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 생활
-취미가 뭔가요?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데요. 선생님은요?
-저는 골프와 배드민턴을 쳐요.
-아, 생각해 보니 저는 가끔 메일 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메일이요?
-네
-요즘에도 메일을 쓰는 사람이 있나요?
-메일로 가끔 질문을 해요. 저는 질문이 좋아요. 답변이 재밌거든요. 정확한 답이 아니라고 해도 재밌는 답변을 받을 때가 있어요.
나는 가장 최근에 보낸 메일 이야기를 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안녕, 이라는 단어가 이상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안녕이 무슨 뜻이냐 물어서 누군가가 peace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한국인은 평화를 바랍니다. 이렇게 인사하냐고. 그건 스타워즈의 요다나 할 수 있는 인사라고 하면서 신기해했대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갑자기 한글이 궁금해지는 거예요. 세종 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자음의 기본자를 다섯 개 정했어요. ㄱㄴㅁㅅㅇ. 다른 건 다 소리가 있는데 'ㅇ'은 소리가 없잖아요. 물론 소리가 있을 때도 있는데 '아버지'할 때 'ㅇ'은 소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소리가 있는 이응은 옛이응, 이라고 따로 있었거든요. 그래서 간만에 메일을 보내게 되었어요. 다른 네 개와 달리 소리가 없는 'ㅇ'이 왜 기본자가 되었나 하고요. 답이 왔는데 'ㅇ'이 소리가 있었다는 걸로 보는 게 합리적이래요. 모래를 예전에는 '몰애'라고 했거든요. '몰애'를 '모래'라고 적지 않은 것은 'ㅇ'에 소리가 있어서 이어적기 하지 못했던 거래요. 지금은 이어적기가 되었지만.
그러다 알게 된 게 있는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나서 왜 기본자를 28개로 정했는지 아세요? 다른 글자들이 더 있는데도. 28개보다 더 많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할까 봐서였대요.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일종의 미끼였던 거죠. 그리고 그 당시 하늘의 별자리가 28개였대요. 세종대왕은 장난스러운 낭만주의자였어요.
그리고 생각나는 메일이 있는데 그건 이스탄불에 있는 토카프 궁전에 다녀온 다음 보낸 거였어요. 고려 시대에 안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리로 발령이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청도에 가서 장사꾼의 사위가 되었는데 어느 날 쿠빌라이칸의 여섯째 아들인가 되는 이아치가 귀양을 온 거예요. 아버지의 신하를 다치게 한 일로 해서. 거기서 지내다 안현의 아내를 뺏어서 몽골로 돌아갔는데 안현은 아내를 찾으러 가요. 그리고 기록에서 사라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터키에서 한국으로 연락이 온 거예요. 토카프 궁전에 궁중 도서관이 있는데 여기에서 책이 한 권 발견되었는데 반쯤은 찢어져 있고 남아 있는 부분에 고려인 안 서기,라고 적혀 있다. 너희 나라 이야기가 같은데 확인해 볼 생각이 없냐. 뭐 그렇게요. 가서 확인해 보니 역사에서 사라진 안현의 후일담 같은 거예요. 안서기라는 사람이 아내를 찾으러 몽골에 갔다가 마침내 아내를 만나게 되어서 아내에게 함께 고향에 돌아가자고 했는데, 아내가 거절했다는 이야기였어요. 아내는 이아치에게 버림받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둘이나 낳은 상태였죠. 돌아가지 않으려는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고.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안서기는 채련기라는 작품을 남겼어요. 아무튼 이십 대 때 읽었던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비행기를 탔어요. 그리고 돌아와 그 이야기를 내게 알게 한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 거였죠.
1. 당신의 글에 따르면 '안서기'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라시드 교수가 이 이야기를 발견하기 전 한 필사자가 먼저 바그다드를 여행하다가 니자미야 대학 서고에서 파스파 문자로 쓰인 책을 발견했다.
그는 그중에서 알라신의 영성을 깨달을 수 있는 6편의 이야기를 아랍어로 번역했고 그 마지막 이야기가 안현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알라신의 영성을 깨닫게 하는 소설인가?
2. '안 서기'의 이야기가 톱카프 궁전의 궁정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은 사실인가, 상상인가?
3. 그런 일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도서관인가? (실제 톱카프 궁전을 방문한 결과 여러 곳의 개인 도서관이 있었다.)
얼마 후 답을 받았어요. 짧고 명료했습니다.
1. 이슬람교는 알라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순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안현이 느낀 인간적인 감정의 절박함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율에 의해 좌절되는 이야기가 알라의 영성을 깨닫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 모두 상상입니다. ^^
3. 2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떠난 거였죠. 하지만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재밌었어요. 제게는 여행을 가야 할 이유가 필요하기도 했으니까요. 신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는 말이 떠오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