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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준 신중년 인생3모작】4차 산업혁명은 다모작 인생

– “50세, 노화와 걱정의 돛단배를 띄우기 전에”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네요. 조금만 기다렸다가 해도 되지 않을까요.”

퇴직을 2년 앞둔 50대 후반의 L씨는 AI 관련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었지만, ‘나이도 있고,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등록을 미뤘다. 그러나 몇 달 후, 해당 과정은 이미 정원이 마감되었고, 수강생 중 절반이 60대였다. L씨는 “냄비 속 개구리가 이런 기분이겠죠. 물이 점점 뜨거워지는데도 곧 식을 거라 믿고 가만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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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인공지능이 산업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기술이 곧 생활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25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64.3%가 이미 업무 일부를 AI로 대체하거나 보조받고 있으며, 교육·의료·금융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AI 활용률은 매년 15% 이상 증가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이제 개인이 준비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으며,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기술 격차는 그대로 삶의 격차로 이어진다.


AI 시대의 변화는 단지 새로운 도구의 등장에 그치지 않고, 일의 방식과 경쟁의 규칙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회계, 번역, 디자인, 법률 자문 같은 전문 분야조차 AI가 빠르게 보조하거나 대체하면서 경계가 흐려지고, 업무 효율이 가속되는 만큼 불필요한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공감과 창의, 윤리적 판단,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의 가치는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며, 사람의 경험과 통찰은 이런 변화 속에서 더욱 귀해진다.


세상의 변화는 멈추지 않기에 결국 길은 자기 변화밖에 없다. 자신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부정적인 습관과 사고방식을 걷어내고, 삶을 주도하는 긍정적 인자를 키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끈기와 집중력, 호기심 같은 자가발전기의 동력을 내면에 장착해야 하며, 변화의 급류 앞에서 스스로 비상벨을 울릴 줄 아는 사람이 다음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50세는 노화와 걱정의 돛단배가 동시에 떠오르는 시점이지만, 동시에 2막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20세부터 50세까지의 1회째 인생 30년이 사회적 성취와 생계 중심이었다면, 50세부터 80세까지의 2회째 인생 30년은 자아실현과 사회공헌의 시기다. 통계청(2024)에 따르면 80세 이상 고령자의 56.2%가 ‘건강상 큰 제약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는 50대가 10년, 20년 후를 설계할 수 있는 충분한 체력과 시간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H 씨(55세)는 직장 은퇴 후 ‘세계 최고’의 한식 전문점을 목표로 삼았다. 조리학원과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해 10년을 준비했고, 60세에 첫 매장을 열어 현재는 해외에서 한식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그는 “50세에 시작했지만 지금이 내 전성기”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례는 불안과 낯섦 속에서만 가능한 도전이며, 기다리지 않고 작게라도 배우는 자세가 새로운 모작의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다모작 인생은 단순히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직업과 취미, 봉사와 창업 같은 다양한 활동을 유연하게 조합하여 삶을 설계하는 전략이다. 긴 생애를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각 시기에 맞는 역할을 경험하고,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직업이 끝나기 전에 다음 단계의 경험과 기술을 미리 축적해야 하며, 작은 프로젝트든 단기 학습이든 시도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와 기회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한 분야의 전문성에만 의존하기보다, 경험과 역량을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확장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길이 된다.


고전에서도 이런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본성으로 돌아감만 못한 것이 없다(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라고 했다. 이는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다모작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주도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다움은 오히려 더 희소해지고,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변화의 강을 건널 것인지, 강둑에서 망설일 것인지는 각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미 새로운 항로를 열었고, 우리의 돛단배는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https://newskorea.cn/news/view.php?no=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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