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

by 정하안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주변에 존재한다.

애인이 될 수도 동료가 될 수도 내 가족 내 친구들일 수도 있다.

미숙한 어른들 사이에 끼어 등이 터지기도 하고 길지 않은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와 사랑은 같은 문장 안에서 어울릴 수가 없는 것 같다고, 내 안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있더라도 지켜낼 역량 따위 내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내 안에 꽤나 오래 또 깊게 뿌리 박혀있었다. 연애 그리고 사람에 있어서도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몰랐다.

뛰어가던 어린아이가 넘어진다고 생각해보자. 주변에 어른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는 잘 울지 않는다. 달래줄 어른이 있을 때가 되어서야 울음을 터트린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다. 결국 다 혼자 버텨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험난한 여정에 누군가가 간접적으로나마 들어온다는 게 같이 해쳐나간다는 게 내게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기댈 구석이라는 게 생겨버리면, 힘을 얻는 곳이 생겨버리기라도 하면 그게 사라졌을 때

중심을 잡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은연 중에 내가 약해질 것이 늘 두려워 항상 마음도 재단했다.

하루하루 먹고 살며 버티는 것도 힘들어 남에게 노력할 여유 따위 내겐 없었다. 그럴 바엔 관계를 정리하는 쪽이 훨씬 편했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고 나서 지금의 나는 마음을 받을 준비가 안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가 그 누구라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인연을 소중하게 다룰 수 있을 때, 내가 비로소 건강하고 단단해져서 마음껏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때가 온다면 누군가를 만나 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료와 사람에 있어서는 늘 거리를 두고 지냈다. 편하게 대할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부쩍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무안하리만치 날을 세워 밀어냈다.

이 시기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난 이런 걸 싫어한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원래’라는 말은 난 이러니 네가 맞추라는 이야기랑 다를 바 없다. 난 고칠 생각 없으니 싫으면 다가오지 말라고 선전포고를 했던 것이다.

사실 아무도 내게 기대라는 걸 하지 않았으면 했다.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겁쟁이처럼

‘알고 보니 참 괜찮더라’, ‘알고 보니 정말 다르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동시에 처음부터 약한 모습을 보였다면 분명 나중에 실망했을 것이라고, 그건 내 나약함을 뒤늦게 알았기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가하는 피로감에 자주 세상이 질렸고, 또 싫증이 났다.

냉기를 조금은 다듬어 건조한 정도로 살아가던 나날들이 쭉 이어졌다. 그땐 삶이 참 단순하고 편했다. 모두를 똑같이 대하니 내가 거절을 해도 상처받거나 실망하는 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퍼석한데, 그때는 그게 정말 나인 줄 알았다. 정이 넘치고 감수성이 넘치는 사람들을 다른 종인냥 바라보았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놓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랬다.

어느 날 새로운 동료가 들어왔다. 어딘가 깨발랄하고 유쾌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솔직하고 유능하고, 근데 또 어딘가 굉장히 시니컬한 사람이었다.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나와 딱히 접점은 안 보이는 그때는 딱 그런 정도의 일반적인 동료였다.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이 동료를 대하는 나를 보며 혼자 놀라곤 한다.

’내가 정말 순수하게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이구나 ‘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어야 좋은 관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 동료와의 관계가 내게 그렇다.

나의 약점을 콕 집어 이야기해도 불편한 거 하나 없이 어떻게 알았냐며 깔깔거리면서 맞다고 인정하는 사이. 서로 무슨 말을 해도 그걸로 멋대로 평가하고 단정 짓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정감. 자격지심, 우월감 없이 서로 솔직한 자신을 보일 수 있는 관계

각자 삶이 퍽퍽하고 고되어도 상대에게만큼은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는 관계. 서로 잘 될 것 같다고 진심으로 믿어주는 관계

퍼석한 내가 조금씩 변화해 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 그 동료가 내 곁에 있었던 게 참 복이었다 싶다.

사실 그 동료도 나 못지 않게 퍼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 낯간지러운 말도 참 잘한다.

날이 갈수록 오래간만에 만나는 인연이나 오랜 옛 지인들을 만났을 때 텃텃함 없이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무의 상태로 들어오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이 동료를 만나고 돌아올 때면 늘 편안함을 가지고 귀가한다.

참 둘 다 사람한테 마음 안 주는 사람들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나.

나의 다양한 모습을 모두 알면서도 나를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이렇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솔직하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는 걸, 그래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 동료 덕분에 알았다.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뭐든 개의치 않고 예스걸이 된다는 것도 이 동료 덕분에 알았다.

그 동료의 자신감이 떨어질 기세라도 보이면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본인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카톡을 도배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그 동료는 따뜻한 말을 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라는데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그건 그냥 억지로 무언가를 떠올리는 게 필요하지 않을 만큼 그 동료가 좋은 사람이라 가능한 것 아닐까. 왜냐하면 나는 빈말을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참 다행인 일이다. 마음을 나누고 또 주고받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는 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아닐까 하고, 그냥 그런 기대를 괜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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