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이 시는 프랑스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1등을 한 작품이다. 류시화 시인은 이 시를 번역하여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직접 프랑스에 갈 수가 없어서 그곳에 사는 화가 친구에게 부탁을 해 저작권 허락을 구해달라고 했다. 친구는 작가의 집을 찾아갔다
시인의 친구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작가는 거절했다.
"이유가 뭐죠?"
"이 시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 이 시는 완성된 것 같은데 어디가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까?"
작가는 '너무도'라는 단어를 가리켰다
"제가 그때 느꼈던 외로움은 이 단어로 다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였습니다."
'너무도'보다 훨씬 더 강조할 수 있는 단어를 작가는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는 외로움에 대한 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나온다
'당신의 부재가 외로움의 이유라면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외로움을 설명할 길이 없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나는 자기를 셀 수 없을 때 생기는 감정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한다. 택시 기사들은 손님이 없을 때 빈차라는 표시 등을 달고 다닌다. 택시 기사는 손님이 없으면 외로워진다. 그런데 진짜 그 차는 빈차인가. 친구를 초대할 때도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에 아무도 없어. 놀러 올래? 우리 집에 정말 아무도 없을까. 내가 있지 않나.
외로움은 자기를 세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긴다. 사막을 걷는 화자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자 뒤로 걷기 시작한다. 그제야 사막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막에 아무도 없어가 아니라 이 사막엔 그래도 내가 있지, 하는 발견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셀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