 잠그고 열어야 하는 레버형이었다. 처음 사용해 본 기계에 나는 그만 손을 데어버렸다. 손이 너무 아프고 화상이 심해 보여서 깜짝 놀랐다. 사장은 계속 일하라고 했다. 나는 그만 집에 가고 싶다고 선언했다.
카페에 나오고 나서 후회했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이렇게 빨리 포기하냐..’ 나의 인내심이 이렇게 얄팍하다는 것이 분했다. 한 편으로는 앞으로 그 카페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나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친한 언니들도 조언을 해줬다. 처음부터 좋은 곳에서 일하려고 해야 다음에 일할 곳을 구할 때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 즉 시간이 걸리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좋은 곳에서 일하라는 것이다. 그때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말이 정답인 것 같다.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돈이 떨어져 가서 마음도 너무 불안했다. 그러던 중 호스텔에서 친해진 한국 언니가 수학 과외를 소개해 줬다.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친구인데 수학 과외를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는데 왕복 3시간 거리가 조금 걸리긴 했다. 돈도 없는데 할까가 아니라 해야 됐다. 그렇게 과외를 하면서 구직활동을 했다. 락다운이 풀린 지 얼마 안 돼서 노동인력이 많이 부족했는지 제안은 많이 왔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큰 기업에서 많이 연락이 와서 트레이닝 기간과 면접이 조금 많았다. 돈은 못 벌고 에너지만 쓰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멜버른에서 유명한 박물관 안의 가든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왔다.
아름다운 레스토랑 안에서 일하는 건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었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정말 포멀한 느낌이었다. 정식 트레이닝도 시킨다고 했다. 포멀한 면접은 처음이라 떨어서 대답도 잘 못했다. “What do you think about customer service?”라는 질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고객 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인데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국말로 ‘어떻게’는 ‘how’니까 “How do you think about customer service?”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줄 알았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다니..) 어찌저찌 대답은 했다. 며칠 뒤 합격 연락을 받아 놀랐다. 하지만 이후 트레이닝을 해야 해서 일은 한 달 뒤에 시작할 수 있었다. 고민 끝에 또 다른 제의가 온 유니클로 면접을 보기로 했다.
대기업은 대기업이었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내 인생에서 가본 건물 중 제일 높았다. 멜버른 시내에서 잘 보이는 건물이었다. 일본어과를 졸업한 만큼 일본 기업은 자신이 있었다. 일본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있었고 유니클로는 친숙했다. 면접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해갔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빗나가게 토론 과정이 있었다. 개인 인터뷰 뒤에 지원자끼리 팀을 나눠 토론을 하게 했다. 나의 뇌는 갑자기 정지했다. 그냥 영어로 말하기도 힘든데 토론은 다른 단계였다. 여러 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의견을 묻는 형식이었다. 지원자의 적극성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너도 나도 한 마디 더 의견을 말하려고 했다. 거의 전쟁터였다. 나는 소심하지만 최대한 나를 어필했다. 한국에서 유니클로를 많이 이용했던 것, 일본어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말했다. 기가 빨리는 2시간이었다.
아무 기대도 없었는데 합격 문자가 왔다. 드디어 백수 탈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