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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츠브로 Oct 05. 2023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도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에 리듬감이 느껴지고 잘 외워진다. 아마도 시인이 시를 외워서 썼기 때문이 아닐까. 


류시화 시인은 대개의 시인들처럼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과 시름하기보다 시가 다 써질 때까지 산책을 하는 편이다. 시의 첫 구절이 떠오르면 그다음 구절이 떠오를 때까지 첫 구절을 외면서 다닌다. 다음 구절이 떠오르면 그 구절도 외워버리고. 그렇게 한 줄씩 떠올려서 다 외워지고 나면 그제야 책상에 앉아 시를 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시가 한 번에 완성되는 느낌이다. 저 사람은 앉으면 시를 쓰는구나 천재구나 이렇게 오해할 수 있는데 류시화 시인은 시가 마음속에서 완전히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인이다. 계속 응얼거리면서 외우면서 다니다 보니까 시에 자연스러운 리듬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류시화 시인은 등단하면서부터 시다운 쉬운 시, 쓰기를 주장했다. 이 분이 가담한 시운동이라는 동인이 그런 모토를 달고 시 쓰기를 했다. 나는 이 분의 시다운 쉬운 시, 쓰기라는 말을 좋아한다. 시도 언어라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의 어떤 시들은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의미나 맥락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렵다. 읽어도 읽어도 어려운 시들이 많다 보니 나도 가끔은 시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이분은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시들은 쉽다. 그리고 시답다. 그래서 독자들이 많은 것 아닐까. 그러나 젊은 날 이 분과 문단이라고 할까 시를 읽고 쓰는 사람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 어떤 작가들은 류시화가 문단의 외계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화가 한창이던 시대라서 많은 시인들은 작가들의 현실 참여를 요구했고 류시화 시인은 그런 시대적 분위기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칭하는 시인들을 향해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전쟁 중에서도 연애 시를 쓸 수 없다면 시인이 아니다. 


이후 그는 인도와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책들을 우리에게 가져왔는데 한결같이 쉽고 감동적인 책이었다. 그가 쓴 시나, 번역한 시들은 한결같이 시다우면서도 쉬운 시였다. 그때 그를 비난했던 시인들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은데 그는 여전히 시인으로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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