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끝이 아니다, 국보급 경험의 사회 환원이지- 퇴직공무원 사회공헌의
“아버지, 또 은행 가셨어요? 주식한다고 또 돈 보내신 거 아니죠?”
“안 보냈어. 보내려다 정장 입은 양반이 말을 걸더라고. 내가 주식하려는 눈빛이래나 뭐래나.”
충북의 한 은행 창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체를 시도하려던 70대 노인에게 정장을 입은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상한 이 상황의 주인공은 김효동 씨, 37년 경력의 퇴직 경찰관이다. 그는 현재 ‘금융범죄 예방관’으로 활동하며,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고객의 행동을 포착하고 피해를 막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김 씨는 은행 직원의 요청을 받고 즉시 출동했고, 노인을 직접 설득해 이체를 막을 수 있었다. 이 활동은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퇴직공무원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이 사업의 공식 명칭은 「Know-how+」다. 이름 그대로 퇴직공무원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여 공공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행정의 빈틈을 보완하는 시스템이다. 참여자는 전직 경찰, 교사, 세무, 기술직, 농림, 복지 등 다양한 직군 출신으로 구성되며, 사업 분야는 민생치안, 재난 대응, 행정 민원, 지역 경제, 취약계층 지원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다.
운영 실적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에는 38개 사업에 295명이 참여했고, 2023년에는 39개 사업에 321명, 2024년에는 45개 사업에 371명으로 확대되며 전국적으로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퇴직공무원들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피해 예방 사례와 공공행정 만족도 개선 등 구체적 성과도 함께 확인되고 있다.
특히 이 사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기존 인력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행정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인력과 예산이 제한된 상황에서 퇴직공무원의 실전 역량은 큰 보완이 된다. 둘째,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단순한 응대가 아니라 신뢰 기반의 전문성을 갖춘 점에서 기존 행정 서비스와 차별화된다. 셋째, 퇴직자의 사회적 역할감 회복이라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긍정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중년 생애설계 정책보고서(2022)」에 따르면, 퇴직 이후에도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는 이들이 삶의 만족도와 건강지표 면에서 더 우수한 결과를 보인다고 분석되었다.
다만 이 훌륭한 모델이 지속적 구조로 발전하기 위해선 몇 가지 과제를 넘어야 한다. 현재는 일부 지자체나 기관 중심의 공모 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전국적 확산과 제도화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를 보완하려면 전국 지자체에 공통 적용 가능한 운영 매뉴얼과 정례화된 선발·평가 체계를 마련해 중장기적 구조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지자체–민간단체–퇴직공무원’을 연결하는 플랫폼형 모델을 운영 중이며, 노인복지, 청소년 교육, 방범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퇴직자의 전문성이 활용되고 있다. 한국 역시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영역이 협력`하는 지역 연계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보상 체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는 실비 수준의 활동비에 머물고 있지만, 성과에 기반한 명예직 인증, 건강검진 우대, 연금 보완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 기여도를 수치화하고 지속적 참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구조가 뒷받침돼야 장기적 참여 유도와 전문성의 연속성이 가능해진다. 아울러 금융사기 예방, 농촌 안전망, 청소년 멘토링 등 민간 분야 수요와 연결된 외연 확장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결국, 퇴직은 단순한 ‘직무 종료’가 아니라 ‘경험과 전문성의 사회적 재배치라는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퇴직공무원 사회공헌사업은 퇴직자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회복하는 미래지향적 제도 모델이다. 더는 일회성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책적 장치로 자리 잡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조용히 사회의 빈틈을 메우는 이들이 있다.
“나는 이제 은퇴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곳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이 한마디에 담긴 삶의 무게와 사명감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공공 자산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기관, 중앙부처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