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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안 Sep 02. 2022

편의점 아주머니의 마지막 날

조용한 단골이지만, 내적 친목은 자신 있습니다.

날 좋은 5월 말


청계천 윤슬이 너무나도 찬란했던 날, 그날의 나는 그것과 상반되게 신경 쓸 것이 많아 상당히 지쳐있었다.


날도 좋은데 청계천 한 바퀴 돌며 맥주 한 캔씩 하자며

회사 사람과 회사 앞 편의점에 들렀다.


항상 담배를 사러 들르는 곳.

항상 3,900원짜리 단백질 음료를 사기 위해 점심에 들르는 곳.


그곳의 계산대엔 항상 짧은 머리의 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으레 그렇듯 문을 열면 출입문 상단에 달려있는 종이 경쾌하게 울렸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들고, 적당히 시큼하고 구수한 라면 냄새 그리고 튀김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었다.


카운터에 아주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는 가만히 잠자코 몇 분이고 기다렸다.

그럴 땐 항상 안에서 점심을 드시고 계셨던 것 같아서

뭐 급할 것도 없으니까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동료와 조잘거리며 편의점에 들어서서

맥주는 호가든이 짱이라니 호가든 로제가 근데 더 맛있다니 뭐니 하며 실없는 얘기를 하며 카운터에 다가갔다.


계산이 끝나고 평소와 다르게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말을 붙이셨다.

이제 본인이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면서 이 편의점이 다른 걸로 바뀌고 본인도 그래서 내일 오전까지만 일한다 작지만 사탕이라도 드리고 싶다고


그 짧은 말에 나는 너무 헉했다.


나 : "아이고 완전 가시는 건가요? 내일 오전에 한 번 더 올게요 감사합니다"


출입문을 밀고 나와 츄파춥스를 만지작거렸다.

츄파츕스는 그 하루 내 마음을 종일 뭉근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나는 굳이 사러 가지 않아도 되는 닭가슴살을 사러 편의점에 다시 들렀다.


레몬 사탕 팩을 집어 들고 닭가슴살과 함께 계산하며,

아주머니께 츄파춥스 감사했다 말씀드리며, 머쓱하게 레몬 사탕을 아주머니 쪽으로 밀었다.


아주머니는 본인은 작은 사탕 하나인데 이렇게 주면 고마워서 어떡하냐며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아니에요 ㅎㅎ 안녕히 계세요" 하며 편의점을 나왔다.


저 인삿말은 사실,

'오랫동안 뵀는데 너무 아쉬워요. 츄파춥스 너무 감동받았어요. 이제 못 본다니 정말 너무 아쉬워요. 다른 데로 가시나요? 어디로 가면 뵐 수 있어요?'라는 뜻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 참 표현하는 것도 무뚝뚝하고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인데 항상 목구멍에 막혀 나오지 않는 진심들이 내겐 너무 많다.


생각해보면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뵀던 분이라 적어도 1년 반은 넘게 뵀었고,

전자 담배 기기를 들고 카운터로 가면 바로 내 전용 권렬 형 담배를 꺼내 주셨고,

라이터를 들고 카운터로 가면 내 전용 연초를 꺼내 주셨다.


블랙페퍼 맛 닭가슴살이 다 팔려서 오늘 내 점심은 100점짜리가 될 수 없다며 동료를 붙잡고 중얼거리던 나를 보고 다음 날 블랙페퍼 맛 많이 시켜놨다고 말씀해주셨고,


매대에 티 나지 않게 숨겨놓은 포켓몬 빵을 찾아 가져온 것을 보곤

어떻게 찾았냐며 칭찬을 했던 날도 있었다.



사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손님 한 명이었을 텐데

썩 살가운 성격의 손님이 아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하고 마지막 인사를 해주어서 참 감사했다.

이것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머니의 츄파춥스가 뭉근하게 종일 내 맘에 머물렀던 이유였다.

참 아직은 너무나도 살만한 세상이다.




2년 넘게 다니던 전 회사에서 퇴사하기 전, 매일 가던 작은 카페가 있었다.


사장님이 항상 서비스를 주시곤 했는데,

처음엔 그게 부담스럽다가도 서비스를 받았으니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고

계속 단골로 지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내 얼굴이 보이기라도 하면 가을 겨울엔 포스기에 바닐라 라테를 입력하고 스팀기를 작동시켰고,

여름엔 큰 테이크아웃 컵에 체리와 레몬을 담아 에이드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신메뉴가 나오면 항상 동료들이랑 먹으라며 서비스를 주셔서 맛있게 먹었었고

그 바람에 신메뉴가 입맛에 맞지 않았더라도 일단 일주일은 그 메뉴를 시켜 마셨었던 기억이 난다.


퇴사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종종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당시에도 꼭 들러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사장님이 아프셔서 얼굴을 꽤나 못 뵀던 기간이 있었다.


언젠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은 분이다.

사실 덕분에 그때 다이어트가 좀 힘들었어요 사장님.


단골집 사장님들이 관심을 많이 주는 게 부담스러워서 못 가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자본주의 사회의 영향인지 나는 어째 호의를 받으면 호의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단골로 정착하게 되는 듯하다.


엄청난 개인주의자 주제에 일상에 은근히 스며들어있는 사람들과 헤어질 땐 항상 아쉽다.

이럴 땐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내 하루가 유지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앞으로도 더 아름다운 인류애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유는 뭐

그럼 기분이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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