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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준의 신중년 인생 3 모작] 심심한 여가

“여가의 보너스가 아닌,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

조선 후기 문인들이 즐겨 읽은 수양서 『채근담(菜根譚)』에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귀가 밝아진다, 할 일이 없으니 남의 소문만 더 잘 들린다”는 말이 실려 있다. 언뜻 들으면 웃음이 나오는 구절 같지만, 그 속에는 삶의 말미에 찾아오는 공허와 소외를 경계하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한가로움은 복일 수 있지만, 의미 없는 한가로움은 오히려 마음을 병들게 한다.


실제로 많은 신중년이 퇴직 후 마주하는 첫 감정은 ‘자유’가 아니라 ‘막막함’이다. 어느 60대 퇴직자는 “하루가 너무 길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주말처럼 즐겁게 느껴지던 퇴직 초기의 몇 개월이 지나자, 삶이 멈춘 듯한 정지감이 찾아왔다는 회고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추구한다. 단지 시간이 남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한 방식으로 활동을 선택한다. 공자는 이를 “뜻을 세우고(立志), 배움을 즐기며(樂學), 삶을 닦아야 한다(修身)”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취미란 단순한 소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의 뜻을 실현하고, 배움을 이어가며, 삶의 결을 다듬어가는 중요한 도구다.


신중년에 있어 취미는 여가의 보너스가 아니라 삶을 재설계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일터에서의 역할이 사라진 자리에 ‘하고 싶은 일’이 들어서야만 삶은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다. 2024년 고령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중장년층의 64.3%가 “취미 및 여가활동이 삶의 질 향상에 영향을 준다”라고 응답했으며, 퇴직 전부터 이를 준비한 이들은 삶의 만족도와 우울감 지표 모두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시간을 흘려보낸다”라고 응답한 비율도 31%에 달해, 준비 없는 여가가 또 다른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신중년은 자신의 여가를 누군가가 설계해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디자인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탐색은 결코 늦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취미생활 전략을 통해 여가의 수준을 삶의 방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먼저,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 보는 지적 모험이 필요하다. 문화예술, 스포츠, 글쓰기, 사진, 디지털 영상 편집 등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행정복지센터, 평생교육시설, 지역 도서관에서 열리는 단기 강좌들이 이러한 모험의 좋은 출발점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흥미 위주로 접근하되, 점차 전문성이나 공동체성과 연결되는 활동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취미를 선택할 때는 자신의 건강 상태, 성격, 시간 여건, 경제적 부담까지 고려한 ‘지속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도한 비용이나 체력 소모가 요구되는 활동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반면, 정기적인 산책 모임, 소규모 독서토론, 온라인 회화 강좌처럼 ‘부담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은 정서 안정과 자기만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가볍지만 지속적인 몰입은 결국 더 큰 성취로 돌아온다.


취미는 타인과의 연결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혼자 즐기는 것도 좋지만,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취미는 사회적 활동으로 확장된다. 동호회, 지역 커뮤니티, 자원봉사활동은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하며, 요즘은 메타버스 기반 온라인 동호회나 줌(Zoom)을 활용한 공동 창작 모임도 늘고 있다. 기술을 따라가기보다는 관계의 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취미를 설계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화’다. 가끔 하는 활동은 기분 전환에 머물지만, 루틴화된 활동은 삶의 패턴을 회복시키고 자기 주도성을 강화한다. 주 2회 악기 연습, 월 1회 지역 탐방, 격주 사진 공유회 같은 리듬 있는 활동은 시간 감각을 회복시키고,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이는 단순한 여가를 넘어 삶을 재구성하는 실천이 된다.


마지막으로, 취미는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이어져야 한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익숙해지는 경험은 뇌를 자극하고 자아 정체감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 기여한다. 최근 70세 유튜버 한 명은 스마트폰 영상 편집을 배워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또래 세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는 “이제야 내 이야기를 내 손으로 만들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취미는 자기표현의 도구이자, 삶의 두 번째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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