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주절주절 견해
내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어디부터인지 모르겠다. 여러 해를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나만의 인생 규칙이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잘 살았다', '열심히 살았다'하고 흐뭇하게 돌아볼 수 있도록 살 것.
인생은 우연과 기회의 연속, 어디서 어떤 기회가 올 지 모르니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
결국 저 말들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라는 뜻으로 귀결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들을 굳이 묶어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언젠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구심 아닌 의구심이 들었던 적이 있다.
남들은 후회하는 선택이 있던데, 왜 나는 떠오르는 게 없을까? 내가 합리화를 하는 것인가? 하고,
내 삶에 항상 후회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한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간혹 사람들은 그때의 내가 이런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쯤 이만큼 성공해서 이런 길을 가고 있겠지? 왜 그랬을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염세주의자는 아니지만, 그 선택을 한 상상 속의 내가 실제로 그 선택을 한 현실의 내가 같을 수 있을까?
본인이 바라는 어떠한 현상에 본인의 과거를 대입한다면, 후회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후회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후회는 없지만 번뇌와 고뇌는 항상 따라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두 단어의 의미를 말하고자 한다.
후회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자책하는 것, 번뇌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생각을 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의 시작이, 그 끝에 다다르면 명확히 다른 결말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때의 내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그 선택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 선택 덕분에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있었고,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번뇌가 깊은 삶이라는 것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경험을 토대로 나를 다듬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다른 선택을 한 나 자신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의 내가 내 선택에 대한 최선의 결과임을 받아들이고 경험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뒤가 아닌 앞을 바라보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말 그 선택이 최선일 수 있도록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야겠지.
그러면 또 '현실에 충실한 삶',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겠다.
글의 도입부에 적은 나의 인생 규칙은 곧, 번뇌를 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세워졌던 것이다.
사실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열심히'의 기준은 무엇인가? 너무나 주관적이기에 정의하기가 어렵지 않나.
인터넷에서 파도타기를 하다 보면, 으레 그렇듯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 열심히 사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 앞에 강연을 펼치고, 콘텐츠로 승화하여 유튜브를 통해 전파를 한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도 많다.
대게 내가 이만큼 고통스러운 삶에서 이만큼 노력해서 이만큼 성공했다.
겨우 내가, 이렇게나 성공했으니 본인들도 가능하다.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한다.
라는 시나리오로 이어지곤 하는데, 사실 나도 내 삶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때 비슷한 맥락으로 말하긴 한다.
'그때 제가 이만큼의 노력을 하긴 했는데, 처음엔 00였던 저였다. 그런 제가 해냈으니 당신들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4~5년 전쯤이었나, 그때는 YOLO족이 대세였다. 지금 현재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삶이 최고다. 돈도 펑펑 쓰고, 여행도 막 다니고, 치열한 삶은 잠시 뒤로하는..
근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파이어족이 대세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젊을 때 열심히 불태우고 성공해서, 조기 은퇴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자.
그래서일까 열심히 사는 삶을 모두가 갈망한다. 하지만 단점도 있겠지, 남과 비교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이 한 노력을 기준으로 내 인생에서의 노력 기준을 세워 자책을 하고 성취감 또한 얻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믿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는 후회와 더불어서 누군가를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이것도 내 정신을 위한 합리화인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를 부러워한 경험이 생겼기 때문이다.
집에 돈이 많고, 유학을 갔다 오고, 외국어를 제 나라 언어인 듯 구사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 잔뜩 받고 웃음꽃 가득하게 자란다던지 20살이 되자마자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사업을 물려받고..
이런 것들을 단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사실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데, 그건 그냥 그런 것일 뿐이다.
집에 돈이 많으면 그냥 많은 거고, 유학을 갔다 왔으면 어 갔다 왔구나, 외국어를 잘하면 오 잘하는구나,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면 아 좋은 사람이구나
그 상황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부러울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 사람은 그냥 주어진 자기 환경에서 본인의 삶을 사는 것뿐인데 그걸 왜 내 삶과 비교해서 저울질을 하는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일뿐이다.
간혹 부러움을 느끼는 대상에 본인을 투영하며, 그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부정하거나 노력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본인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곤 한다.
그 어떤 사람도 삶을 편하게 살진 않는다.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누구나 각기 다른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열심히 사는 삶', 그것은 개개인의 삶, 생활 습관, 삶의 목표, 방향 등 무수히 많은 조건들로 하여금 세울 수 있는 오롯이 개인만을 위한 기준인 것이기에 남이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런 배경만을 떠올리며,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대한 실례인 것이다.
근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누군가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그건 채 얼마 지나지 않은 경험이다.
번아웃이 심히 왔던 그 어느 날 문득, 동료를 보며 내 삶을 비교했던 적이 있다.
항상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꽉 찼던 나였기에 그런 상황이 상당히 나 자신한테 실망스러웠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난데, 내가 지금 왜 비교를 하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 데에 반해 그 동료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내 정신과 육체가 모두 지쳤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나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에 여유가 없으니 내가 작아 보이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얼마나 비열한 생각인가. 번아웃을 받아들이고 고뇌하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삶', '후회하지 않는 삶', '노력' 이 3가지 단어가 모두 잘 어우러진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내 생각이 어떤 지 들어보고, 떠올려보고,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본인을 보려고 노력하면서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나를 위해 조금은 주관적으로 생각하며 잘해왔다고 말도 전해주고 그래야 나를 파악하고,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고로, 후회하지 않는 삶과 열심히 사는 삶은 나 자신을 파악해나가며, 컨트롤할 수 있는 상태에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가 있다.
- 2021.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