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의 평생학습은 왜 ‘누구’에게만 가능할까?
“평생학습이 그렇게 좋다는데, 나한테는 너무 멀고 어려운 말이에요.”
경기도 북부 시골마을에 거주하는 71세 김 모 씨의 이 한마디는, 대한민국이 내세우는 ‘누구나 누리는 맞춤형 평생학습’이 실제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실제 참여자는 편중되어 있고, 제도는 공허하다.
교육부는 2023년부터 「제5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2023~2027)」을 추진하며, 생애주기 맞춤형 학습체계를 강조해 왔다. 전국 178개 평생학습도시를 지정했고, 2024년 기준 평생교육 참여율은 전체 국민의 약 42.9%로 확대되었다(교육부, 2024). 특히 신중년 대상의 디지털 역량강화, 직업전환교육, 생애설계과정 등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성장의 수치 뒤에는 여전히 깊은 불균형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문제가 연령 간 격차다. 2024년 평생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20~40대의 참여율은 65.4%에 달하는 반면, 60세 이상은 7.2%에 불과하다. 특히 농어촌 고령층의 경우 참여율은 3.1% 수준에 그친다. 비대면 콘텐츠와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공급이 늘었지만, 디지털 기기 접근이 낮은 고령층에게는 오히려 소외감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은 고령층에게는 새로운 학습의 기회이기보다는 또 하나의 장벽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고령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정책 설계 자체가 공급자 중심의 효율 논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고령층의 학습 시간대, 이동성, 신체적 제약, 관심사를 고려한 프로그램은 극히 적다. 더군다나 교육시설 대부분이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어 교통 접근성도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미 늦었다’, ‘배워도 쓸 데가 없다’는 인식 장벽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적 홍보나 행사성 프로그램으로는 실질 참여를 유도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핀란드는 ‘도서관 중심 지역학습권’ 제도를 통해, 마을단위 도서관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법부터 창작 강좌, 시민대학에 이르기까지 노년층 친화적 프로그램을 상시 제공한다. 영국은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성인평생교육 바우처’를 제공해, 자율성과 동기를 높이며 실제 참여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독일은 민간 기관과 지자체가 연계한 ‘Volkshochschule(국민대학)’ 체계를 통해 도시와 농촌, 고령자와 청년 간 격차 없는 평생학습 참여를 실현해나가고 있다.
결국 핵심은 학습의 ‘형평성’이다. 특정 계층만의 참여가 아닌,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참여 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세 가지 구조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생활권 기반 평생학습망 확대다. 경로당, 마을회관, 종교시설, 농협지점 등 고령층이 자주 찾는 일상 공간을 학습 거점으로 전환하고, 해당 공간에 교육 코디네이터나 순회 강사를 파견해야 한다. 장소 접근성은 물리적 벽을 무너뜨리는 첫걸음이다.
둘째, 디지털 중개자 제도 도입이다. 고령층을 위한 ‘디지털 학습 길잡이’를 각 지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양성하고, 이들이 고령자의 온라인 수강 신청, 플랫폼 이용, 기기 조작을 도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 강좌 제공이 아닌, 기술 활용 전반을 돕는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고령친화형 평생교육 재정구조 개편이다. 현재 지자체 단위 공모사업 중심의 재원 구조로는 고령층 대상 장기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어렵다. 국가가 책임지는 ‘노년기 학습 안전망’ 차원의 교부금 체계가 필요하다. 더불어 고령층 전용 평생학습 예산 항목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별도 편성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이제 평생학습은 단순한 ‘배움의 권리’에서 나아가, ‘고립 없는 삶의 조건’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70세가 넘어도 마을에서 글을 배우고, 디지털을 익히며, 동료와 어울리는 학습은 고령화 사회의 희망 인프라다.
‘누구나’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그 누구에게도 배움이 멀지 않다는 확신을 주는 설계가 필요하다. 지금이 그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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