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구조를 바꾸는 세대통합 전략
"누군가는 일할 기회가 없고, 또 누군가는 일할 날이 너무 많다."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못한 중장년은 생활고에 내몰리고, 청년은 아무리 노력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이 상반된 현실은 단지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일자리 배분 구조'가 낡아 있다는 신호다.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지만, 노동시장의 설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고용 불안은 개인이나 일시적 위기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구조적 악순환이다. 청년은 출발선에조차 오르지 못한 채 취업 대기자로 수년을 보내고, 중장년은 50대 초반에 일터에서 밀려나며, 고령층은 국민연금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고 있다.
청년 실업은 결혼, 출산, 소비를 지연시키며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중장년의 재정 불안은 자녀 세대의 독립과 자산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고령층의 생계형 재취업은 단순노동 시장에서 청년과 경쟁을 유발하며 임금과 일자리 질을 동시에 저하시킨다. 이렇게 형성된 세대 간 고용의 악순환은 이제 국가 경쟁력까지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가 이들을 '충돌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자리는 세대별 특성과 생애 주기에 맞게 구조적으로 재설계돼야 하며, 이를 위해 다음의 세대통합형 고용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중장년을 위한 '경력 전환형 일자리' 설계가 시급하다. 단순 노무 위주의 공공일자리만으로는 생계도 자존감도 지키기 어렵다. 퇴직자를 위한 직무전환 교육 확대, 전문직 경험자 재배치 제도 마련, 중장년 전담 일자리센터 운영 등을 통해 중장년층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 지역교육, 정책기획, 사회복지 연계형 중간단계 일자리 설계.
둘째, 청년층에게는 '진입 사다리' 제공이 핵심이다. 중소기업 근무자에게 임금·복지 보조를 강화하고, 지역기반 창업·취업 연계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독일의 듀얼 시스템처럼 일-학습 병행이 가능한 구조 도입이 필요하다. 또한 공정한 채용을 위한 정보 접근성과 기회의 균형도 확보돼야 한다.
셋째, 세대 간 연결을 기반으로 한 일자리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은퇴한 전문직과 청년을 매칭하는 '세대 멘토링', 지역 스타트업 내 세대 협업형 프로젝트, 청년 기획-중장년 실행 모델 등이 그것이다. 일본 나가노현은 65세 이상 퇴직자가 청년 예술인과 협력해 문화관광 상품을 개발한 사례를 보여준다.
넷째, 고령층을 위한 '안전한 재취업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생계형 노동에 내몰린 고령자는 건강 악화, 산업재해, 사회복지 의존 증가의 위험에 노출된다. 고령자 적합 직종 발굴,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산업안전 규제 정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고령층 고용 증가가 청년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도록 조정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세대 균형 고용정책'을 위한 정치·재정 개혁이 필요하다. 실버 민주주의의 영향력으로 고령층 중심 정책이 우선시되며, 청년 일자리·주거·교육 등 미래 세대의 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실제로 2025년 예산에서 노인복지 지출은 약 40조 원, 청년 정책은 약 5조 원에 불과하다. 고령층 중심 정책 구조는 생산세대인 2030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고 있으며, 세대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① 세대별 부담 조정이 반영된 연금 개혁, ② 청년층 주거·고용 예산 확대, ③ 청년 정치 대표성 강화(공천 확대, 청년의원 쿼터제), ④ 장기적 교육·기후·디지털 전환 투자 확대가 함께 병행돼야 한다.
일자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세대, 지역, 사회 전체를 연결하는 구조물이다. 이제 고용의 설계는 경쟁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관점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한 세대의 고용 불안이 다른 세대의 기회를 위협하지 않도록, 세대 간 균형 잡힌 일자리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새 정부의 책무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