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영화가 아닌 우리의 현실
“검사는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다.”
2025년 개봉작 〈야당〉속 구관희 검사의 대사는 단지 극적 장치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정치 현실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는 ‘마약 중개인’ 야당이라는 낯선 은어를 중심으로, 마약범·검찰·경찰·정치권력이 얽힌 부패의 판을 추적한다. 그러나 진짜 목적지는 ‘권선징악’보다는 무너진 법과 흔들리는 신뢰, 그리고 외면당한 시민이다.
〈야당〉은 대리운전 중 마약 누명을 쓴 청년 강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감형을 대가로 검사와 손잡고 마약 조직을 추적하는 중개인이 되고, 검사는 그의 정보를 발판 삼아 승진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정의를 좇는 형사 오상재는 이들의 권력 게임에 번번이 밀리고, 진실은 점점 왜곡된다. 대선후보 아들의 마약 범죄마저 권력으로 은폐되는 장면은 과장된 픽션이라기보다, 실제 기사에서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이다.
이 영화의 무게감은 ‘야당’이라는 중개인을 통해,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으로 유착될 수 있는 한국 사법체계의 민낯을 드러낸다. 여전히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쥔 검찰,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제도는 영화 속 현실을 더 씁쓸하게 만든다. 권력 앞에 진실은 유예되고, 실적 앞에 사람은 도구가 된다. ‘구관희 검사’는 실존하지 않지만, 그를 떠올리게 하는 뉴스는 수없이 많다.
청년의 시선에서 본 이 구조는 더 절망적이다. 영화 속 강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다 버림받는다. 오늘날 청년들 또한 기득권의 틈에서 밀려나 있다. 정치인은 ‘공정’을 외치지만, 청년은 여전히 입시, 채용, 부동산, 정치에서 배제된다. ‘세금만 내는 세대’, ‘기회 없는 세대’라는 자조는 시대의 초상이다.
더 큰 문제는 마약이 더 이상 어둠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는 ‘집중력 향상 음료’로 위장한 마약이 배포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수험생들이 복용한 약물이 실제로는 마약성분이었던 사례도 확인됐다. 청소년이 유혹당하고 중독되는 구조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의 빈틈에서 비롯된 결과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은 그 빈틈의 사각지대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약 17만 8천 명의 학교 밖 청소년 중, 마약 예방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청소년지원센터는 전체의 17%에 불과하다. 전문 강사 부족, 예산 한계, 지역 간 편차로 인해 이들은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방치된 집단이다.
정부는 마약 예방을 단발성 캠페인이 아닌 정규 교육과정으로 통합해야 하며, 가짜 약물이나 ‘시음 행사’ 등으로 접근하는 마약 유통 방식에 대응하기 위한 식약처, 경찰, 교육청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SNS를 통한 신종 마약 확산에 대비한 사이버 수사력도 보강되어야 한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지역 기반 상담센터, 재활 지원 시스템, 멘토링 네트워크가 전국 단위로 확대되어야 한다.
〈야당〉은 단지 마약 범죄를 다룬 범죄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권력의 부패가 사회 곳곳에 어떤 균열을 내고 있는지, 그 틈에서 누가 희생되고 있는지를 조명하는 시대의 보고서다. ‘법이 무너지면 국민이 다친다’는 소훼난파(巢毁卵破)의 경고처럼,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제도 그 자체의 공정성이다.
이 영화가 각성의 계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검찰 개혁은 정치의 구호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제도 개혁이다. 마약 문제 역시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허점에서 비롯된 공공 문제로 봐야 한다.
문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현실을 자각하고, 다음 선택을 준비해야 한다. 정치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이라는 단어는 거창하게 들리지만, 결국 시민 한 사람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그 질문이 모일 때, 변화는 시작된다.
김한준 박사【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charlykim@hanmail.net
