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년 회고록

한 해를 정리하며

by 정하안

2024년 12월 말 작성



벌써 연말이라니

연말 회고가 왜 이렇게 낯선가 했더니, 연말 회고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기억하는 모든 연말에는 항상 해결되지 않은 고민과 목표가 남아 있었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면 참 좋을 텐데, 나의 경우 생각 정리가 끝나야만 글이 써지기 시작한다.

이게 그동안 연말 회고를 작성하지 않았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겨울은 좋아하지만, 연말은 항상 달갑지 않았다.

나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아 있는데, 아직 문 닫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연말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에 의해 강제 종료를 당하는 기분이랄까.


근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1. 기억에 남는 올해의 사진


1) 테헤란로의 가을

2) 디스크 터져도 앱 심사는 올린다

3) 추구미 : 위플래시

4) 바퀴벌레 대소동



2. 올해의 영화

좋게 기억되는 영화는 꽤나 많았다. 그래도 유난히 떠오르는 영화가 몇 개 있어 적어 본다.


디태치먼트 - 교권이 바닥친 사회에서 미성숙한 부모와 학생을 상대해야 하는 기간제 교사의 이야기

더웨일 - 아버지이자 남편이었고, 남자친구이자 교수이기도 했던, 죽음을 일주일 앞둔 276kg 남자의 이야기


뭔가를 볼 때 워낙 몰입도가 높은 편이라 사실 어둡거나 슬픈 책이나 영화를 딱히 선호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운으로 기억에 남고 한 번 더 반추하게 되는 것들은 그런 종류이다 보니 결국 계속 찾게 되는 것 아닐까


하긴 어릴 때도 굳이 '새드엔딩 인소'를 검색해 찾은 인터넷 소설만 주구장창 읽으며 매번 예견된 슬픔을 청승맞게 받아냈다.


학생 때 보고 기억하던 디태치먼트는 내용이 철학적이고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영화정도였다.

다시 본 영화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심장이 눌린 듯 답답하고 뜯어진 기분을 생생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더웨일은 인간의 입체성에 대해 솔직히 표현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사이비 선교사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의 감정선이 모두 이해가 되는 바람에 보는 내내 애처로웠고 마지막엔 거의 오열을 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의 입체/양면성 같은 것들을 잘 표현했다는 것이다.

내가 인간의 모순이나 방어기제를 잘 표현해낸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 듯 하다.



3. 올해의 이모저모

바쁜 건 악에 가깝다는 말이 있다.


여유가 없으면 이타심을 갖고 살기 힘들다는 것인데, 나 또한 공감하는 말이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인 상황에 대체 누가 무엇을 들여다보며 사유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는 마음이 바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물리적인 시간을 조절할 것 같진 않으니, 마음만은 한량이다 하며 살았다.

한 70% 정도는 성공한 듯싶다.


그 덕에 올해는 꽃이 피고 지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해가 좋고, 바람이 불어 선선하거나, 쌀쌀하고 춥다든지 하는 계절의 변화가 유독 눈에 잘 들어왔다.

눈을 그저 ‘얼어있는 비’라고 표현한다든지, 꽃이 졌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꽃이 핀 줄 알았다든지 하는 일 따위는 이제 일어나지않았다.


그래서 자주 기분이 좋았고, 상쾌했다.

실패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일을 하다가 또는 퇴근을 할 때 문득문득 마음 속에 파란이 일곤 했다.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는 데 많이 능숙해졌다 생각했었다.

과도기이겠거니 했지만 역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예전에는 이럴 때 생각을 비우고 몸을 혹사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부정을 지속하다 큰 코를 다친 적이 여럿 있었다.

이번엔 다행히 그런 경험들 덕에 일찍이 나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부리나케 그 주 주말에 제주도로 떠났고, 관광객이 찾지 않는 시골로 들어가 종일 숙소에서 책 읽고 글만 쓰다 마지막 날 러닝도 하고 맛난 귤을 사 와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제 문제를 조기 발견 할 수 있다니, 이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장점이구나


고민

올해는 넓은 범위에 걸쳐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유난히 생각이 많았던 이유에는 사실 나의 노림수가 있었다.


방어기제 하나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인지하고 있는 안 좋은 방어기제는 느리더라도 하나씩 없애기 위해 의식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당장 해결책이 없는 문제에 대해선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텐데 올해는 그냥 온전히 다 받아들였다.

이게 나의 회피성 방어기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리어

사회초년생 땐, 내가 얼른 경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아서 n연차가 되면 그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노련한 경력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건 자연스럽게 되는 게 아니었다. 모두 내가 직접 행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누군가 경력을 물어볼 땐 괜스레 “n연차지만 만으로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비겁한 변명이 자꾸 목구멍에 맴돈다.


헬스 하는 사람들한테 운동 한지 얼마나 됐냐 물으면 “시작한 건 n 년 전인데…. 제대로 한 건 n-x 년 정도”라는 밑밥 잔뜩 담은 답을 하는 게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경력이 늘어날수록 불안함이 조금씩 따라붙는다.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지 마세요, 비교는 과거의 자신과 하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또한 심신미약이다 싶으면 마지막 대안으로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발전한 점을 찾아 합리화를 하곤 하니까


그럼에도 내겐 저 말이 낙천주의적인 말로 느껴진다.

자본/능력주의 사회에 시장 가치를 갖기 위해선 메타인지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메타인지를 높이려면 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판단 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판단을 하려면 당연히 비교군이 필요한 거 아닌가싶다.


그 비교군이 '과거의 나'라면 그게 과연 올바른 메타인지인가 의문도 든다.


적당한 비교는 동기 부여의 동력 또는 기준 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선을 넘어가면 시기어린 좀생이가 될 수도, 아니면 자존감이 바닥을 칠 수도, 또 아니면 뒤쳐지거나 도태될 수도 있다.


버틸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수준의 비교를 할 수 있도록 주의하고 경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사실 나는 근자감으로 인생을 살아나간다.

일단 자신감을 갖고 근거는 그때부터 만들면 된다라는 일념하에 사는데, 그래서 그런지 결국 내가 잘될 것 같긴 한데 그게 어떤 모습일지는 잘 모르겠다.


직감으로 선택하는 것들이 더러 있다 보니 어떤 선택들이 모여 내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어차피 나중 얘기니까 구태여 겸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솔직히 썼다.


사실 이상적으로 그려놓은 개발자로써의 모습이 멀티버스 세계관 마냥 이미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상이 목표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한 이정표는 현실적이어야 하기에 조금은 비판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 해야 하는 것, 부족한 것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첫눈

곧 다음날 올해 첫눈이 내릴 것이라는 소식이 있던 날.

팀원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첫눈 이야기를 나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퇴근 하던 길이었다.

갑자기 몸이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을 느꼈고, 반사적으로 택시 기사님을 바라보았다.


기사님은 눈을 감고 계셨다. 졸음 운전임을 직감했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며 방향이 바뀌었고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 버스의 헤드라이트 빛이 정면 시야로 가득 들어왔다.


그대로 택시가 납작해져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사고가 나면 그 찰나에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던데, 나중에 이 순간이 그때였던 것 같다는 말을 했더니, 무엇이 스쳐 지나갔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어떤 장면들이 막 떠오르진 않았다.


그냥 ‘엇… 이대로 죽나..’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끄러진 택시가 중앙선을 전부 넘어가기 전, 택시가 중앙봉을 박고 반바퀴 회전 한 덕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찰나에 바이킹 마냥 온몸이 붕 뜬 채 앞으로 날아가는 걸 느꼈다.

조수석을 겨우 잡아 지렛대 마냥 팔로 몸을 시트에 밀착 시킨 덕에 몸이 날아가진 않았다.

기사님도 놀라신 건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택시는 고요했다.


그리고 바로 생각했다.

내가 내일 첫눈을 볼 수 있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구나

절대 내가 이정도로 낭만파는 아닌데 그땐 정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은 내릴 때가 되어서야 나의 안녕을 물었고 나는 괜찮다 웃어 내보이며 하차를 했다.


살아있으니 된 일 이었다.

집에 돌아와 읽던 책을 마저 읽는데 제목이 뒤늦게 눈에 확 들어왔다.

제목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었다.



얼마 전, 100세 할아버지의 인생 조언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Do what you want to do however you can

당연히 알고 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던 말이, 이 이후엔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사고 이후에 뭐가 크게 바뀌진 않았다.


버스의 헤드라이트 빛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을 때,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인생에 있어 돌아가고 싶은 때가 내겐 아직 없다.


아쉬운 건 방치하지 않고 계속 고치며 살았다. 결과와 별개로 늘 노력은 했다.

후회 없이 그냥 잘 살다 가는구나 생각했다. 물론 '아직' 없을 뿐이다.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내 의지와 무관하게 떠내 보내야 하는 때가 오면 아마 크게 달라질 수도 있겠다.


꼭 사고 때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좀 더 유치하게 살고 있다.

각 잡히고 시니컬한 것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곰살궂은 게 더 좋다.

그런 모습이 멋은 좀 없어 보일 수 있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으니


근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멋이 덜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요새 문득 가까운 친구, 지인들을 보며 느낀다.

뭐가 그리 어렵고, 뭐가 그리 부끄러운 거라고, 애정 어린 표현에 그리 인색했던 건지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에 진심이 담겨 있으면 된다는 자기 합리화로, 마치 그런 것이 더 진정성 있는 것인냥 귀하게 취급했다.


내 칭찬이나 표현은 흔치 않으니, 그러니 내 말은 남들에 비해 진심과 마음이 훨씬 많이 담겨 있을 것이라며, 마음의 크기를 제멋대로 가늠해댔다. 그냥 그런 우둔한 생각을 했었다.


표현에 인색 했던 이유도 굉장히 많은 것을 고려한 나름의 선이자 예의이며 배려였다.

어떠한 계기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깨달은 게 조금 있었다.

표현이 잦아졌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때보다 그 말에 담긴 내 마음이나 진정성이 결코 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응축되어 있지 않아 더 구체적이었고, 그런 순간들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분명 무뚝뚝한 줄 알았던 가까운 지인들이, 이제는 내게 낯간지러운 말도 잘 해내는 모습을 가끔 본다.

처음엔 "뭐야;;" 라던가 민망함에 애써 무시하며 그냥 대충 웃어 넘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함께 말랑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


어차피 짧은 인생,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아쉬움 없이 살아내고 싶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는 말이 있다.

일상에 행복 압정을 깔아놔야 한다고


그런 의미로 나름대로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잘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색깔

올해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어찌 보면 모두 친숙하거나 낯익은 감정들이었다.

기가 막히게 새로운 감정이나 경험은 없었다.


그래도 그런 것들에 무뎌지지 않고,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잘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익숙해 무뎌졌던 감정들도 노력으로 다시금 말랑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자주 안도 했고, 또 기분이 좋았다.


나이를 들어가는 것에 대한 장점이 나의 고유 색깔이 진해 지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색이 짙어지는 게 과연 장점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장단점이든 관점만 바꾸면 서로 소속이 뒤바뀐다.

고루하게 살고 싶지 않은 내 인생관에선 그것이 단점에 가깝다.


취향

워낙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보니, 나의 색이 짙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에너지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며 자꾸만 마음이 편하고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나를 자주 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살아가면서 내게 변화를 가져다준 새로운 영향들은 대부분 귀찮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꺼려했던 것을 한 번 더 시도했을 때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부정의 영역을 떠올리면 마치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 줄 미지의 영역을 방치하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 마저 들었다.


그래서 꾸준히 옛 기억을 다시 좋은 경험으로 덮어 쓰며 대부분을 그냥 '굳이' 찾지 않는 수준 또는 좋아하는 수준까지 올려 놓으려고 하는 편이다.

올해엔 그 기피의 영역에서 무사히 두 개를 건져 올려내는 데에 성공했다.



가치관

올해 초, 우연히 한 유튜버의 영상을 봤다.

본인이 직장 생활을 하며 매번 듣던 말이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냐' 였다 했다.

유튜버는 개인적인 인생의 가치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있지 않았기에 항상 에너지를 조절해 왔다 말했다.

사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나와는 상반된 가치관이었고, 더 잘할 수 있는 걸 아는데 왜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변인들에게 이 유튜버의 이야기를 하니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아뿔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야가 필요하다는 걸 강하게 인지했다.

나의 가치관과 주관이 여러 부분에 있어 너무 명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색이 짙지 않고 연했으면, 화려하지 않고 소박했으면 한다.

내 신념들에 큰 혼란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구도자처럼 계속 무엇인가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올해 밀리의 서재 연말결산 데이터를 봤는데, 내가 75권을 읽었다고 하더라

종이책도 꽤 읽었던 것 같은데, 일을 시작한 뒤로 이렇게 책을 많이 읽었던 적이 있었나

원하던 대로 가득 혼란했구나 싶었다.


아무튼 덕분에 꽤나 효과를 보았다.

위의 이유들로 인해,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가득 들고 정처 없는 산책을 자주 했고, 또 자주 밤잠을 설쳤다.

다행히 그런 고민과 생각들에 기우는 없었고, 이따금씩 몰려오는 어두움은 반나절을 채 머물지 않았다.


잔류된 고민들이 산더미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무겁거나, 머리가 아프다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었다. 신념 간 모순을 찾고 역전 시키고 때로는 옅게 또 짙게 색을 입히며 단단했던 확신과 멀어지는 기분을 느낄 때면 이따금씩 기분이 좋았다.


그런 것들을 보다 많이 담아낼 수 있게 됐음에, 또 과정을 즐겼음에

올해도 무탈히 조금은 더 성장했구나 싶어, 스스로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내년도 대체로 행복하길 바라며, 회고를 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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