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러닝과 버스
#1 차가운 흙냄새
묘하게 차가운 흙냄새가 몸을 스쳐간다. 나도 모르게 두 주먹 불끈 쥐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날씨가 갑자기 이렇게 추워져도 되는 거냐면서 혼자 어이없어 하는데 커다란 건물 전광판에 오늘의 날짜가 나왔다.
'10월 3일', 문득 생각했다. 벌써 10월이구나 수능 날 패딩을 입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9월 말 내 생일 때마다 후드집업을 입고 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하고, 기록적인 폭염이었던 작년에 반팔을 입고 다녔던 것도 괜히 떠올랐다. 아- 그럼 그냥 이 날씨가 정상인가 보군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가을이나 초겨울을 말하곤 한다. 근데 막상 그 계절을 맞이할 땐 괜히 마음이 헛헛하고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든다. 운동을 몇년이나 했건만 나의 수족냉증은 날이 쌀쌀해지면 다시 찾아온다. 추위에 잔뜩 움츠러든 나의 승모근은 늘 편두통을 부른다. 이쯤되면 수족냉증과 편두통은 나의 베스트프렌드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
20살에 일찍이 독립을 하긴 했지만, 프라이버시란 없던 그 시절에는 전화 한 통을 위해 한 겨울에도 매일 몇 시간이건 동네를 걸어다녔다.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손마저 동동 얼어 붙어 화상이라도 입은 것 마냥 빨갛게 익어버린 손을 개의치도 않으며 그렇게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남자친구들은 그렇게 나의 추위를 걱정하면서도 그 시간이 좋아 아무런 말도 못하다 막상 전화의 빈도가 줄어들면 무척이나 서운해댔다. 새삼 내게도 그정도 고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겨울을 좋아하면서도, 매년 차가운 공기를 다시금 마주할 때 상쾌함을 뒤로 불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 기억에 20살 이후의 매년 겨울은 늘 쉽지않았다. 늘 그 해의 고비와 어려움이 겨울에 몰려있었다. 과연 모든 겨울의 고비가 상대적으로 다른 계절보다 높았던 걸까 생각하면 그건 또 잘 모르겠다. 사람은 소리와 냄새로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지 않나. 차가운 공기와 나빼고 모두가 왁자지껄하게 들뜬 마음으로 맞이하는 듯한 연말의 이벤트가 내 감정을 조금 더 극대화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특히 20대 초중반에는 보일러를 빵빵하게 잘 틀지 않았다. 왜 그랬던 걸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의 겨울은 늘 추웠다. 늘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덮고 있어서 그냥 그게 정상인 줄 알았다. 자취를 시작하고 몇년 후 이사간 집에 집들이 온 친구들이 집이 냉골이라면서 경악하기 전까지는
아무튼 실제로 최근 5년 동안 내 겨울은 늘 정신 없었고, 커리어와 고용 불안으로 늘 조급함과 불안이 따라다녔다. 나는 아직 올해를 문 닫을 생각이 없는데 멋대로 365일이라는 기준으로 셧터를 내려버리는 기분에 내가 못다이룬 것들만 떠오르고, 괜히 상반기를 떠올리며 시간을 추억하기도 하면서 무색하게 지나가버린 시간에 묘한 씁쓸함을 느낀다.
어릴 때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나이에 다다르는 과정을 매년 반복하며, 일종의 합리화로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나이를 자꾸만 뒤로 늦춰 갱신하곤 한다.
연말을 한 해의 종료가 아니라 다음 해를 위한 시작이라고 진심을 다해 생각할 수 있는 때가 내게도 오길 바란다.
#2 러닝
나는 러닝을 나름 즐기는 편이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함 하나는 겸비한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달리기 전 오늘의 목표 페이스와 거리를 미리 설정해둔다. 한 번 정한 페이스는 끝날 때까지 늘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유지하지 못할 것 같으면 가끔 중간에 거리를 포기하기도 한다는 게 문제이긴 한데 아무튼 늘 구간 상관없이 동일한 페이스를 가져간다.
러닝크루는 성격상 안 맞고, 누군가와 함께 미리 계획하고 움직이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는 편이라 혼자 운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게 나홀로 러닝을 하다보면 나와 비슷한 페이스의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거리가 좀 벌어져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다리가 이어지는 곳에서 합류를 한다던지 하면 같이 달리는 기분이라 어쩐지 뭔가 고민이 생긴다.
뭐랄까 살다보면 불문율이라는 게 있지 않나.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위치 선정같은 것처럼 말이다.
지하철에 자리가 많은데 많은 자리 냅두고 내 바로 옆에 붙어 앉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건 꽤나 여러가지로 불쾌할 수 있다. 여러가지로
내가 생각했을 땐 러닝에도 그런 불문율이 있는 것 같다.
페이스가 비슷한 사람이랑 어쩌다가 나란히 같이 뛰게 되면 나는 이런 고민을 한다. '너무 바로 뒤에 있는 거 아닌가 꼬리물기 한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아는 사람도 아닌데 같이 뛰고 있는 것만 같은 모양새가 영 신경 쓰이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두 세가지 정도이다.
첫 번째, 조금 더 페이스를 올려 먼저 앞으로 간다. 두 번째, 내 페이스를 낮춘다. 세 번째, 다른 트랙으로 옮겨간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사실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때가 많다. 내가 이미 지정한 코스가 있다던지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뷰를 가진 트랙이라던지 페이스 관리 측면에서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조금 하다가 첫 번째 방법. 앞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거리가 상당히 벌어질 때 까지 그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안 그러면 또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 그렇게 앞 사람을 지나치고 나면 조금 있다가 다시금 반대로 그 분이 나를 지나칠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속으로 상대방에게 말한다. '제가 승부욕때문에 앞으로 치고 나간 건 아니었어요'
아마 대부분 상대방은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근데 그냥 뭔가 내가 본인을 마음 속 경쟁자로 두고 이기기 위해 속도를 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괜히 알아줬으면 좋겠는 그런 마음이 든다.
나는 내 갈 길 간다 마인드로 수백명이 나를 제치더라도 개의치 않고 뛰는 편인데, 그렇지 않고 누군가 본인을 지나쳐갈 때 승부욕이 생겨 열심히 달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안 뒤부터는 혼자 자꾸만 저런 변명이 하고싶어졌다.
몇 년 전에 '런데이'라는 어플로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어플을 실행하면 가이드 음성이 나오는데 어느 코스에서 그 말이 나온 적이 있다. 맞은편에서 러닝크루가 온다면 활기차게 인사를 해보라고, 서로 에너지를 얻고 그게 러닝 매너 중 하나라고
'지독한 인싸 운동이었나?' 생각하고 아마 내 기억에 그 뒤로 몇 번 정도 뛰면서 그 음성이 떠올랐던 것 같다.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 진짜 그럼 나도 해야 하는 건가 그럼 허공을 보면 안되고 크루 지나갈 때 한 번 쳐다봐줘야 하는 건가?하는 생각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몇 번 응원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어느 순간 러닝 인구가 대폭 늘어나면서 나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 것인지 그 뒤로는 전무한 경험이 되었다. 아무튼 난 지금도 좋다.
#3 고양이 버스
저녁 23시 정도, 터덜터덜 러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휴대폰 배터리는 2%정도 남아있었다. 급하게 지도를 켜 버스 정보를 찾고 1분 뒤 도착하는 버스를 위해 정류장까지 전력질주 해 겨우 잡아 탔다.
버스는 왜인지 전광판만 겨우 불이 들어온 채 깜깜한 상태로 고요한 도곡동을 내달렸다. 무언가 운치도 있고 낭만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웃집 토토로에 보면 고양이 버스가 불 다 꺼놓고 고양이 눈 전조등에만 의지해 빠르게 숲을 헤쳐나가던데, 내가 약간 그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스폰지밥에서 가장 무서웠던 에피소드를 뽑자면 메롱시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유령 버스였는지 뭔지 아무튼 기이하고 어두웠던 메롱시티 버스도 동시에 떠올랐다. 머리에 전구라고 달아야 하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